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팔 공동창업자 피터 틸이 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도심공항 서울컨벤션에서  ‘더 나은 미래, 제로 투 원이 돼라’ 라는 주제로 강연 후 질의응답 시간을 갖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페이팔 창업주이자 현재 팰런티어테크놀로지의 회장인 피터 틸이 지난 24일에 이어 25일 서울 삼성동 컨벤션센터에서 기업들을 대상으로 '더 나은 미래, 제로 투 원이 돼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30분간의 강연이 끝나고는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장의 임정욱씨가 사회를 맡아 사전에 취합한 스타트업 관계자 및 기업인들의 질의에 대한 응답을 진행했다. 아래는 질문과 답변이다.

1. 요즘 대중 강연을 많이 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이미 유명 기업인이신데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전 세계에서 강연을 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책을 쓴다는 것은 몇달 동안 엄청 일을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아이디어를 취합하고, 정리하고, 출판하고... 그리고 또 몇달 동안 홍보를 하는 힘든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난 사람들이 내 책을 읽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나와 또다른 생각을 말해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이디어는 머리속에 있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말함으로서 발현돼야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이 탄생한 이유도 강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곳에서 수없이 강의를 해왔지만 스탠포드의 한 학생이 강연 내용을 글로 잘 정리해 이렇게 책을 낼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전 강연을 통해 말하고 피드백을 주고 받고 있습니다. 

 

2. 15년만에 아시아를 방문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계기로 한국,일본,대만,중국을 방문을 결심하게 되었나요? 아시아의 스타트업을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습니까?

전 그동안 투자사업을 해오면서 아시아 지역을 충분히 살펴보지 못했다고 생각해 방문을 결정했습니다. 책 제로 투 원은 대한민국에서만 2만5천부가 팔렸습니다. 미국에서 10만부가 팔렸음을 감안한다면 한국은 이례적일 정도로 저의 책에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또한 한국은 지금까지 방문한 일본, 대만에 비해 에너지가 넘치는 좋은 나라입니다. 비교하면 안되는 건 알지만 유럽보다는 한국의 열정이 훨씬 커 놀랐습니다. 그만큼 한국이 창업에 관심이 많다는 얘기가 아닐까 합니다.

 

3. 전세계적으로 핀테크가 화제입니다. 핀테크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페이팔을 18년 전에 세운 것으로 유명한 당신은 요즘도 핀테크에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투자 기준이 뭡니까? 핀테크가 정말 중요한 트렌드고 앞으로 금융업을 변화시키리라고 생각하나요?

저는 앞서 강연에서 먼저 경고를 드렸습니다, '유행어'를 조심하라고. 특정 현상이 어떤 범주로 묶이게 되면 과장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핀테크는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저는 금융과 인터넷이 본질적으로 연관성이 높기 때문에 결합된다면 매우 흥미로워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측면을 생각해본다면 아직 규제와 감독이 많은 분야이기 때문에 작은 회사가 성공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의 투자기준은 '이 회사는 다른 회사가 가지고 있지 않는 특이점, 즉 독점 요인이 있는가'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사람들이 "핀테크 어때?" 라고 물으면 좀 당황스럽습니다. 핀테크는 아주 범위가 넓고 유통채널, 네트워크효과, 특정 기술 등 여러가지 독점 요인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투자를 하려면 그 독점 요인이 좋은 아이디어냐 아니냐, 그리고 그 아이디어가 신속하게 실행될 수 있느냐가 핵심 판단 요건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은행을 만든다고 한다면 시간이 엄청나게 오래걸리겠죠. 하지만 빠르게, 누구보다 먼저 독점을 실행할 수 있다면 그게 정말 좋은 아이디어가 아닐까요.

한편 기존 현상이나 기존 산업을 파괴하자고 달려드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파괴가 아닌 창조를 목표로 해야 합니다.

4. 한국은 인터넷 강국이지만 '핀테크'에 대해선 불모지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엄격한 규제와 선례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페이팔도, 스트라이프도 창조될 수 없는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보수적인 법체계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답변을 드릴지 모르겠지만 그 질문의 포인트에 대해선 동의합니다. 지금 한국의 규제환경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은 규제환경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그점을 반드시 유념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도 바이오분야는 규제가 매우 심합니다. 때문에 미국은 소프트웨어 기업은 많지만 바이오 기업은 별로 없습니다. 이처럼 규제에 따라 기업 생태계가 바뀌는게 사실입니다. 하나의 신생기업이 규제를 바꾸기는 어렵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지난 10년간 우주항공 관련 규제가 점점 풀리고 있는 추세여서 관련산업이 발전하는 중입니다. 이와 같이 현상을 보고 파악하는 것이 유리할 것 같습니다.

