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 국내 가구업계는 초긴장 상태였다. 미래를 밝게 평가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업계에서는 ‘국내 가구산업은 다 망했다’는 절망 섞인 말까지 심심찮게 들려왔다. 세계에서 가장 큰 가구유통업체 이케아(IKEA)가 한국에 진출한다는 소식이 퍼졌기 때문이다.

이케아는 스웨덴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글로벌 가구 기업이다. 전 세계적으로 27개 국가에 315개의 매장을 갖고 있으며, 유럽인의 10%가 이케아 침대에서 태어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세계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가히 ‘가구 공룡’이었다.

이런 글로벌 기업이 한국에 진출한다는 것은 가구업계로선 커다란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전까지 국내에서는 한샘, 리바트가 가구 업계 1, 2위를 다투면서 나름 '안정된 시장 분할'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똑같은 공간의 연속인 아파트 거주가 급증하는 추세가 반영된 탓에 한국 가구는 획일적인 디자인과 비싼 가격이라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케아가 한국에 상륙하면 국내 가구업계는 '심각한 중상'을 입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이케아가 들어온 뒤 이런 예측은 어긋났다. 그것도 크게.

 

국내 소비자, 이케아에 대한 오해

▲ 이케아 광명점 외관. 출처=이케아코리아

이케아가 들어온 지 약 3개월이 되지 않은 현재, 국내 1위 가구 업체 한샘은 이케아가 들어선 지난해 4분기(10~12월)에 전 부문 성장률 20%대를 기록했다. 시장이 예상한 것보다 17% 높은 수치다.

현대리바트도 지난해 회사 매출액이 전년대비 16% 증가했다. 특히 온라인 매출은 처음 실시한 2009년에 비해 꾸준히 증가세를 타며 7.4배나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케아 진출 후에도 국내 가구 업계가 예상보다 더 잘나가고 있는 이유는 무얼까.

국내 소비자나 일부 전문가들이 이케아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던 부분이 있었으며 동시에 변화를 추구해 왔던 국내 가구업체들의 대응 전략이 성공적으로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가구공룡' 이케아와 경쟁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테지만 우리가 예상했던 것만큼 현재까지 양측간 불꽃 튀는 정면승부는 아닌 것 같다.

이케아는 소비자가 생각했던 캐릭터가 아니었으며, 소비자들은 아직까지 한국형 가구와 서비스에 익숙해 있던 탓에 오히려 이케아와 국내 가구업계는 함께 성장하고 있는 추세다.

처음 이케아가 들어온다는 소식에 소비자들은 반기는 입장이었다. 한국 첫 진출인 탓에 이케아를 경험하지 못했던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온라인몰을 통해 이케아의 일부 상품을 경험한 소비층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케아는 수익 창출을 우선하는 기업임에도 ‘가격이 싸고 종류가 많다’는 이케아의 이상적인 모습이 국내 소비자에게 긍정적 이미지로 각인돼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지만 한국 소비자들은 이케아에 대해 모르는 점이 너무 많다.

이케아 진출 이후 폭발적인 관심과 비례해 불만을 토로하는 소비자들도 나타나고 있다. 그들은 이케아 가구의 품질이 국내 가구에 비해 좋지 않다거나 조립과 배송이 불편하다는 점을 주요 문제로 든다. 이케아코리아에서 처음 가격을 공개했을 때 생각보다 가격이 싸지 않다며 벌어진 ‘호갱’ 논란도 이런 점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이케아는 쉽게 버리고 교환할 수 있는 가구를 파는 기업이다. 지난 2002년 미국에서 방영된 이케아 광고의 주인공은 램프를 버리고 이렇게 말한다. “이 전등이 안쓰럽다고 느끼나요? 그건 여러분이 미쳐서 그래요. 전등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합니다. 새 것이 더 좋죠.”

이렇듯 이케아의 가구는 애초부터 우리나라처럼 10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품질까지는 보장하지 않는다. 계속 바꾸는 가구가 이케아의 제품 콘셉트다.

이케아의 디자인은 가격부터 시작된다고 할 만큼 낮은 가격을 추구하면 품질과 관세, 인기 등 여러 요인에 따라 다양한 물건과 가격대가 존재하기도 한다. 이케아만이 실행하는 가격 정책이 낯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케아의 DIY 정책 또한 완제품에 익숙한 한국인에게는 또 다른 재미가 아닌 ‘일’로 느껴지기 쉽다. 돈을 제품을 구매했지만 또 다시 본인의 노력을 들여 완성해야 한다는 점이 더욱 수고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이는 이케아의 잘못도, 소비자의 잘못도 아닌, 단지 서로 잘 알지 못했던 부분을 서로가 알아가는 과정이었을 뿐이다.

