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유료방송 합산규제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23일 전체 유료방송 가입자를 1/3, 즉 33%로 제한하는 유료방송 합산규제법이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하며 법제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KT의 반발이 격렬하다. KT는 정부의 유료방송 합산규제 법안이 임의로 시장의 주도권을 강제한다고 반발하며 위헌소송까지 불사하겠다는 계획이다. 위성방송인 KT스카이라이프도 자신들의 정체성과 특장점을 내세우며 노동조합까지 가세해 전시 동원령을 내렸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묘한 대목은, 유료방송 합산규제 법안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케이블 방송도 해당 법안에 불만이 많다는 점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현재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유료방송 합산규제 법안 논란을 이해하려면 IPTV를 보유한 통신3사 중 KT를 따로 떼어내고, 비슷한 지점에 KT스카이라이프를 위치시켜야 한다. 그리고 SKT와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와 유플러스TV를 하나로 생각하면서 통신 단말기 시장의 점유율을 고려한 SK와 LG의 세부적인 분리와 동시에 이들을 거대한 IPTV의 틀로 묶어 CJ E&M을 위시한 케이블 MSO와 대치시켜야 한다. 이렇게 이해당사자의 진영을 짰다면 그 후에는 유료방송 합산규제 법안과 관련이 있는 DCS, 직접사용채널 등을 주변부에 포진하자. 준비는 끝났다. 이제 하나하나 살펴보자.

포인트 하나. 도대체 무슨 법이야?
유료방송 합산규제 법안은 인터넷 TV, 즉 IPTV와 위성방송을 포함한 유료방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하나일 경우, 이 회사의 점유율이 33%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일종의 반독점 법안이다. 현재 IPTV의 강자는 KT며, KT는 위성방송인 KT스카이라이프를 보유하고 있다. 둘을 합치면 전체 유료방송 점유율 28%에 육박한다.

만약 유료방송 합산규제 법안이 시행되면 이미 28%의 시장 점유율을 가지고 있는 KT는 33%까지 고작 5%의 점유율만 늘릴 수 있다는 뜻이다. 해당 법안이 유료방송의 강자인 KT를 겨냥하고 있는 이유다. KT는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에 위배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포인트 둘. KT에 진짜 불리한가?
업계에서는 KT가 유료방송 합산규제 법안을 막기 위해 무지막지한 로비를 벌였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그 진위여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해당 법안이 IPTV와 위성방송을 보유한 KT의 성장을 가로막는 조치임은 분명하다. 현재 유료방송 업계는 케이블에서 IPTV로 그 패권이 이동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IPTV 1위인 KT가 지금까지 시장 점유율 규제를 받지 않던 KT스카이라이프를 적절하게 활용해 점유율을 끌어 올리던 상황에서 복병을 만난 셈이다. 이에 KT는 유료방송 합산규제의 시장 점유율 수치를 33%가 아닌 49%로 정하자고 주장했으나 23일 국회 미방위는 결국 33%를 택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가 정말 KT 입장에서 절망적인 조치일까?

변수는 해당 법안이 국회 미방위에서 3년 일몰제로 통과됐다는 것에 있다. 한시적인 적용을 의미하며, 이렇게 되면 셈법이 복잡해진다. KT는 분명 IPTV와 위성방송인 KT스카이라이프를 합쳐 전체 유료방송의 28% 지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 KT의 시장 점유율 성장세는 연 1%로 추정된다.

