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조회한 결과 2015년 3월4일 현재 제19대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지금까지 발의한 법안이 무려 1만 2592건에 달한다. 이중 수정을 했든 안했든 가결된 것은 1532건에 불과하다.

임기 반환점을 돈 시점에 이 정도이니 앞으로도 지금껏 해오듯 의원입법 발의를 남발한다면 역대 법안발의 최대라는 신기록 수립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지난 15대 국회까지만 해도 4년 임기 중에 발의된 법안이 1000건 남짓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회기에서 쏟아진 법안이 얼마나 많은 양인지 가늠할 수 있다.

문제는 이처럼 의원입법 발의가 폭증하면서 수준 이하의 법안들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법안발의 역시 국민들의 혈세로 만들어 진다는 점에서 또 다른 혈세낭비 행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3일 법안이 만들어진지 2년 반 동안 서랍 속에 고이 모셔두던 소위 ‘김영란법’안을 단 몇일만에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이에 대해 시중에서는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무능과 이기주의, 얄팍한 속내를 전국민들 앞에 드러낸 치욕스런 행태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정작 국회의원인 본인들과 소위 있는 자들, 표심을 좌우하는 시민단체 등은 쏙 빠지고 공무원은 물론 비 공무원들까지 몽땅 잡아넣는 '자기들은 살고 애매한 다른 이를 물속에 끌어들이는 신종 물귀신 작전'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이는 위헌 소지는 물론 실행 가능하지 않은 내용으로 결국 1년 반이라는 유예기간 동안 법안을 폐기시키려는 꼼수라는 지적이다.

원안을 만든 장본인인 김영란 전 권익위원장조차 “당초 공무원을 적용 대상으로 했는데 적용 범위가 크게 확대돼 당혹스럽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법안을 통과시킨 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은 4일 정치권에서 보완 입법이 거론됐다는 것이다,

수정 및 보완이 거론되는 부분은 ▲민간인까지 확장한 법 적용 대상 ▲시민단체와 사회적 영향력이 큰 전문직은 제외한 형평성 위배 ▲부정 청탁 기준의 모호성 ▲수사기관의 수사권 남용 가능성 ▲위헌 가능성이 거론되는 배우자 신고의무 등이다.

검사 출신인 김용남 김용남 의원은 “우리나라 형법은 죄를 지은 범인을 숨기거나 도피하게 한 사람이 범인의 친족이나 가족이면 범인은닉죄로 처벌하지 못하는데 김영란법의 불고지죄 조항은 범인은닉죄 정신과 정면충돌한다”고 지적했다.

검사 출신의 정미경 새누리당 의원은 “공직자 설정 기준이 자의적이고 원칙이 없다. 결과적으로 김영란법에 이것저것 다 붙이면서 입법 취지와는 다른 괴물 같은 법이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신중 처리를 당부했던 변호사 출신인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이상민 법제사법위원장은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졸속 심사’를 인정하기도 했다.

소위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공무원들이 뇌물을 받고도 명확한 물증이 없어 처벌하지 못하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 지난 2012년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추진한 법이다.

당시 법안은 공무원이 직무 관련성이 없는 사람에게 100만원 이상의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 할 수 있도록 했다.

2012년 제안 이후 2013년 8월 정부안이 국회에 제출됐고 2015년 1월8일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이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지난 3일 국회 전체회의에서 표결에 붙여졌다. 국회를 통과한 이 법은 향후 1년 반의 유예기간을 거친 뒤 시행된다.

당초 취지를 넘어 법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김영란법’이 앞으로는 또 어떤 이상한 형태로 변질될지, 법으로서 기능은 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