 

국내 가구업계, 에센스는 취하고 나머지는 버린다

이케아는 전 세계 매장에서 같은 정책을 취해왔고 일부 소비자들은 새로 알게 된 이케아의 모습에 거리감을 표현해 왔다. 국내 가구업계는 이 틈새를 놓치지 않았다.

이전과는 바뀐 전략으로 이케아에게 배울 점은 취하고, 지금까지 해왔던 정책이 쓸모없다면 과감하게 버림으로써 소비자에게 새로운 면모를 보이게 된다. 이들이 꾸준히 내세우고 있는 전략은 공통적으로 크게 5가지로 나눌 수 있으며 현재 성과에 대부분의 비중을 차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 매장이 가구 아닌 '공간을 파는 곳'으로 변모

▲ 한샘 플래그샵. 출처=한샘

국내 가구업체는 침대, 소파, 식탁 등 큰 가구 위주로 판매했다. 디자인도 다양한 편이 아니었으며 그 대상과 종류도 한정돼 있었다. 자취생을 위한 가구보다는 대가족에게 맞는 프리미엄 가구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국내 업체들은 그 범위를 점차 늘리고 타겟층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이케아가 침구가 아닌 침실을 팔듯이 이들은 가구가 아니라 소비자의 라이프 스타일을 따라가겠다고 선포했다.

최양화 한샘 회장은 지난해 “가구가 아니라 공간을 파는 회사로 거듭나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한샘은 ‘공간서비스’를 통해 기존 부엌, 거실, 침실 가구에서 욕실까지 그 영역을 추가했으며 건자재 사업까지 시작했다. 최근에는 생활소품, 소형가전 사업까지 손을 뻗고 있다. 현재 한샘은 독일 생활가전 브랜드 보쉬를 인수해 진동청소기, 인덕션, 오븐 등 생활가전 진입을 마무리 짓고 있으며 올해 하반기에는 한샘이 직접 만들 브랜드의 기기들을 직접 만나볼 수도 있을 예정이다.

현대리바트는 세분화, 전문성을 내세운 사업 확대를 진행 중이다. 현대리바트는 지난해 4월 ‘리바트앤슬립’이라는 전문 매트리스 시장에 발을 내딛었다.

리바트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외국에서 매트리스를 수입해 왔으나 이제는 자체 브랜드를 만들게 된 것. 같은 해 9월에 유아전문 가구 브랜드 ‘리바트 키즈’를 런칭하기도 했다. 리바트 키즈는 3~6세의 유아 전문 가구브랜드로 해외 유아 브랜드 제품보다 30% 가량 저렴한 가격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향후 잠재력이 높은 시장이나 아직 국내에서 전문적인 유아 가구점이 없는 탓에 리바트 키즈의 앞날은 밝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2. 이케아가 교외라면 국내 업체는 도심으로

▲ 리바트 스타일샵. 출처=현대리바트

국내 가구 업체들은 도심에 대형 매장을 세우는데 주력하고 있다. 일본에서 이케아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 가구·인테리어 기업인 닛토리가 세운 전략과 유사하다. 이케아가 처음 일본에 들어왔을 때 위기감을 느낀 닛토리는 이케아가 주로 접근성이 떨어지는 도시 외곽에 창고형 매장을 세운다는 것을 이용, 도심 주변에 중형 매장을 여러개 세우며 빈틈을 파고들었다.

이 전략을 이용해 한샘은 기존 6개의 플래그샵을 늘릴 예정이다. 서울과 대구에 1200~1500여 평의 대형 인테리어를 갖춘 플래그샵을 완성되면 도심에 있는 플래그샵이 총 8개로 늘어나게 된다.

현대리바트 또한 수도권과 광역상권에 대형 매장을 선보이고 있다. 이미 지난해만 백화점, 복합쇼핑몰, 로드숍 등 다양한 형태의 매장 30개가 새로 문을 열었으며 계속해서 부산, 진주, 창원 등 광역권에도 새로운 매장을 확대하고 있다.

 

3. 품질은 더 높이고 가격은 이케아만큼 낮춘다

이케아에 비해 국내 브랜드 가구들은 그 품질이 좋은 편이다. 이케아는 가구를 ‘소비’하고 국내 업체들은 가구를 ‘오래’ 사용한다는 생각 차이에서 비롯한 차이 때문이다.

이케아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가격 경쟁력이었다. 국내 가구업체는 품질은 유지하고 가격은 줄이는 방법을 고안해야 했다. 그래서 불가능한 가격을 내세워 제 살 깎아먹는 방식을 택하기 보다는 원가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디자인 등 자사의 인력을 배치해 가격을 줄이기로 했다. 중가에 그 이상의 가치를 내세우겠다는 전략이며 향후 여러 방식을 통해 결국 이케아에 뒤지지 않는 가격경쟁력을 갖겠다는 입장이다.