이렇게 되면 3년 일몰제로 인해 2017년 해당 법의 효력이 소멸되는 시점에 이르러도 KT는 33%의 점유율을 차지하지 못한다. 2017년 다시 법이 시행된다는 확실한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유료방송 합산규제 법안이 KT를 견제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셈이다. 케이블TV협회도 이러한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들이 "일몰 이후 시장 점유율 상한을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지점에서 KT는 또 하나의 '무기'를 가지고 있다. 바로 유료방송 합산규제 법안의 전제조건 중 하나인 예외조항이다. 해당 법안은 공포 후 3개월 뒤 시행되며, 시장 점유율 기준이 되는 가입자 수 검증은 대통령령에 위임하기로 했는데, 특히 산간·오지 등 위성방송이 필수적인 지역에 대해서는 합산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예외조항을 뒀다. 사실상 명확한 기준을 세우기 어렵다. 만약 일몰제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KT가 33%의 점유율에 이른다고 해도 위성방송 점유율을 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당초 위성방송은 KT스카이라이프 노동조합도 명시했듯이 공공 미디어 서비스의 일환으로 태동했다. 다른 유료방송 사업자들이 대부분 점유율 규제를 받고있는 상황에도 지금까지 KT스카이라이프가 점유율 규제를 받지 않아 이론상으로 100%의 점유율을 가져갈 수 있는 안전망이 존재했던 배경이다. 물론 이러한 정체성은 난시청 해소를 위한 KBS와의 협력으로 일부지역에서 시행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현재 KT스카이라이프가 완전히 공공 미디어 서비스의 측면에서 시행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위성방송의 공공 미디어 서비스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KT는 KT스카이라이프의 일부 서비스를 '경영상의 시장 점유율이 아니라 공공 미디어 서비스입니다'라고 두둔하며 전체 점유율에서 뺄 수 있다는 뜻이다.

KT보다 KT스카이라이프의 피해가 막심하다는 주장도 있다. KT스카이라이프 노동조합은 “KT는 OTS 가입자의 OTV(Olleh TV)로의 교체, 그리고 위성방송 가입자를 OTV로 전환시킴으로써 실속을 챙기면 된다”면서 “이런 ‘곶감 빼먹기’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그 반대급부로 온갖 손실과 위기는 벌써 위성방송에 떨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충분히 일리있는 말이다.

포인트 셋. SK에 유리하다?
유료방송 합산규제 법안이 SK에 수혜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여기에서도 KT스카이라이프 노동조합의 주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해당 법안이 지속되면) 휴대폰 시장점유율 50%가 넘는 SK텔레콤은 몇 년 후 결합영업을 지속하기 어려워진다”며 “(일몰제는) 그런 아킬레스건이 3~5년 후에 해소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KT와 비슷한 이유로 휴대폰 시장의 강자인 SK텔레콤이 SK브로드밴드와 협력해 일몰제를 넘나드는 교묘한 전략을 짤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물론 더 구체적인 시나리오도 있다. SK텔레콤은 휴대폰 시장 50%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KT가 유료방송 합산규제 법안에 막힐 경우, 막강한 휴대폰 시장 점유율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IPTV 영업을 전개할 수 있다. 물론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도 시장 점유율 33%의 저주를 벗어날 수 없지만, 최소한 막강한 경쟁자의 발목이 잡혀있는 상태에서 비슷한 수준으로 단번에 성장할 수 있다는 뜻이다.

포인트 넷. 케이블은 정말 좋은거야?
IPTV의 성장을 걱정하던 케이블은 유료방송 합산규제 법안 구체화에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일몰제에 대한 우려를 접지 않은 상태에서 지속적인 공방전이 불가피하다. 만약 일몰제로 인해 해당 법안이 말 그대로 3년짜리 법안으로 사라지면 이후의 시장 상황은 더욱 암울해진다. 케이블이 케이블TV협회를 중심으로 일몰제 이후를 걱정하는 이유다.

케이블TV협회는 “입법 과정을 통해 동일서비스 동일규제 원칙이 지켜지고 있는 것을 환영한다”며 “이번 법 개정 추진은 특정사업자에 대한 특별한 규제가 아니며 입법미비상태가 해소되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고 진단했다. 다만 "3년 후 일몰제로 인해 다시 입법 미비가 오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현재 KT계열이 33.3% 점유율에 도달하기까지 4~5년이 걸릴 것을 감안한다면 3년 내에는 법 적용 대상이 없으며 오히려 현행 규제가 3년 후 폐지된다면 더 큰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포인트 다섯, 이제 큰 그림을 볼까?
유료방송 합산규제 법안을 둘러싼 각자의 이해득실을 살폈다. 이제 큰 그림을 볼 순간이다. 이 지점에서 케이블 MSO 권역별 규제 완화도 함께 살펴보자. 최근 케이블 MSO는 권역별 규제 33%를 지켜야 한다는 규제에서 벗어났으며, 이에 CJ 헬로비전을 비롯한 4대 MSO들은 지역에서 SO에 대한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실시한 바 있다. 한 마디로 몸집을 거대하게 불렸다는 뜻이다. IPTV의 성장이 전체 유료방송 시장의 치킨게임을 유발하며 케이블의 지위를 흔들자 몇몇 거대 MSO 중심으로 빠르게 시장이 재편되는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는 IPTV 업계에서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통합 방송법의 여부에 따라 가뜩이나 다양한 변수가 오가는 상황에서 어차피 유료방송 시장의 '파이'는 정해져있고, 심지어 성장세도 멈췄다. 그런데 경쟁자인 케이블이 몸집을 불리니 불안할 수 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반대급부로 IPTV가 원하는 주장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직접사용채널이다.

