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출발지는 기업 DNA의 인큐베이터…신입사원 교육 적극 활용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 위한 반면교사… 경영철학 발전적 계승 이뤄져야

누가 부정하겠는가. 어머니와 고향에 대한 애틋함을. 아니 자신이 낳고 키운 것에 대한 애정을 말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정확히 말해 기업인에게 첫 사업을 시작한 장소는 큰 의미를 갖는다. 대기업이라고 한다면 더욱 그렇다. 시작이 없었다면 지금의 위치도 없었기 때문이다. 위기를 맞이하거나 위기감을 느꼈을 때 오너 일가가 가장 먼저 찾는 곳은 기업의 발상지라고 한다.

설립 당시 경영 마인드를 받아들이고 새롭게 해석하기 위해서다. 저마다 든든한 뿌리를 바탕으로 계열사 수를 넓히며 기업 규모를 키워 나가겠다고 다짐을 할 게다. 위기를 확실히 넘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공표하기 위한 상징적인 효과도 계산을 했을 게다.

한국 경제 선구자의 DNA엔 뭔가 특별한 게 있을 것이란 기대감의 효과다. 창업주의 DNA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이 갖는 신뢰의 힘은 그만큼 막강하다. 기업 발상지는 단순한 출발지 이상의 큰 의미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모든 기업이 발상지를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회사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역사가 없다면 엄두도 못 낸다. 또 확실한 창업주와 기업 전통이 있는 곳만 가능하다. 발상지를 찾는 것은 기업의 위상을 뽐낸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SK그룹, LG그룹을 보면 이해가 쉽다. 성공의 요인을 물으면 저마다 “창업 이후 적절한 경영전략과 유능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거둔 성과”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이들 회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일까? 회사의 역사다.

기업연수를 할 요량이면 회사가 언제 어디서 설립됐고, 어떤 사업을 처음 시작했는지에 대한 교육을 제일 먼저 실시하고 있다. 교육 과정 중 가장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것. 각자 회사만의 독특한 경영철학을 이해시키고, 애사심을 높이기 위해 전략적으로 활용한다. 두산그룹은 발상지에 기념탑을 세웠고, 한화그룹은 기념관을 건립해 운영 중이다. 직원에게 기업가정신을 배양해 전달하는 인큐베이터 정도로 이해하면 쉽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자그마한 상점에서,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쌀집에서 지금의 기업의 역사를 만들었다. 최종현 SK그룹 창업주는 직물공장, 박승직 두산그룹 창업주는 모포상회, 한화그룹은 화약공장에서 출발해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성공을 일궈냈다. 이러니 창업주와 발상지에 대한 기업의 찬가가 쏟아질 수밖에….

그렇다고 이들을 신처럼, 발상지를 성지처럼 여길 필요는 없다. 현재 상황에서 사업을 시작했다면 지금처럼 성공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이 보인 도전정신과 기업가정신은 해당 기업 직원뿐 아니라 한국경제를 한 단계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되기엔 충분하다. 기업의 발상지, 창업주에 대한 관리는 단순한 기념사업 이상의 뜻을 갖고 있다.

<이코노믹리뷰>는 이런 의미에서 국내 대기업이 어떻게, 발상지는 어디인지, 어떻게 관리를 하고 있는지를 살펴봤다. 또 창업주나 발상지 등이 기업 경영에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조명해봤다.

삼성그룹 발상지인 삼성상회(왼쪽)의 옛 모습과 현재의 모습(오른쪽 아래). 11월 삼성물산이 공사를 이유로 펜스를 친 뒤 아무런 작업도 하지 않아 폐허로 변했다. 삼성상회 터에서 1~2분 거리엔 대구의 집창촌 자갈마당이 있다.


어떻게 보존되고 있나
대부분 방치, 폐쇄 된 곳도 ‘창업정신’잊혀져가나
두산, 한화 등 일부기업만 기념사업 활성화

2010년 12월 중순 SPC그룹 기획전략실. 고위 임원이 모인 자리에 중요한 의제가 던져졌다. “샤니와 삼립식품을 합병하는 것은 어떨까?” 햄버거를 제외한 모든 외식업에서 대성공을 거둔 SPC가 사양길에 들어선 봉지 빵 업체를 키우겠다고 하니 그 이유를 들어볼 만 하다.

SPC는 샤니와 삼립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샤니를 운영하던 SPC는 2002년 삼립을 인수해 계열사에 포함시켰다. 모두 봉지 빵을 생산하는 업체로 허영인 회장이 오너다. 허 회장은 삼립과 샤니에 각각 서남석 사장, 조상호 사장을 앉혔다. 겉으로 보기엔 두 ·명의 CEO에 의해 움직이는 별도의 계열사다.