한샘은 제조 부문에서 인력을 자동화, 표준화로 대체하며 제조 원가를 절감시키면서 동시에 품질문제를 의미하는 1회 사고율을 이전의 4분의 1 수준까지 줄였다. 이를 통해 2013~2014년에만 약 18%의 비용이 절감됐다. 향후 가구와 더불어 건자재, 소형 가전까지 원스톱으로 구매가 이어지면 그만큼 유통이나 광고비용을 더욱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리바트는 유럽의 기준이 높은 탓에 E0(포름알데히드 방산량 0.5㎎/ℓ이하) 등급의 친환경 목재를 사용하는 이케아와 같은 등급의 원자재 사용을 선도하며 가구의 품질을 더욱 고급화시키고 있다. 이는 현대백화점그룹으로 인수됐기에 유통 채널 효과를 보고 있는 것도 있지만 현대리바트가 온라인 채널을 늘리며 마케팅 비용을 줄일 수 있었던 탓이기도 하다.

 

4. 불편함 파는 이케아, 편리함 파는 국내 가구 업체

▲ 한샘의 부엌 시공 서비스. 출처=한샘

가구 업계는 이케아와 같아 보이면서도 다른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이케아가 불편함을 파는 대신 편리함을 팔기로 했고 이케아는 배송과 조립을 제거해 비용을 아꼈다면 한샘과 리바트는 보다 정성스러운 조립과 배송, 상담으로 비용이 아깝지 않게 만들었다. 대신 이케아의 대형 매장에서 먹고 구경하는 등 즐기는 쇼핑이 가능한 것에서 착안, 이런 서비스를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원스톱 쇼핑을 구상했다. 유통 업체에 퍼지고 있는 이른바 ‘몰링(malling)’ 전략이다.

현대리바트는 복합형 매장인 ‘스타일샵’과 컨설팅샵인 ‘리바트하우징’을 운영하고 있다. 스타일샵은 가구, 매트리스, 인테리어, 생활용품 등 리바트의 모든 제품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장소다. 지난해 처음 만들어진 용산의 스타일샵은 매출 목표치를 넘는 기록을 세우고 있을 정도로 반응이 좋아 올해만 6곳을 늘릴 예정이다. 리바트하우징은 리모델링을 위해 상담과 구매를 한 곳에서 할 수 있게 만든 샵으로 현재 2곳을 운영 중이다.

한샘도 인테리어 대형 대리점과 부엌가구 전시장 ‘키친바흐’를 통해 몰링에 동참하는 중이다. 또한 이케아의 약점이기도 한 주방 및 인테리어가구의 설치 서비스는 자회사 한샘서비스원에 맡겨 따로 시행하고 있다. 한샘은 지난해 말 서비스 관련 인력을 대폭 늘렸다. 시공사원과 A/S기사, 물류사원이 전년대비 각각 13%, 20%, 17% 늘며 2000명이 넘는 직원이 서비스 대기 중이다. 향후 시공과 상담 서비스 내용도 더욱 강화할 목적으로 지난해 한샘은 영업, 시공, A/S등 근무자의 서비스 교육을 30% 확대하기도 했다.

 

5. 가구도 온라인, 모바일 시대에 편승한다

▲ 현대리바트몰. 출처=현대리바트

이제 유통 과정에 온라인과 모바일 등 채널의 확대가 없으면 성장하기 힘든 시대다. 현대리바트의 매출 증가 중 상당부분의 공은 온라인 채널에서 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현대리바트는 지난해 8월 경 인터넷 온라인몰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 스마트기기에서 볼 수 있는 모바일 웹 환경을 조성했다. 소비자들이 쇼핑하기 쉽도록 이미지, 그래픽을 중심으로 사용해 가독성도 높였다.

온라인과 모바일 환경에서는 다양한 할인 이벤트 할 수 있었으며 리바트에 관련된 콘텐츠를 담는데도 제약이나 많은 비용이 들지 않았다. 온라인 브랜드를 새로 런칭함으로써 여러 비용도 줄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이에 현대리바트의 사이트에는 6개월 만에 방문자 100만 명을 기록했으며 지난해 온라인 가구 매출만 550억을 넘겼다.

한샘도 2008년 시작한 온라인 사이트 ‘한샘몰’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온라인 매출은 5년 전에 비해 6배가 넘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13년 말에는 한샘 멤버십 범위를 늘려 한샘의 플래그샵, 한샘몰, 한샘 제휴 인테리어 업체 등 한샘의 모든 유통채널에서 멤버십 포인트를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