무분별한 입법 발의, 기업 시장 망친다!
 

 

국회, 즉 입법부는 정기적으로 국민에 의해 선출된 의원들이 입법과 기타 중요한 국책 결정에 참여하는 회의체 국가기관이다. 사법부와 행정부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견제함으로써 국가기능의 균형을 잡는 기관이기도 하다. 아울러 서로 상충하는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개인 또는 집단과 국가 사이의 이해와 요구를 조화시켜 사회적 의사를 결정하고 실천해 나가기 위한 권력행사 기관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국회는 이 같은 기본 취지와는 사뭇 다른 길을 걷는 모습을 종종 보여준다.

입법기관으로서의 권한 역시 국민을 위한다기보다는 당리당략과 자신들의 이권을 위한 행위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정부가 경기부양 정책과 규제완화 등을 통해 우리나라 경제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반면 오히려 국회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고 경기 활성화에 역행하는 법안들을 연이어 발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19대 국회가 가동된 지 2년 만에 의원들이 쏟아낸 법안만 1만2000건이 넘는다. 이 가운데 가결된 법안은 불과 1000건이 조금 넘는다. 10건을 발의해 1건이 겨우 법안으로서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의원들이 쏟아내는 법안 중에는 기업 활동과 경제 활성화를 저해하는 규제 법안들이 많다는 것이 시장의 중론이다.

일부 국회의원들은 기업과 시장을 겨냥한 법안을 발의함에 따라 경제행위 주체인 기업과 경제행위가 원활하게 이루어져야할 시장의 법칙을 깨는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대표적으로 최근 박영선 의원이 발의한 소위 ‘이학수법’의 경우 특정 기업을 겨냥해 만들었음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있다. 문제는 관련 법안이 시행될 경우 법률불소급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은 물론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아울러 다른 기업들의 경영활동과 주변의 제3자들까지 피해를 입을 소지가 다분하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외에도 김재경‧최영희 의원이 발의한 ‘게임 셧다운 제도’, 홍익표 의원이 발의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김승남 의원이 발의한 ‘합산규제법’ 등등 자고 일어나면 다양한 규제를 담은 의원 입법 발의가 쏟아지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IT와 유통, 금융 등 각 산업별로 경영 환경과 경제를 위축 시키는 입법 발의는 무엇이 있는지 법안별 내용과 예상되는 부작용 그리고 시장기능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짚어보려 한다.

 

 

쏟아지는 의원 입법 발의, 표심과 권력욕?
 시발점은 포퓰리즘… 이해 상충과 효과분석 선행돼야

 

학생 A: 의원 발의 입법의 문제는 규제영향평가에 대한 마땅한 심사가 엄격하게 마련돼 있지 않아서 정부 발의 입법에 비해 다듬어지지 않고 쓸 데 없는 내용과 불필요한 내용, 실행 가능성 없는 내용 등이 담긴 채 성급하게 졸속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우리가 정치학 수업을 들어본 경험도 없고, 그래서 국회의 입법 과잉 문제 자체가 생소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게임중독법’과 같은 게 바로 의원 입법입니다.

학생 B: 저는 정치외교학과이다 보니 수업 중에 교수님께서 한 번 언급하시고 넘어간 적이 있습니다. 과잉입법의 문제는 포퓰리즘에 근간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공천을 받기 위해, 지역구 대표가 되기 위해서는 발의한 입법 건수가 많아야 하기 때문에 보여주기식, 인기 영합식으로 제정되고 있다는 겁니다.

학생 A: 3권분립의 나라. 입법·사법·행정권이 독립되어 있는 나라. 수도 없이 들었지만 왜 우리는 국회 입법에 대해 기존에 들어본 경험도 적고 국회에서 발의하는 입법들을 전혀 모니터링을 할 수 없는 것일까요. 의원 입법의 문제가 이슈화되는 건 너무 많은 법안이 제출되고 그 내용 또한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학생 C: 게임중독법이 청소년들을 위한 법이라고 겉으로는 포장되어 있을지 몰라도 사실 내부를 파고 들어가면 게임회사에 부과되는 세금이 적기 때문에 이런 법안을 통과시켜 게임회사로부터 잇속을 챙기기 위함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의원 입법의 문제점 중 하나가 정치권에서 입법 권한을 강권적으로 행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자신의 손에 쥐어진 권력을 바탕으로 기업을 자신 발아래 두겠다는 심산으로 보인다고 할까요. 일단 발의만 해도 이슈가 되니까 주가 변동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겠고요.

학생 B: ‘중소기업 중소상인 적합 업종 보호에 관한 특별법’의 경우 동네 상권을 살리기 위해 발의된 법안이라고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상생에 어긋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일단 시장의 자율성에 위배되고 과도하게 표심을 공략한 법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학생 A: ‘단말기 유통법 개정안’의 경우 소비자들이 동등한 수준에서 보조금을 받게 된다니 일단 그럴싸해 보이긴 하지만 이건 오히려 불평등한 법률이라고 생각됩니다. 시장의 기존 시스템에 개입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엄연한 기업규제 법안이라고 볼 수 있죠.

