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가상현실 헤드셋 ‘삼성 기어 VR’ 이노베이터 에디션(기어VR)이 국내에 출시됐다. 미국에서 먼저 출시되며 상당한 인기를 끌었으며, 국내의 반응도 준수한 것으로 알려진다. 정확한 집계는 알려지지 않지만, 삼성전자 스토어를 통해 판매되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 기어VR. 출처=삼성전자

기어VR이 시사하는 것

기어VR의 국내출시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일단 경영학적 측면에서 갤럭시노트4와의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기어VR은 지난해 하반기 출시된 갤럭시노트4와 연결되어 작동하기 때문이다. 평소 가상현실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기어VR을 체감하기 위해 갤럭시노트4를 구매할 가능성도 있다.

기어VR의 가격은 24만9000원에 불과하다. 갤럭시노트4의 5.7형 쿼드HD 슈퍼아몰레드 디스플레이의 선명한 화질과 오큘러스 스토어(Oculus Store)를 통해 오큘러스 시네마, 360도 비디오 등 다양한 VR 전용 콘텐츠를 지원하는 것을 고려하면 ‘지나치게 비싼’ 금액은 아니다. KT 미디어허브의 '올레 tv 모바일 VR'과의 확장성을 고려해도 마찬가지다.

가상현실 대중화의 선봉장이 될 여지도 있다. 페이스북이 2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입하며 오큘러스VR을 인수한 이후 글로벌 IT회사들의 화두는 가상현실로 쏠리고 있으나 아직 국내는 가상현실에 미온적인 반응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가상현실을 아직 접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갤럭시노트4만 있으면 24만9000원을 투입해 가상현실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이다. 가상현실에 대한 대중의 관심사가 올라갈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생태계 구성의 여지도 발견된다. LG전자가 구글의 가상현실 오픈소스 도면인 카드보드에 착안해 VR For G3를 만든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결론적으로, 기어VR은 갤럭시노트4와의 연동으로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에 일정정도의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고(물론 파괴적인 영향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가상현실 대중화를 바탕으로 폭발적인 시장의 외연적 확대를 꾀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결국 생태계 구축으로 이어지는 성공 방정식을 따라갈 전망이다.

▲ 기어VR. 출처=삼성전자

위협

하지만 기어VR의 미래에 장밋빛 전망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위협은 있다. 먼저 미국의 경우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국내의 경우 갤럭시노트4와 연동되는 기기임에도 불구하고 공동으로 출시되지 못한 대목이 뼈아프다. 강렬한 퍼스트 임팩트의 기회를 놓쳤다는 점은 마케팅적 측면에서 아쉬운 부분이다.

가상현실 대중화의 선봉장으로 여겨지는 대목은 양날의 칼이다. 가상현실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저렴한 가격’으로 진입문턱을 낮춘 것은 효과적인 노림수지만, 아직 우리는 가상현실에 익숙하지 못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오큘러스VR이나 소니의 모피어스,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에 선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 증강현실 기반의 구글글래스 등이 본격적인 시장진입에 나서면 대중화는 곧 ‘성능이 낮은 하위 스펙의 기기’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속도전이다. 기어VR 출시를 서둘렀어야 한다는 아쉬움과 더불어, 이렇게 된 이상 가상현실을 빠르게 대중화 전철로 이어지게 만드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 홀로렌즈. 출처=MS

이런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순수 경쟁력을 따져야 한다. 기어VR은 가상현실 기기로서 충분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을까? 재미있는 대목은, 이 지점에서 현재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의 분위기가 재연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은 중국의 샤오미, 화웨이로 대표되는 중저가 라인업이 삼성전자를 발 밑에서 위협하고 있으며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애플이 막강한 무력시위를 벌이는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그 사이에 가로막혀 샌드위치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를 온전히 가상현실 시장으로 대입하면, 구글의 카드보드와 같은 저가 가상현실이 오픈소스로 무장해 LG, 완구기업인 마텔과 공동으로 발 밑의 위협으로 남아있으며 오큘러스VR과 그 외 다양한 프리미엄 가상현실 기기들이 프리미엄의 영역에 남아 있다.

▲ VR For G3. 출처=LG전자

기어VR은 뛰어난 가상현실 기기지만 엄밀히 말해 구글의 카드보드처럼 HDR이 아니다. 스마트폰인 갤럭시노트4의 디스플레이와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만큼, 전체 가상현실 시장에서 상당히 ‘어정쩡한’ 포지션에 위치하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의 악몽이 넘실거리는 이유다.

여기에 ‘탈’ 스마트폰 기조가 빠르게 진행되는 부분도 위협이다. 구글의 아라폰 프로젝트가 탄력을 받으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현재 글로벌 IT기업들은 사물인터넷 시대를 맞아 사업 다각화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이미 포스트 스마트폰 시장을 노리는 분위기다.

현 단계에서 포스트 스마트폰은 스마트워치가 될 확률이 높다. 사물인터넷 시대를 전제로 스마트폰-웨어러블-스마트홈-스마트시티의 공식이 진행된다고 가정하면, 결국 전 단계의 기능을 포함한 새로운 기기의 등장은 일차적으로 스마트워치가 된다는 뜻이다.

가시적인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이미 스마트워치는 ‘시계냐? IT기기냐?’라는 논쟁을 넘어 디자인을 입은 초연결 기조를 바탕으로 자동차와 집, 전화와 메시지를 넘나드는 복합 디바이스로 발전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오르비스와 LG전자의 어베인, 애플의 애플워치는 물론 전통적인 시계업체의 등장도 이와 결을 함께 한다.

‘원형’으로 대표되는 디자인적 감각에 스트랩 교체 및 다양한 디자인, 마지막으로 모든 기능을 담아버리는 스마트워치의 기술력은 역으로 스마트 생태계에서 스마트폰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삼성전자가 타이젠 스마트폰 Z1을 신흥국 중저가 시장인 인도에 런칭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시 기어VR로 돌아오면, 기어VR은 스마트폰인 갤럭시노트4와의 연결성을 바탕으로 작동된다는 점이 약점이 될 수 있다. HDR이 아니라는 것은 그 자체로 위협의 요인이다. 물론 증강현실이 경쟁자로 부각될 소지가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비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삼성전자 기어VR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자명하다. 가상현실은 증강현실과 더불어 교육, 게임, 훈련, 군대, 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 넓은 외연을 자랑하는 새로운 성장동력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기어VR은 가장 대중적이고, 적절한 기술을 차용했으며 또 가상현실 생태계 구축의 미완성을 타고 그 성장 가능성도 높다.

이런 분위기에서 기어VR이 속도전을 전개해 빠르게 패러다임을 굳힌다면, 밀크 서비스로 대표되는 새로운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안착시킨다면 본연의 성장 가능성으로 새로운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