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 동성로 대구은행 교동사랑점의 모습. 사진=김남희 기자

대구에서 태어나 20살까지 자란 기자에게 대구은행이란 마을 사랑방 같은 곳이다. 어린 시절 기자가 오고가는 길 위에 늘 지키고 서 있던 그림자 같은 존재랄까. 읍면 단위 시골의 농협, 우체국이 갖는 존재감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나에게는 그렇다.

어린 시절에 만난 '첫 금융사'인 대구은행은 브랜드라는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역 주민과 소통했다. 그 시절 대구은행의 모습은 대구를 떠난 이에게도 수도권 대형 은행이 주지 못하는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8,90년대 지방 도시 변두리에서 은행이란 그저 '내돈 맡겨놓은 곳'이자 사랑방 같은 곳이다. 저축도 저축이지만, 가게를 가진 사람들에겐 매일 잔돈을 바꾸러 들리는 코스였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동네 아이들이 은행 벤치 앞에서 시간을 보냈다.

대구은행은 우리 동네에도 있고, 친구네 마을에도 있으며, 옆 마실 어딘가에도 자리잡고 있을, 당연한 존재였다. 조부모님부터 이용하기 시작해 부모님도 기자도 대를 이어 계좌를 트고, 돈을 거래했다.

은행 직원들은 집집마다 가장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꿰고 있었고, 마을 곳곳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수업 후 집으로 가는 골목 어귀에는 '대구은행 ○○지점 ○○억원 계좌돌파'하는 플래카드가 종종 걸렸다. 저금만 하면 돈이 모이는 고금리 시대였다.

일상의 소소함이 추억을 만든다. 대구은행은 기꺼이 커피 한잔과 함께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사람들에게 내어줘 동네 사랑방으로 자리잡았다. 돼지저금통 배를 갈라 난생 처음 소중한 목돈을 은행에 맡기는 아이들이 늘어났다.

대구은행을 찾는 습관은 서서히 삶의 패턴으로 정착됐다. 그 패턴은 동네 가로수 혹은 등교길의 도시락 주머니, 마을 쓰레기통을 뒤지는 고양이처럼 너무나 익숙한 것이어서 대구은행 없는 생활을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것 같다.

경상도식 밀착관계는 "우리가 남이가?" 한 마디로 표현된다. 대구은행과 대구 시민은 그 한 마디면 다 끝났다.

스무살이 되어 상경했을 때 놀라웠던 것 중 하나는, 처음보는 국내외 은행 브랜드가 그토록 많았다는 것이다. 물론 세련된 서울의 시중은행은 대구은행처럼 푸근한 느낌을 주지는 못했다. 대신 서울은행, 한빛은행, 조흥은행, 신한은행 등 수도권 은행은 도시의 자본력을 상징한다.

1967년 설립된 대구은행은 대구 사람의 삶 일부로서 성장해 어느덧 48세의 장년층이 됐다. 대구은행을 발판으로 DGB(대구은행그룹) 금융지주회사가 출범한 것도 놀라운 일인데, 기대이상으로 성장한 모습이다.

그저 대구 시민과 지역 경제만 바라보고 있던 대구금융지주가 일을 냈다.

지난해 11월 서울의 700억원대 보험사(우리아비바생명)를 사들이며 '상경'한 것이다. 코흘리개 대구은행 시절부터 보아온 나로서는 "대구은행 마이 컸다"는 말이 절로 나올 수 밖에.

지방은행의 첫 보험사 인수. 그것도 내게는 동네 사랑방이자 마을금고로 남아 있는 그 대구은행이 서울의 보험사를 먹어버리다니.

그것도 KDB생명 인수를 위한 실사까지 마치고, '갑'의 입장에서 저울질하며 우리아비바생명을 택한 모양새였다. 아우 DGB생명은 형님 대구은행이 일궈 놓은 시장을 발판 삼아 '서울까지 영업점을 넓힌 지방은행 보험사'로 성장할 것이다. 형을 참 잘 만났다.

지역경제와 함께 발전하고 있는 대구은행은 △국가산업단지 지정 △첨단의료복합단지 건설 △혁신도시 공공기관 이전 △건설기계·부품 전문단지를 성장 기반으로 하고 있다. DGB그룹 연결기준 2011년 당기순이익은 3058억원, 이중 대구은행 당기순이익은 3099억원이다. 2014년 그룹은 2297억원, 대구은행은 2502억원 달성했다. 대구은행이 DGB지주 이익 전반에 기여하고 있다.

지방의 묵직하고 우직한 힘은 끝까지 상대를 제압하기 때문에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된다. 글로벌 은행은 영리한 반면, 지방 기업은 막판에 숨통을 조르는 뒷심을 가졌다고 본다.

DGB금융의 우리아비바생명 인수 딜에 관련된 지인을 만났다. 우리아비바생명이 매각되어 곧 DGB생명이 된다는 소식을 접한 뒤였다. 지인은 내게 말했다.

"고향이 대구라 하셨죠? 우리아비바가 DGB에 팔리면 우남생명이 되는거 아시죠?"

"'우남생명'이라뇨?"

"'우리가 남이가'생명의 줄임말인데, 모르셨어요? 대구의 대구은행이 <대구은행 브랜드>로 보험을 팔 수 있게 된 겁니다."

지방의 사람들은 어지간 해서는 무엇인가를 잘 바꾸지 않는다. 쓰던 대로 쓴다. 큰 불이익이 없다면 그냥 그대로 쭉 간다. 고지식하지만 의리있고 정겹다.

대구에서 대구은행은 40%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대구 시민들이 할아버지, 아버지대 부터 시작됐던 거래관계를 바꾸지 않고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만큼 대구은행은 대구 시민에게 있어서는 남이 아니다.

지난 1월말 DGB생명이 공식 출범했다. 지역 토착적 기업으로 미약하게 시작하지만, 글로벌 생보사로 창대하게 거듭날 장기적인 비전을 염두해서일까. DGB그룹은 리스크관리 전문가인 오익환 씨를 DGB생명 초대사장으로 기용했다. 새로운 시장을 뚫기보다 가지고 있는 것부터 잘 관리하고 유지하는게 리스크 매니지먼트의 시작이다.

인사를 보면 경영 의지와 방향성을 알 수 있다. NH농협생명과 신한생명, 일부 은행계 보험사가 은행인을 보험사 수장으로 앉힌 것과는 대조된다. 은행인이 수장이면 방카슈랑스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기업이 중요시 하는 부분이 인사에서 묻어난다.

아울러 DGB생명은 지난달 25일 전국 부점장회의를 통해 '강소(强小)보험사로 성장할 의지를 보였다.

여러가지 사업, 영업제반 여건을 고려해볼때 DGB생명은 단언컨데 향후 몇년간 가장 기대되는 보험사 중 하나다. 누구나 1등이 될 필요는 없다. 자기 밥그릇 크기만큼 영업해서 잘 먹고 살면 되지 않은가.

(어디까지나 이 글은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 대구은행에 대한 기자의 인상임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