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o late.”

드론 전문가가 한 말이다. 국내 드론 산업의 골든타임이 지나버렸다는 소리다. 그간 규제를 핑계로 연구개발에 소홀했다. 지구촌에서 드론이 주목받자 뒤늦게 누군가는 “국내 드론 기술력은 세계 7위”라며 자조했다. 최근 이슈인 소형 드론 분야에서는 죽을 쑤고 있으면서 말이다. 시대착오적인 정신 승리다.

물론 아예 손 놓고 있진 않았다. 한반도 여기저기에서도 간혹 드론이 보인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산업을 육성하려는 계획도 있다. 그러나 정말 늦어버렸다면 서둘러 새로운 전략을 짜야 한다. 국내 실정에 맞는 기체를 만들거나 개발보다는 활용에 집중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우리들의 ‘드론 타임’을 위한 밑그림이 여기에 있다. 반격을 위한 골든타임은 언제든 다시 올 수 있다. 바로 지금이다.

가미카제 드론?

지난달 미국 백악관에 미확인물체가 충돌했다. 추락한 이 물체는 다름 아닌 드론(무인기)이었다. 백악관 비밀경호국(SS)은 즉시 긴급 조사에 나섰다. SS 대변인은 “직경 약 61㎝ 크기의 드론이 백악관 건물 남동쪽 부분에 충돌했다”고 전했다. 조사 결과 테러는 아닌 것으로 판명 났지만 아찔한 사고였다.

이번 사고는 드론이 테러에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했다. 여론은 금세 얼어붙고 말았다.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결승전에서 드론 경계령이 선포된 이유다. 미 연방항공청(FAA)은 슈퍼볼 경기 때 드론을 이용한 테러가 발생할 수 있다며 경기장에 드론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대책을 세웠다. 결국, 테러는 없었지만 ‘미래 산업의 주인공’이 테러 도구 취급을 받은 셈이다. 그간 덩치 큰 글로벌 기업들은 드론 산업을 선점하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그런데 여론이 악화되자 한풀 꺾이는 모양새다.

덩달아 FAA가 발표한 상업용 드론 규제 기준은 업계를 더 침울하게 만들었다. 당초 업계는 FAA가 올해 드론 규제를 대폭 완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2015년이 ‘드론 원년’이라고 여겨진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데 FAA는 섣불리 업체들을 위한 결정을 하진 않았다. 공개된 기준을 살펴보면 드론을 통한 택배 사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야심 차게 택배 드론 ‘프라임 에어’를 공개했던 아마존은 즉시 반발했다. 구글과 고프로 등이 참여한 소형드론협회도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이토록 위험하다

많은 사람이 FAA의 발표에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 최대 가전박람회 CES 2015에 최초로 마련된 드론 전용 부스에서 환호하던 사람들은 온데간데없었다. 오히려 드론이 야기할 수 있는 문제들이 재조명받고 있는 모습이다. 드론은 유용하게 사용할 수도 있지만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우선 일자리 문제가 그렇다. 원래 택배는 인간이 해왔던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드론이 택배 서비스에 투입되면 택배회사는 인원 감축을 단행할 수밖에 없다.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은행원을 대체한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사회적 불안감이 고조될 가능성이 높다. 국제무인시스템협회는 연방항공청이 규제를 완화하면 드론 시장이 활성화돼 앞으로 3년간 7만개에 달하는 새로운 직업이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그만큼 없어질 직업도 많다는 것이 문제다.

우리들의 프라이버시도 위험해진다. 드론을 날아다니는 CCTV로 활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이미 유명 연예인의 사생활을 찍는 데 드론이 쓰여 논란이 됐다. 미국에서는 사생활 침해 문제가 제기되자 자기 집 마당에 들어온 드론을 총으로 격추할 수 있도록 사냥 면허를 발급하는 도시도 생겼다. 마고 셀처 하버드대 교수는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정부나 기업이 보유한 드론이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DNA를 추출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본래 전쟁터를 떠돌던 드론은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피를 부를 수도 있다. 지난해 플로리다 상공에서는 소형 드론이 여객기 엔진에 빨려 들어가며 대형 참사가 일어날 뻔했었다. FAA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월부터 9개월 동안 미국 공항의 항공 관제사나 여객기 조종사가 드론을 발견해 신고한 건수는 총 193건에 달한다. 이중 25건은 드론과 여객기가 당장 서로 충돌할 수 있는 ‘위기일발(Close Call)’의 상황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드론을 조종하던 이가 악의적으로 여객기에 드론을 충돌시키려고 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우리로 하여금 끔찍한 상상을 하게 한다. 마음만 먹으면 드론을 테러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보안 전문가인 토드 험프리에 따르면 드론은 해킹에 쉽게 노출된다. 그렇다면 해킹을 통해 우발적인 사고를 필연으로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드론을 악용한 사례는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드론을 마약 운반에 사용한 사례까지 나타났다. 지난 1월에는 멕시코와 미국 국경 사이에서 마약을 운반하던 드론이 추락했다. 멕시코 티후아나 지역의 슈퍼마켓 주차장에 추락한 드론에는 마약이 실려 있었고, 멕시코 경찰은 이 드론이 미국에서부터 날아온 것으로 판단했다. 이처럼 드론을 악한 의도로 사용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반격이 시작됐다

논란의 변두리에서 만년 드론 후진국에 머물 것만 같았던 한국이 조용하게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어쩌면 지금이 드론 선진국들을 추격할 ‘골든타임’이다. 최근 기존 드론의 단점을 보완했거나 한국 실정에 적합한 활용방안 등이 속속 공개됐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레일 드론’과 ‘유선 드론’이다.

▲ 출처=드론프레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최근 ‘철도전용 통합무선망(LTE-R)’과 ‘레일 드론’을 결합한 드론 물류시스템을 기획연구 과제로 검토하고 있다. 이들은 민간기업과 한국 실정에 맞는 ‘맞춤형 드론’을 공동으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LTE-R 기술을 이용하면 드론 운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어 노선을 경제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전망이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 관계자는 “이 기술을 통해 레일 택배 드론을 수천여대 운행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전했다.

그동안 ‘택배 드론’은 국내 실정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았다. 수도권 대부분이 비행금지구역인 데다 도심에서 드론이 추락할 경우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레일 드론의 경우 이러한 지적을 피해갈 수 있다. 한국 실정에 따라 고안된 드론인 셈이다.

물론 ‘레일 드론’은 엄밀한 의미에서 드론이 아니다. 차라리 ‘무인열차’라고 부르는 게 맞다. 정통 드론 분야에서도 청신호가 얼핏 보인다. 최근 군이 시범 운용에 들어간 ‘유선 드론’은 주목해야 할 사례 중 하나로, 24시간 비행이 가능하다는 게 특징이다. 군은 국가 안보 시설에 유선 드론을 배치해 시범으로 운용하고, 민간에서도 항만 감시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기존의 무선 소형 드론의 경우 배터리 기술의 한계로 짧은 시간밖에 날릴 수 없다는 것이 단점이다. 그동안 대부분의 드론이 1시간도 채 날릴 수 없어 많은 제약이 따랐다. 유선 드론의 경우는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지만, 무선 드론과 비교했을 때 조종 거리는 짧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