원래 케이블도 공공 미디어 서비스의 영역에서 시작됐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 이유로 케이블은 지역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자체 방송국을 운영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기자와 PD, 작가도 존재한다.

하지만 현실은 암울하다. 공공미디어연구소가 수 차례 지적했지만, 케이블은 지역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일에 소홀하며 심지어 제작인력도 제한적으로 배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케이블이 단 하나, 자제 제작인력을 총동원해 운영하는 시기가 있다. 바로 '선거철'이다. 선거철이 되면 케이블은 합동 제작국을 조직해 지역별로 돌아가며 후보자 공동 토론회 등을 주최하는 한편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해 존재감을 과시한다. 그리고 이는 온전히 케이블의 '정치력'이 된다.

IPTV도 이를 원했다. 직접사용채널, 즉 직사채널 허용 논란이 터져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는 통신사가 운영하는 제2의 종합편성채널이 될 것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사실상 사그라들고 말았다. 그러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KT가 자회사를 통해 우회적으로 직사채널을 운영한다는 지적이 나왔던 이유도 이러한 미련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정설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왜 직사채널 이야기를 하는가? 케이블의 몸집 불리기에 대한 견제의 차원에서 IPTV가 직사채널 허용을 주장했지만, 사실 직사채널이 유료방송 합산규제 법안의 '딜(거래)'로 활용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유료방송 합산규제 법안이 꿈틀대기 시작했을 무렵 업계에서는 직사채널과 합산규제의 범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벌어진 바 있다. IPTV가 직사채널 허용을 얻고, 합산규제를 받아들이는 방법과 IPTV가 직사채널을 포기하고 합산규제도 무위로 하거나, 혹은 합산규제의 범위를 33%가 아닌 49%로 늘리는 '딜'이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었다.

여기서 접시없는 IPTV, 즉 DCS 허용 논란도 있다. KT스카이라이프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DCS에 대해 케이블은 공개적인 압력도 불사하며 DCS 허용 불가 방침을 천명했었다. 일단 이 지점에서 위성방송의 유무에 따라 KT와 2개 통신사는 편이 갈린다. 유료방송 합산규제 정국에서 KT스카이라이프가 DCS 허용을 주장했다는 점에 주목하자. 아직 '딜'의 여지는 살아있다.

유료방송 합산규제, 큰 충격을 고려해야
현재 국내 유료방송 업계는 서로에 대한 견제를 남발하며 지상파보다 먼저 UHD TV 시장을 공략하는 승부수까지 던지고 있다. 일단 해당 논란은 법 그 자체만 보고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나눠진 합종연횡과 공동견제의 역사를 살펴보고 주변부에 위치한 다양한 '딜'의 여지도 판단해야 하는 복잡한 방정식이다.

하지만 전혀 다른 고민을 해보자. 최근 내외신에 따르면 미국의 OTT 서비스 업체인 넷플릭스가 조만간 국내시장을 고략한다고 한다. 최근 무차별적 해외진출을 감행하는 넷플릭스의 행보와 국내의 쾌적한 인터넷 환경을 고려하면 그 여파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현재 국내 유료방송 서비스 이용료가 상당히 낮은 편이라 넷플릭스가 '지상파 VOD'같은 치명적 킬러 콘텐츠를 탑재하지 않고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이유야 어떻든 '코드 컷팅'의 악몽도 충분히 고려가능한 시나리오다.

결국 유료방송 합산규제 법안을 둘러싼 논란은 큰 틀에서, 큰 충격을 고려하고 가닥을 잡아야 한다. 몇몇 업체의 몸집을 불려 다양성을 제거하고 힘을 키우게 하느냐, 동시다발적 각개전투로 시장을 지켜내느냐는 모두 현재의 우리 손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