그러나 운영 방식을 보면 하나의 회사와 같은 구조를 보인다. 조 사장이 샤니와 삼립을 총괄하는 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 사장이 총괄 운영을 하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삼립 관계자는 “그렇다”고 답했다. 샤니와 삼립이 합병을 하지 않더라도 하나의 회사처럼 경영이 되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갑자기 인수합병 얘기가 왜 나오게 된 걸까. 삼립의 재정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로 놔뒀다간 존폐 여부도 불투명한 상태다. 삼립은 SPC그룹의 모태인 동시에 발상지의 의미를 갖고 있다. 모태가 무너질 경우 기업의 역사도 한순간에 무너지게 된다. 장수기업의 이미지도 사라진다. 샤니와 삼립의 합병은 단순한 합병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SPC 특명 “기업 모태 살려라”

삼립의 창업주 허창성 명예회장은 허 회장의 아버지다. 삼립의 경영권은 당초 허 회장의 형인 허영선 전 회장에게 승계됐다. 허 회장은 삼립 성남공장을 물려받아 독립, 샤니를 차렸다. 1997년 삼립이 부도를 내자 허 회장이 2002년 인수했다.

차남인 허 회장이 삼립 인수를 통해 가업 승계란 적통성을 얻어 사업을 확장시키는 발판으로 삼았다. 삼립을 확장, 기업의 장수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우려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사람일이라고 하지 않던가. 삼립은 SPC에 인수된 뒤부터 경영 실적이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삼립의 2002년 순이익은 494억 원에 달하지만 2009년 66억 원으로 뚝 떨어졌다. 2조 원의 매출을 자랑하는 SPC의 몇 안 되는 상장사지만 주가도 1만 원선이다.

SPC는 2002년 삼립 인수 이후 실적이 계속 떨어지자 매각을 추진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룹의 모태, 사업의 발상지라는 점에서 끝까지 진행하지 않았다. 삼립을 살려 그룹의 모태로 활용하겠다는 허 회장의 의지가 무엇보다 강했다. 장수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사업을 시작하게 된 삼립의 역사성이 필요했다. 삼립과 샤니의 합병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샤니와 삼립의 합병은 쉽지 않아 보인다. 합병을 하게 될 경우 봉지 빵 시장의 90%를 장악, 독과점 문제가 발생한다. 독과점은 한 시장에서 점유율이 지나치게 높거나 경쟁자가 별로 없는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뜻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라 특정 상품이 몇몇 기업에 의해 독점이나 과점되는 것을 규제하고 있다. SPC는 독과점 문제를 피하기 위해 사업권을 따로 하되 서류상만이라도 합병하는 방식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증권가의 한 관계자는 “샤니와 삼립이 회사만 다를 뿐 SPC의 계열사로 봉지 빵 시장의 독과점은 오래 전부터 이뤄져 왔다”며 “서류상 합병을 할 경우 무리 없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또 “삼립과 샤니가 합병하게 될 경우 매출과 순이익 증가에 따라 낮은 주가도 상승, SPC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SPC가 기업 모태인 삼립을 안정화시키며 국내 최고 식품업체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는 얘기다.

현대차, 현대건설 인수 ‘숨겨진 의미’

최근 현대건설을 인수한 현대차그룹은 잔칫집 분위기다. 건설사와 철강업, 자동차 업계의 연계를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대답은 ‘아니오’에 맞춰진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기업의 모태를 확보, 그룹 차원의 적통성과 역사를 되찾았다는 데 의의가 있어 보인다. 정주영 창업주의 혼이 담겨 있는 만큼 범현대가에서 현대건설이 갖는 의미가 크다.

정주영 창업주는 1939년 신당동에 경일상회란 쌀집을 열고 사업을 시작했다. 신당동에 정주영 창업주의 최초 사업지가 신당동에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일본에 강제 인수를 당해 문을 닫아 사업을 확장하지 않아 현대그룹의 발상지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정주영 창업주는 또 1940년 자동차 수리공장인 아도서비스, 1943년 평안북도에 탄광회사인 홀동광산을 인수, 운영했지만 이마저도 일본에 강제 인수를 당해 문을 닫았다. 이 두 곳은 인수를 해 운영한 것으로 기업 발상지로 보기엔 무리가 따른다.

정주영 창업주가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시키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다. 1946년 현대자동차수리공장과 1947년 현대토건사를 설립한 뒤 1950년 합병을 통해 현대건설을 만들었고, 급격한 성장을 거두게 됐다. 실질적인 범현대가의 모태와 발상지는 현대건설인 셈. 현대차그룹과 현대중공업, 현대그룹, KCC 등에서 현대건설에 군침을 흘렸던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현대차는 현대건설 인수로 정몽구 회장 체제를 굳건히 다지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평가다. 현대차의 역사는 포니정(정세영 회장)과 같이 한다. 1993년 정세영 회장이 물러나자 아들인 정몽규 회장(현 현대종합개발 회장)이 현대차를 이끌었다.

