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급락으로 불안감을 느낀 투기자본들이 원유시장에서 이탈하는 반면, 벤처캐피탈 투자자금은 증가하고 있어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유가하락이 지속될 경우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 이동하는 자금들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벤처시장의 훈풍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공급축소 전망에도 불구 국제유가 정체

최근 미국 내에서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격퇴를 위한 지상군 파병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 퓨리서치센터의 여론조사(1504명, 2월 18∼22일) 결과, 응답자의 47%가 지상군 파병에 찬성했다. 이는 지난해 10월 여론조사 때의 찬성 의견보다 8%포인트 높은 것이다.

이번 여론조사 결과는 미 의회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최근 요청한 대(對)IS 무력사용권(AUMF)의 승인 여부를 검토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정치권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함께 미국철강노조(USW)가 정유사와 향후 3년간의 계약조건에 대해 협상을 진행했으나 결렬되면서 지난달 1일부터 파업에 돌입한 상태다.

기본적으로 현재 유가는 공급 과잉을 통한 가격 하락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IS 지상군 투입과 석유업계 파업 등은 공급축소가 전망되는 시장의 시그널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런 유가 상승 신호 속에서도 가격은 일단 정체현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각) 기준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유(WTI)는 전일대비 배럴당 2.82달러 하락한 48.17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날 런던석유거래소(ICE)의 북해산브렌트유(Brent) 선물은 1.58달러 감소한 60.05달러에 마감했다.

키움증권은 ‘국제유가, 아직 바닥 아니다’라는 보고서를 통해 미국이 감산보다 비용절감에 주력하고 있으며, 공급과잉이 지속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천정훈 키움증권 연구원은 “현재 유가하락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미국이 석유 가격결정권을 가져가기 위한 ‘치킨게임’”이라며 “OPEC 또한 시장지배력 유지 혹은 확대를 위해 감산할 확률은 낮으며, 미국 원유생산업체들은 유가 선물 매도를 통한 헷징으로 상당기간 버티려는 시도를 하고 있어 유가 상승을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고 전망했다.

원유시장 빠져나온 금액, 새로운 투자처 찾아

SK증권은 ‘20년 만에 꿈틀거리는 미국 벤처의 봄’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원유시장에서 빠져나온 자금이 미국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실제 지난해 3월 말부터 나스닥 지수와 WTI 가격을 비교해본 결과, 유가는 지속적으로 하락한 반면 나스닥 지수는 상승세를 이어갔다.

벤처캐피탈협회와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에 의하면 지난해 미국 벤처캐피탈이 스타트업 기업들에 투자한 금액은 483억달러로 전년대비 61% 증가했다. 투자금이 50% 이상 증가한 것은 ‘닷컴버블’ 사태 이후 처음이다.

우버의 기업 가치는 6개월 만에 2배가 늘어 44조원의 평가를 받았다. 이는 페이스북(54조원) 이후 최고가다. 숙박공유업체인 에어비앤비(AirBnB)와 스냅챗은 10조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지난 2013년 11월 페이스북의 인수금으로 제시했던 3조2000억원보다 3배나 큰 가격이다.

이은택 SK증권 연구원은 “투자금이 커지는 것은 밸류에이션이 높아진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석유산업에서 빠져나온 투자금이 다른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 들어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지금은 석유산업 투자 감소를 걱정할 때가 아니라 그 자금이 어떤 산업으로 갈지 촉각을 세워 투자기회를 잡을 때”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