학생 D: 수업시간에 이 문제에 대해서 들어본 바가 있습니다. 보조금 문제뿐만 아니라 이 법안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단말기 가격을 공개하는 것에도 있다고 들었는데, 단말기 가격을 공개했을 경우, 예를 들어 삼성과 애플이 경쟁을 할 때 삼성에게는 상당한 피해로 돌아갈 수 있겠죠.

▲ 출처= 한국경제연구원

학생 C: 유통법의 경우도 동네 빵집 살리겠다고 파리바게트와 뚜레쥬르가 못 들어오게 막아놨더니 오히려 그 자리에 외국계 기업이 소유한 빵집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이것은 무언가 모순이죠. 동네 빵집은 결국 문을 닫게 됩니다.

학생 B: 규제를 심하게 한다고 다른 측면이 살아나는 게 아닙니다. 시선을 돌리는 겁니다. 남양유업 사건처럼 기업을 조이면 기업이 그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유통구조를 바꿔 밑에 있는 대리점 사람들이 손해를 볼 수 있는 거죠. 하나를 규제해서 하나를 살리는 게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옮기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학생 A: 글로벌 경제전쟁 속에서 경제 동향을 살펴보면 규제 완화가 트렌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규제는 자유로운 경쟁을 저해하고 기업의 경쟁력을 죽이기 때문에 오히려 정부가 기업을 살리기 위해 불필요한 규제들을 없애고 있는 추세인데요,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와 완전 반대되는 상황인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시장의 원리에 정치적인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에 오히려 자유로운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우리나라의 현주소인 것 같습니다. 표심을 사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보니 세계적인 흐름도 무시한 채 역행하는 꼴인 것이죠.

학생 C: 법 제정 시 법안의 내용을 충분히 검토하기 위해선 법안 내용을 구성할 때 최고의 전문가 집단이 각 분야별로 똘똘 뭉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률 자문가와 같은 사람들이 붙어서 입법 제정을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법 단계를 확인해 보니 정말 쉽게 쉽게 처리가 되더라고요. 다양한 전문가 집단이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의원들 자기네들끼리 해먹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국민의 의견이 들어갈 구멍은 전혀 없더라고요.

학생 A: 의원 발의 입법안이 쉽게 통과되기 때문에 ‘단말기 유통법’ 개선안 역시 이 차원에서 통과됐지요. 미래창조과학부가 주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원 입법에 맡긴 것은 규제위원회의 평가를 피해가기 위함이었던 것이죠. 정부 발의 입법은 규제위원회를 걸쳐 까다롭게 심사가 되거든요.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새누리당 이한구 의원이 제안한 규제영향평가제도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규제영향평가제도가 마련된다면 의원들은 자신들의 입법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상당히 반발이 심할 것입니다.

 

 

각 대학의 학생들로 구성된 ‘선진화포럼’ 중 지난 2013년 12월 명지대학교 학생들이 ‘국회의 입법 과잉 문제’를 주제로 나눈 이야기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부끄럽지만 이 학생들의 대화 내용에 모든 문제와 해법이 담겨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학생들의 말처럼 졸속 입법 발의된 법안은 많다.

지난 2006년 12월, 도시가스 공급사가 해당 지역의 사용자가 원하면 의무적으로 도시가스를 공급하도록 하는 내용의 ‘도시가스사업법 개정안’이 의원 입법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사업성을 무시한 과도한 규제라는 이유로 업계의 반발을 샀고, 규제의 타당성이 없어 산업자원부가 추후에 법을 다시 개정하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지난 2005년 4월에는 건축사가 설계하는 건축물의 종류를 넓히는 법안이 의원 입법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이 역시 비현실적 규제라는 업계의 반발로 인해 2달 뒤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가 예외 조항을 넣어 개정안을 만들었다.

의원 입법으로 졸속 발의된 법안들의 과거 사례다. 2014년 19대 국회의 임기 반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이제는 사실상 말도 안 되는 법안이 얼마나 되는지 일일이 세기도 힘들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조회한 결과 2015년 3월 10일 기준으로 제19대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지금까지 발의한 법안은 무려 1만 2670건에 달한다. 이 중 수정을 했든 안 했든 가결된 건은 불과 1532건에 불과하다.

임기의 반환점을 돈 현시점의 기록이 이 정도니, 앞으로도 지금처럼 의원 입법 발의를 남발한다면 역대 최대 법안 발의라는 신기록 수립도 어렵지 않아 보인다.