5. 요즘 테크놀로지를 찬양하는 상황이 예전 버블 사건과 비슷하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자동차를 만들지 않는 우버가 현대보다 기업가치가 높다는 것을 예로 들며 비판적인 시간이 많은데요, 현재도 테크 버블이라 생각하시나요?

버블은 늘 있어왔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신용, 주택, 금융 버블 등을 경험해왔던 것처럼요. 저도 사람들이 테크가 또 하나의 버블인지 사람들이 항상 걱정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 생각엔 테크는 버블이 아닙니다. 버블은 대중의 심리가 반영된 것을 뜻하는데, 이번은 실제 테크놀로지가 발전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전에 페이스북에서 어떻게 페북이 포드보다 더 많은 가치를 가지냐는 비판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가 직관으로 파악할 수 없는 그런 가치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야후,아마존 등은 실제로 제품을 생산하진 않지만 엄청난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한창 성장하고 있는 실리콘벨리 테크 회사들이 20억,30억,100억 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하는 것은 이들의 미래가치를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6. 당신은 개발도상국을 어떻게 개발시키냐가 중요하다고 책에서 말했습니다. 한국은 빠르게 성장했고 거의 개발이 된 상태지만, 기술이 뛰어난 미국을 앞에, 빠르게 따라잡는 중국을 뒤에 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어떻다고 보시나요?

(웃음)굉장한 질문이네요. 저는 한국의 선구자들이 새로운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봅니다. 미국, 일본처럼 선진국에 되고난 다음에는 완전히 새로운 개발 모델이 필요하게 될 것이고 그 작업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누군가의 실패와 성공을 보면서 따라가는 것은 쉽지만 제일 앞장 선 사람이 되면 더이상 모방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는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 합니다. 제 생각에는 한국은 거의 모든 개발이 완료됐고 미국과 한국은 거의 동등한 선에 위치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7. 한국에서의 스타트업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수적인 투자환경과 갖가지 규제가 넘쳐나는 한국에서 제로투원을 실현하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한국에서 제로투원, 즉 창조를 하기 위해선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요?

예로부터 남의 떡이 커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웃음) 한국의 환경이 다르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장점과 단점이 존재합니다. 저는 어디에 있건 무관하게, 즉 한국에서도 성공적인 스타트업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물론 실패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건 캘리포니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많은 스타트업이 실패할 때 자금환경, 즉 벤처캐피탈리스트의 탓을 합니다. 하지만 그건 주요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다만 실리콘 밸리가 잘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성공의 선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공의 선례가 좋은 모델이 되어 사람들이 성공이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울 수 있다는 게 실리콘밸리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도 지난 수십년간 많은 사람들이 창업을 했고 성공을 했습니다. 한국에서의 창업이 어려울 순 있지만 극복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좋은 선례를 따라간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8. 전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렵다고들 하죠.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운 경기에 기존의 경쟁적인 교육이 쓸모없다는 말들이 많고 책에도 그렇게 쓰셨습니다. 교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주 폭넓고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경쟁적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8학년 때 이미 이 힘든 경쟁적 교육이 끝나지 않을 것을 알았죠. 한국이 입시 교육이 심하다고 하는데 미국도 마찬가집니다. 미국 사람들은 시험을 치르고 대학에 들어가는 18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좋은 대학이 인생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전에 예일 대학교 총장이 신입생들에게 "예일에 온 것을 축하합니다. 당신의 인생 나머지는 탄탄대로에 올라섰습니다"라고 축하연설을 했다는 것을 전해들은 적이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대학은 끝이 아닙니다. 대학을 잘 갔다고 해서 인생이 편해진다고 하면 그 사람은 계속 노력을 하게 될까요? 많은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지만 받고 나서는 오히려 성적이 하락하는 경우가 많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열심히 해야 할 유인을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은 대학을 위한 준비과정이 아니라 평생을 위한 학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은 평생입니다. 100년을 내다보십시오.

9. 마지막 질문입니다. 한국 스타트업이 당신에게 투자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웃음)

재밌는 질문이에요. 우선 일반적으로 답한다면 사업투자 판단은 적어도 1시간 이상 설명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0초, 15초만에 판단하는 것은 너무 이릅니다. 찬찬히 설명을 듣고 피드백도 주고받으며 판단을 해야겠지요.

아, 한국에서의 투자라면... 일단 믿을만한 사람을 찾고 그 사람에게 소개를 받는게 좋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믿을만한 사람의 명단을 이 자리에서 공개할 순 없겠네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