현재 정몽구 회장은 그룹 분리와 함께 2000년에 취임했다. 그래서일까. 정몽구 회장은 현대건설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무조건 성공시켜라”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진다. 현대차는 현대건설 인수 후 정주영 창업주에서 정몽구 회장으로 이어지는 적통성을 얻게 됐다.

특히 글로벌 자동차업체로 성장하는 현대차에 기업의 전통과 역사적 의미를 살릴 수 있는 효과도 동시에 거뒀다는 평이다. 벤츠 125년, 아우디 113년, 포드 108년, BMW 96년 등에 비해선 짧지만 66년이란 역사적 배경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한화그룹과 두산그룹은 발상지에 기념물을 설치해 뒀다. 주변 경관과 어울릴 수 있도록 설계된 기념관이나 조형물이 들어서 있다. 기업의 긍정적 이미지를 형상화시켜 기업 경영에 적극 활용할 요량에서다. 일반인에게 무료 개방을 했고, 누가 찾아도 지루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쓰고 있다.

두산그룹의 발상지인 배오개(현 종로4가)의 포목상 박승직상점(왼쪽). 현재 박승직상점의 터엔 두산이 기념탑을 세워 보존하고 있다. 일반인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기념관 대신 기념탑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한화, 기념관 세워 이미지 관리

한화는 그룹 발상지인 옛 한화 인천공장 부지(인천구 남동구 고잔동 소재)에 한화기념관을 설립, 운영 중이다. 2006년 인천공장의 생산작업이 종료된 이후 그룹 차원에서 적극 추진, 2009년 11월에 개장 했다. 화학산업을 바탕으로 성장한 것에 초점을 맞춰 국내에 단 하나뿐인 화약 전시관으로 꾸몄다.

김승연 회장은 개관 당시 “한화기념관은 한화인들에게 숭고한 창업정신을 고양하는 도량으로 자리 잡길 바란다”고 했다. 또 “일반 관람객들에게는 화약산업사의 유익한 정보를 습득하는 산교육의 장으로서 널리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화기념관은 한화의 역사를 담고 있는 ‘본관’과 화약 제조공정을 볼 수 있는‘제조공실’, 임직원들의 무사고 안전을 기원했던 ‘기도실’ 등 세 영역으로 구성돼 있다. 일반인이 화약산업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불꽃놀이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 중·고등학교의 단체관람도 가능하다.

두산은 박승직 창업주가 처음 포목상(박승직상점)을 열었던 종로4가(당시 배오개)에 기념탑을 세워 관리하고 있다. 서울시가 선정한 명소 600선 중 하나로 선정됐다. 두산에 성원해 준 고객에 대한 감사 표시로 누구나 편히 찾을 수 있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일종의 배려다.

기념관을 만들 경우 당시 시설물을 전시하는 등의 효과는 거둘 수 있지만 아무래도 일반인의 접근성이 떨어질 수가 있다. 두산 관계자는 “창립 당시 물품 등 100년의 역사와 1000여 점의 물품을 담은 타입캡슐을 발상지에 묻었다”며 “두산은 창업 200주년을 맞는 2096년 8월 1일 개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공채 신입사원이 교육을 시작하기 전 가장 먼저 찾아 역사와 유래를 배우는 시간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쯤 되면 발상지는 기업의 모태로서 기업 경영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몇몇 기업은 발상지 관리를 소홀히 하는 곳도 있다.

한화그룹의 발상지인 옛 인천한화공장에 세워진 한화기념관. 국내 최초의 화약 전시관으로 불꽃놀이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SK, 사라진 흔적… 관리는 ‘글쎄’

SK그룹의 발상지는 SK케미컬 수원 직물공장이다. SK 모태인 선경직물의 출발점으로 최종건 창업주가 첫 사업을 시작한 곳이지만 현재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 SK케미컬이 2003년 직물사업을 철수하면서 공장을 폐쇄했기 때문이다. 폐쇄 이후 관리에 나설 수도 있겠지만 SK는 하지 않고 다른 선택을 했다.

2009년 SK건설이 직물공장 터에 쇼핑몰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SK의 발상지나 모태는 전혀 없는 셈이다. 굳이 꼽자면 세종시에 있는 SK장례문화센터 한편에 마련된 최종현기념관이 전부다.

SK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논의가 됐지만 외부로 드러내는 오너 일가의 특성상 그렇게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대신 신입사원 교육에 있어 기업 발상지와 역사에 대한 기업 사사에 중요한 비중을 두고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SK만의 독특한 경영체계와 기업가정신 등 SK DNA를 직원에게 전달, 기업 경쟁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일환에서다.