15대 국회까지만 해도 4년 임기 중에 발의된 법안이 1000건 남짓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회기에서 쏟아진 법안이 얼마나 많은지 가늠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집권한 국민의 정부 때부터 경제위기 해결을 위해 대대적인 개혁을 통해 규제를 줄였다. 하지만 최근 벌어지는 무분별한 의원 입법은 각종 사회적 비용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국가경쟁력까지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지난해 5월 발간된 ‘우리나라 의원 발의 규제입법제도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통해 “의원 입법 품질개선이 규제개혁의 중요한 화두가 됐다”며 “정부 입법에는 있는 규제심사가 의원 입법에는 없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상황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법안 발의 수라는 양적평가를 의식하는 국회의원들이 폭발적으로 법률안 발의를 증가시키고 있고, 정부부처는 시급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판단하는 법률안을 국회의원을 통해 발의하고 있는 형편”이라며 “의원 입법 법안의 품질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가경쟁력 순위는 2009년 19위, 2010년 22위, 2011년 24위, 2012년 19위로 20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규제에 대한 부담 순위는 2009년 98위, 2010년 108위, 2011년 114위, 2012년 117위로 100위권 밖으로 계속 추락 중이다. 규제에 대처하기 위해 기업들은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 입법은 1998년 제정된 ‘행정규제기본법’에 따라 해당 규제가 미칠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한 ‘규제영향분석’을 입법예고 때 의무적으로 공개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의원 입법은 국회의원 10명 이상의 동의만 얻으면 발의된다.

그러다 보니 법안 통과율도 하락세다. 11대 국회의 경우 가결 비율이 41%, 15대 국회는 39%를 기록했다. 하지만 18대 국회에서는 13%로, 19대 국회 현재까지는 12%로 급 추락했다. 발의한 법은 많지만 양질의 법안은 적다는 반증이다.

 

이가영 전국경제인연합회 연구원은 지난 2011년 ‘의원 발의 법률안에 대한 규제심사제도 도입방안’ 보고서를 통해 “정부 법률안의 경우 규제 신설 강화 시 5년 이내의 존속기한을 설정해 법령에 규정함으로써 존속기한 이후 폐기하도록 하고 있다(행정규제 기본법 제 8조)”며 “이는 규제의 적시성을 높이고, 규제의 무분별한 증가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18대 국회에서 가결된 266건의 규제 신설・강화안 중 219건(82.3%)이 의원 입법안이고 정부 입법안은 47건에 불과하다”며 “규제 입법에 대한 의원 발의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우리나라 국회의 검토 및 분석제도는 정부의 규제심사에 비해 너무 광범위하거나 협소해서 규제심사를 대체할 수 있는 제도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상임위원회(상임위)의 검토보고 등은 해당 상임위에 제출된 법안 전부를 검토하는 것으로 법안에 대한 광범위한 검토만 이뤄질 뿐 규제에 특화된 분석은 어려운 실정이다.

대다수 법안은 상정 후 2개월 내에 가결되는데, 이것은 상임위에서 충분한 심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각 상임위에는 10명 내외의 입법조사관이 있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등 주요 상임위에 계류 중인 법안은 500~900건에 달하며, 규제 분석에 대한 전문성 또한 부족한 상황이다.

국회예산정책처의 법안비용추계의 경우 예산 소요액만을 분석하는 것으로 규제로 인한 사회적 비용분석, 이해관계자 협의 등이 이뤄지는 규제심사에 비해 협소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권혁철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은 지난해 2월 ‘국회 입법 활동, 당리당략보다는 국익을 우선해야’라는 칼럼을 통해 “하루에 약 15~20건씩의 의안이 발의되고 있다는 건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정말 부지런하다고 해야 하나 싶다”며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이 내용을 파악하고 생각해볼 시간이나 갖고서 의안을 발의하고 또 발의에 동참하는 것인지, 나아가 내용이나 제대로 알고 찬성과 반대를 하는 것인지 하는 점”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1월 1일 하루에만 총 40건의 의안이 통과된 부분에 대해 대부분 세금을 올리고 규제를 강화하는 반시장적 내용의 법안들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통과된 법안들은 소득세 최고세율 적용 과세표준을 기존 3억원 초과에서 1억5000만원 초과로 하향 조정한 ‘소득세법 개정안’과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 등이다.

권혁철 소장은 “국회의원들이 부지런한 게 아니라, 혹 입법홍수 속에서 익사 직전에 허우적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라며 “마구잡이로 법을 만들어내는 일, 국가와 경제 전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당리당략에 따라 찬성을 하거나 반대를 하는 일 등은 하루속히 지양하고 국가이익을 우선해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금 우리나라는 경제침체다. 심지어 디플레이션 위기를 논하는 다급한 시점이다. 규제보다는 완화와 지원을 통해 경제를 살려야 우리의 미래가 있다.

정부는 각종 경기부양 정책과 규제완화를 추진하는 반면, 국민의 대변인이라는 국회의원들이 국민경제를 위태롭게 만드는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다.

일각에서는 ‘국회의원들이 입법 활동을 하지 않고 정쟁에만 몰두하는 것이 국익과 경제에 도움을 주는 길’이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세계적으로 많은 국가들이 자국의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양적완화와 세제혜택 등의 카드를 꺼내들고 해외로 나간 자국 기업들을 불러들이고 소비를 유도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우리의 경제 상황이 어떤 상태인지 좀 더 면밀히 따져보고 들여다보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