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ICT 기업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상대는 누구일까? 아이폰6를 내세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애플? 중국 스마트폰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샤오미? 전 세계인의 개발자화를 추구하는 구글? 모두 맞는 말이지만, 가장 중요한 경계 1호가 빠졌다. 바로 중국의 화웨이다.

최근 화웨이는 X3로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LG유플러스의 알뜰폰 자회사 미디어로그와 협력하는 수준을 넘어 LG유플러스가 직접 유통시키고 있으며, 약점으로 부각되던 AS분야를 전사적으로 개선하며 공세의 수위를 올리고 있다. 일단 시장의 분위기는 호불호가 갈린다. 화웨이는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예상보다 판매가 부진하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화웨이가 무서운 이유는 스마트폰 경쟁력이 아니다. ICT 시대를 맞아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국내 네트워크 분야다. 지금 화웨이는 대한민국의 혈관을 장악하고 있다.

가격 경쟁력과 기술력으로 통신3사를 홀리다

최근 화웨이는 통신3사의 차세대 기간망 장비 사업자에 연이어 선정되며 시장 장악력을 끌어 올리고 있다. 지난해 말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광전송네트워크(OTN) 공급 업체로 화웨이를 선정했으며 KT는 재설정식광분기 일부 장비를 화웨이 장비로 사용하고 있다. 재설정식광분기 분야에서 화웨이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50%에 달하며 통신3사의 패킷전송네트워크 점유율도 화웨이가 50%를 차지한다.

이런 상황에서 화웨이는 낮은 단가를 바탕으로 가격 경쟁력을 피력하는 한편, 일단 시장에 안착하고 난 이후 조금씩 가격을 올리는 방법으로 완전한 사육을 유도하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낮은 가격에 끌린 통신3사가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화웨이 장비의 기술력이 상승하며 가격이 크게 상승하기 시작했으나, 그 때는 이미 화웨이에 길들여진 후였다”고 회고하며 “여전히 화웨이 장비의 가격은 경쟁사에 비해 약 10% 저렴하기 때문에, 통신3사 입장에서는 계속 화웨이 장비를 사용할 것이다”고 전망했다.

현재 국내 네트워크 시장은 화웨이를 비롯해 시스코, 알카텔-루슨트에 거의 넘어간 상태다. 공공 네트워크 장비의 대부분을 장악한 시스코를 비롯해 국내 통신사와 5G 인프라 협력에 나서고 있는 노키아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화웨이까지 가세하며 위기는 고조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국내 장비업체에 경쟁력이 있다고 여겨지던 다중서비스지원 플랫폼과 액세스망도 조만간 화웨이가 독식할 것이 유력하다.

당초 화웨이가 국내 네트워크 시장에 진출한다고 선언했을 당시 업계 일각에서는 ‘화웨이가 국내는 물론, 시스코와 알카텔-루슨트를 이길 수 없을 것이며, 각국에서 정보보안 문제를 보이고 있는 화웨이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LG유플러스가 화웨이와 손 잡고 경쟁력을 발휘하자 국내 네트워크 시장은 순식간에 ‘화웨이 돌풍’에 휘말리고 말았다. LG유플러스가 알뜰폰 자회사 미디어로그를 통해 화웨이의 X3 유통을 시작했을 당시 성적이 저조하자, 화웨이와의 관계정립을 위해 LG유플러스가 전면에 나섰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다.

국가재난망까지 넘보는 화웨이

이런 상황에서 화웨이는 국가재난망까지 넘보기 시작했다. 국가재난망은 세월호 참사 이후 급물살을 타게 된 국가차원의 프로젝트며, PS-LTE 방식으로 운영될 전망이다.

지난달 28일 화웨이는 국가재난망 시장진출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며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국가재난안전통신망 시연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화웨이는 자사가 30여 나라의 국가재난망 사업에 참여하고 있으며 국제공통평가기준(CC)에 따른 보안 인증을 획득하여 안전하고 검증된 LTE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피력했다.

화웨이는 이 자리에서 가격 경쟁력과 24시간 지원체제, 철저한 현지화를 바탕으로 하는 인프라 구축을 강조했으며 PS-LTE 방식의 세계 표준화를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시연은 PS-LTE 기술의 전반적인 소개만 진행됐을뿐, 구체적인 기술적 사항은 공개하지 않았다. 물론 이 대목은 아무리 시연회라고 해도 경쟁사와의 관계설정에 있어 민감한 부분이라 일견 타당한 대목이지만, 네트워크 외에는 거의 공개하지 않은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

보안 및 데이터 수집에 대한 논란도 있다. 현재 화웨이는 각국에서 네트워크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나, 그와 비례해 과도한 데이터 수집 논란과 취약한 보안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에서 화웨이가 네트워크 사업을 접은 이유도 이러한 비판 때문이다. 심지어 미국 의회가 전면에 나서 ZTE와 더불어 화웨이의 네트워크 장비를 정부 부처 시스템에서 퇴출시키기도 했으며, 지난해 화웨이는 인도정부로부터 국영 네트워크인 BSNL을 해킹한 혐의로 당국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화웨이가 민감한 정보가 오가는 국가재난망을 주도할 경우 심각한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혐의를 받았던’ 중국의 기업이 핵심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네트워크를 담당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화웨이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여기는 분위기다. 화웨이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보안백서나 내부규정 등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으며 이를 조금이라도 위반하면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화웨이는 "영국에 이미 네트워크 장비를 공급해 신뢰를 받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런정훼이 화웨이 창립자가 세계경제포럼에서 "화웨이는 중국 정부로부터 스파이활동을 요청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고 말한 대목도 강조했다.

화웨이의 공습은 더욱 무서워지고 있다

화웨이는 국내 네트워크 시장을 점령하는 한편, 국가재난망까지 넘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화웨이의 무차별 인재영입도 시작됐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70명에 불과하던 화웨이코리아 직원의 숫자는 최근 170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된다. 늘어난 100명의 직원은 모두 시스코 및 국내 통신사 장비 영업 담당 고위직과 에릭슨 등에서 일하던 네트워크 인력이다. 특히 국내 통신사 고위직 영입은 LG유플러스를 기점으로 KT와 SK텔레콤으로 외연을 넓히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연구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 화웨이는 국내에서 스마트폰에 집중한 대규모 연구개발 센터를 설립한다고 공개하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강력한 ‘개발자 풀’을 구축하겠다는 복안이다. 심지어 인재양성 프로그램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며 사회공헌 프로그램의 일종으로 미래 ICT 인재 양성 프로그램 ‘Seeds for the Future’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일련의 시도가 공적인 책임을 완수하려는 글로벌 기업의 의지지만, 구글의 서울캠퍼스에 국내 안드로이드 개발자 인력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국 화웨이의 의도도 비슷하다는 분석을 내리고 있다.

화웨이의 장비가 저렴한 이유는 네트워크 관리 인력을 국내에서 뽑는 다른기업과 달리, 저렴한 인건비의 중국 인력을 데려오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런 측면에서 화웨이의 공습은 더욱 무섭게 여겨진다.

현재 화웨이는 지난해 '화웨이 클라우드 콩그레스 2014'에서 공개한 오픈스택 기반의 개방형 클라우드 플랫폼 퓨전 스피어5.0을 내세워 국내 클라우드 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서버 및 스토리지 영역까지 아우르며 강력한 시너지 효과가 예상된다.

화웨이는 스마트폰은 물론, 이를 바탕으로 네트워크와 클라우드를 아우르는 방대한 영역의 공습을 진행했거나, 이미 추진하고 있다. 국내 ICT 업계의 ‘화웨이 경계령’에는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