SK 관계자는 “발상지에 있던 초기 물건들이 한자리에 없다 뿐이지 본사 맨 위층에 일부 유품들이 전시되고 있고 각 계열사에 산발적으로 보관되고 있다”고 했다. 또 “발상지와 사업 모태가 갖는 의미를 내부에선 한껏 활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최고 기업으로 꼽히는 삼성그룹도 SK와 큰 차이가 없다. 2007년 이병철 창업주 생가를 복원해 공개하는 등의 관리가 전부. 기업의 발상지인 삼성상회 터에 대한 관리는 소홀하다. 삼성상회 건물은 온데간데없고 삼성물산이 쳐놓은 펜스로 가려져 있다.

이경숙(49·주민)씨는 “지난해 공사를 한다고 갑자기 펜스를 쳐놓았지만 지금까지 그대로 방치되고 있어 볼썽사나운 꼴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펜스를 쳐놓은 공간 속에 공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삼성상회에서 걸어서 1~2분 정도 떨어진 곳에는 대구의 유명한 집창촌 자갈마당이 있다.

삼성은 1997년 9월 삼성상회 건물을 철거, 에버랜드 창고에 따로 보관하고 있다. 건물을 이전함에 따라 삼성상회 터에 건물의 구조와 사용 공간을 나타내는 간판을 설치해 관리해 왔었다고 한다. “삼성물산에서 펜스를 쳤다? 모르겠다. 정확한 이유를 알아보겠다.” 삼성상회 터에 삼성물산에서 펜스를 왜 쳤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삼성 관계자는 이렇게 답했다.

LG, “기념사업 계획 없다”

허술한 관리, 집창촌 등 삼성이 그동안 강조했던 철저한 관리시스템이 삼성상회에는 적용되지 않은 듯 보인다. 취재 결과 삼성상회 터는 대구시가 주체가 돼서 기념공간 조성사업을 12월부터 시작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LG그룹은 삼성과 SK보다 심각하다. 발상지에 대한 관리를 거의 하지 않은 듯한 모습이다. 부산시에 따르면 LG그룹의 발상지는 서대신동 3가 513번지다. 구인회 창업주의 자택이 있던 곳으로 화장품 생산 공장으로 개조해 럭키크림을 생산했던 것. 지금껏 LG의 발상지가 부산 연지동의 락희화학공업사로 알려졌던 것과 차이가 있다. LG는 연지동에 LG청소년과학관과 연암기념관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LG는 2007년 창립 60주년 사사에서 서대신동이 발상지라는 것을 명확히 했다. 창립 60주년 사사를 발간하며 기업의 역사를 중요하게 여긴 LG의 발상지의 현재 모습은 어떨까. 현재 LG의 발상지에는 기아자동차 정비센터가 들어서 있다. 발상지를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 LG 관계자는 발상지에 대한 관리나 기념사업이 진행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아무런 계획도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기업의 발상지를 성지처럼 여길 필요는 없다. 터가 얼마나 좋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성공에 영향을 미치진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창업주가 사업을 시작하며 보였던 기업가정신의 DNA는 기업뿐 아니라 한국경제를 한 단계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되기엔 충분해 보인다.

신세계, 창립 대신 개점일 내세운 속사정

신세계백화점의 역사를 두고 설왕설래가 끊이질 않고 있다. 오랜 역사를 내세우며 명품 백화점을 내세우는 신세계와 사실과 다르다는 의견이 파열음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신세계는 지난해 11월 개점 80주년 행사를 가졌다. 지금의 신세계 본점이 있는 자리에 1930년 미쓰코시백화점 경성점이 문을 열었고 계속 영업을 했으니 80주년이 됐다는 것이다. 신세계의 논리는 이렇다.

신세계의 모태는 일제 강점기의 미쓰코시 경성점. 해방이 되면서 동화백화점으로 상호가 바뀌었고, 동방생명에 인수됐다. 1963년 삼성그룹이 동방생명을 인수하며 신세계란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991년 신세계에서 삼성가로 분가를 하며 지금의 그룹 형태를 갖췄다.

그러나 일부에선 신세계의 시작을 1963년으로 보고 있다. 미쓰코시백화점과 신세계의 연결고리가 없다는 것. 신세계가 1987년 발간한 ‘신세계, 25년의 발자취’에선 1963년을 연혁으로 표현한 바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세계가 개점 80주년을 강조하고 나선 이유는 뭘까.

업계에 따르면 오래된 역사를 바탕으로 최고의 백화점이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롯데백화점은 창립 31주년을 맞이한 것에 비해 신세계는 개점 80주년을 사용해 전통 있는 백화점이란 이미지로 고객에게 다가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김세형 기자 fax123@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