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체험 넘어 제품 아이디어 제공까지… 인터넷 통한 이슈 관련 토론도 활발

마케팅에서 아줌마의 파워는 절대 무시할 수 없다. 아줌마의 입과 손을 떠난 뼈 있는 한 마디가 상품의 흥행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주부 마케팅에 주목한 것은 꽤 오래 된 일이다.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체험 마케팅은 이미 1990년대부터 특정 종류의 제품에 한해 계속 진행됐다. 제품의 종류에도 주방 세제나 요리 도구 등 주부들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품종에 대한 한정적 체험 마케팅이 주류를 이뤘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업종도 다양해졌고, 마케팅의 수단도 한층 진화했다. 무턱대고 제품을 써보라고 제공하던 수준에서 이제는 상품 제작에 대한 아이디어를 공모하는 수준까지 올라섰다. 특히 최근에는 컴퓨터 활용 기술을 갖춘 젊은 주부들이 ‘소셜 미디어’ 역할까지 자처하면서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상품 제작까지 참여 잇따라

주부 체험단은 업계 전반의 유행이 됐다. 삼성전자는 얼마 전 ‘삼성 지펠 아삭 김치냉장고 체험단’을 선발해 아줌마 소비자들로부터 큰 호평을 얻었다. 체험단으로 선발된 아줌마들은 파워 와이프로거(주부 블로거)들이었다. 무려 215대1의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체험단으로 선발된 주부들은 이하연 한국김치협회 회장과 함께 맛있는 김치의 비법을 배워보는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주부들에게는 일석이조였다. 직접 담근 김치를 시식해 보고 새로 나온 김치 냉장고의 성능까지도 시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아줌마의 의견이 직접적으로 상품 제작에 영향을 미치는 ‘아이디어 제공 마케팅’도 최근 인기를 끌고 있다. 유한킴벌리의 ‘스카트 빨아쓰는 타올’은 주부들을 대상으로 사용 비법 공모전을 진행했다.

조영란 유한킴벌리 스카트 마케팅팀 차장은 “공모전 이전에 비해 월 매출이 200% 정도 급상승했다”며 “기업의 일방적 메시지보다 주부가 직접 제품의 장단점을 알리니 긍정적 파급 효과가 매우 컸다”고 설명했다.


아파트에 대한 주부들의 아이디어 참여도 눈길을 끌고 있다. 동부건설은 주부 자문단의 아이디어를 받아 자사 브랜드인 센트레빌 아파트에 360도 돌아가는 방범 로봇을 설치했다. GS건설 역시 화장실에 남성용 소변기를 별도로 달아 좌변기 청소에 이골이 난 주부들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자동차업계도 키 작은 주부들이 가속·브레이크 페달을 쉽게 밟을 수 있도록 페달 높낮이를 부착하거나 치마 입고 승·하차가 쉽도록 의자 높이를 낮추는 등 ‘여성 맞춤형 자동차’ 출시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넷줌마’ 잡아야 마케팅 전쟁서 승리

그렇다면 위대한 아줌마들의 힘은 대체 어디서 모아지는 것일까? 워킹 맘에서 전업주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아줌마들을 묶는 수단은 바로 인터넷이다. 온라인 커뮤니티가 아줌마들의 텃밭이다. 여기서 공유하는 고급정보들의 힘은 집단적이다. 커뮤니티에서 모인 의견의 향방에 따라 세상이 움직인다.

아줌마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크기도 다양하다. 아파트 단지 내 소형 커뮤니티는 빙산의 일각이다. 아줌마 회원 수가 수십만 명에 달하는 전국 규모의 인터넷 사이트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정보의 창고다.

전국의 아줌마들이 운집한 커뮤니티에는 상품 가격·부동산 및 재테크 정보·육아 가이드·맛집 등 각종 정보와 제보가 넘나든다. 실시간으로 각종 이슈에 대한 토론이 오가기도 한다. 가령 요리·살림정보 사이트 ‘빨리쿡(82cook)닷컴’이나 인테리어 사이트 ‘레몬테라스’의 게시판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만약 어느 커뮤니티에서 특정 상품에 대한 약점이나 결함이 발견됐을 경우 그 상품은 오래 못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다. 그래서 최근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을 실시할 때면 대부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일명 ‘넷줌마’들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열혈 넷줌마들을 향한 마케팅에는 양날의 검처럼 장점과 단점이 존재한다. 이들에게 잘 보여서 칭찬을 받으면 엄청난 상승 효과를 창출하지만, 만약 털끝 하나라도 잘못 보인다면 ‘넷줌마 군단’에게 뭇매를 맞고 실패할 수 있다. 각 업체들이 ‘넷줌마’들을 어떤 마케팅 대상보다 가장 무서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문가들은 아줌마 마케팅의 확대를 여성에 대한 사회적 시각이 개선된 결과로 보고 있다. 이는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가 늘어났다는 말과도 맥을 같이 한다. 여성 포털 이지데이의 조현경 기획이사는 “WWI(세계여성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이 관리하는 가계지출 비중이 조사 대상 23개국 중 11위로 아시아권에서는 가장 높다”며 “아줌마는 파워 블로거 등 영향력 있는 소비자 평가단 수준을 넘어 CP(Contents Provider)로 위대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 및 소득은 갈수록 늘고 있다”면서 “남성보다 여성, 특히 아줌마 계층의 경제 활동 인구 증가율이 더 높기 때문에 기업들이 여성 소비자들에게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백현 기자 jjeom2@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