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일선 등장 첫 프로젝트 성공적 성과… 누나 정성이 고문 든든한 지원도 흐뭇

희한한 일이다. 수입차가 늘어나며 럭셔리 세단의 이미지가 사라질 만도 한데 그랜저의 명성은 그대로다. 1986년 첫 선을 보인 뒤 25년 간 수많은 위기가 있었을 법도 한데 흔들림이 전혀 없다. 1세대 그랜저(각 그랜저)는 9만2000대, 2세대(뉴그랜저)는 16만4205대의 판매고를 올렸다.

3세대(그랜저XG)와 4세대(그랜저TG)는 각각 31만 대와 41만대가 팔렸다. 추세대로라면 5세대(그랜저HG)의 판매량은 50만대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가격이 공개되지도 않았지만 2만대의 사전 판매 예약이 이뤄졌다. 출시 이후엔 구매 문의가 줄을 잇는다. CEO에서 부터 연예인 등 범위도 넓어졌다.


인기 드라마 ‘시크릿가든’으로 뭇 여인의 가슴을 녹였던 현빈은 그랜저HG에 푹 빠졌다고 한다. 1호차의 주인공인 동시에 메인 모델로 활동 중이다. 중견 연예인 박철도 그랜저HG를 보기 위해 방송 녹화 중에도 쉬는 시간마다 현대차 매장을 찾아 촬영 스태프의 애를 태웠다. 그동안 그랜저 구매 고객층이 사회지도층에 머물렀다면 그랜저HG의 구매층은 한층 넓어졌고, 젊어졌다.

오너 일가가 만들어낸 멋진 ‘하모니’

“완벽하지 않다면 내놓지 말라.”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그랜저HG 출시를 앞두고 꺼낸 말이다. 역대 그랜저 중 가장 완벽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회장이 직접 나서 차량의 품질을 보증하겠다는 말이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마케팅을 준비하겠다”고 정의선 부회장은 맞장구를 쳤다.

그랜저HG는 현대차에서 차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MK 이후 현대차를 맡게 될 정의선 부회장의 첫 작품이다. 또 누나인 정성이 이노션 고문이 함께 마케팅 활동을 준비했다. 정 부회장은 차를 담당했고, 정 고문은 광고와 엠블럼 제작을 도맡아 처리했다. 세계 최초로 2분 30초짜리 그랜저HG의 4D 광고가 직접 탄생한 것도 두 사람의 협력이 있어 가능했다. 지난 13일 정 고문은 그랜저HG 신차 발표 현장에 이례적으로 아들을 데리고 모습을 드러냈다.

아비의 마음은 비슷할 게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란다. 정 회장은 그랜저HG 출시에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랜저HG의 성공은 곧 아들인 정 부회장과 딸인 정 고문의 경영 능력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차 발표 현장의 사진 촬영에도 아들을 대신 내세웠다.

실제 정 부회장은 그랜저HG 출시 이후 대외 활동에서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경우가 많아졌다. 경영전략과 향후 계획 등에 대한 질문에도 막힘이 없다. 그만큼 회사 내에서 정 부회장의 입지는 단단해졌다.

그랜저는 25년 동안 럭셔리 세단의 최고 자리를 지키며 한국 자동차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그랜저는 총수 일가의 경영능력의 척도로 활용돼 왔다는 점이다. 그랜저의 첫 출시는 정몽규 회장(현 현대산업개발 회장) 재직 시절 이뤄졌다. 네모반듯한 그랜저는 당시 최고의 차로 주목을 받았다. 정몽규 회장은 젊은 나이에도 불구, 한국자동차공업협회 회장에 올랐다. 2003년 취임한 정몽구 회장도 그랜저XG와 그랜저TG의 비약적인 판매신장으로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런 의미에서 그랜저HG 출시는 후계를 앞둔 정 부회장의 마지막 테스트에 가깝다. 정 부회장의 경영 키워드는 소통과 배려다. 부하직원에게는 편하게 대하고, 임원에겐 깍듯이 대한다. 임직원들의 평도 좋은 것으로 전해진다. 경영 2세지만 겸손함을 중시해 내부적은 관리 면에선 합격점을 받았다는 얘기다. 문제는 경영 능력이다. 기아차 사장 재직 시절 탁월한 경영 능력을 보였지만 현대차 부회장에 취임한 이상 현대차 내부에서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현재까지라면 결과는 기대 이상이다. 정 부회장이 선보인 그랜저HG는 기존 그랜저의 개념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국산 준대형차 대신 수입차를 경쟁모델로 삼고 있다. 특히 정 부회장의 특유의 디자인 경영에 발맞춰 독수리가 비상하는 모습을 차량 내외부에 담았다. 기아차 시절 K7에 표범의 날렵한 이미지를 차량에 도입했다면 그랜저HG에는 독수리가 웅장하게 나는 이미지를 살려내 한층 세련돼졌다. 그랜저XG까지 사용됐던 범퍼의 엠블럼도 제거하는 등 젊은 이미지도 내세웠다.

2012년 글로벌 판매 스타트

현대차는 그랜저HG의 2011년 국내 판매 목표를 8만대로 설정했다. 지난해 그랜저TG의 판매량이 3만2000천대였던 점을 감안하면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김성환 국내마케팅실 상무는 “지난해 국내 판매량이 저조했지만 5세대 그랜저HG 등장으로 판도가 변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동급 수입차들 대비 최고 성능을 보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대차의 자체 테스트 결과 그랜저HG는 렉서스ES250, 알페온, SM7 등 동급 차량 대비 최고의 성능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차제 안전 종합검사와 브레이크 제동거리, 주행 소음, 연비 면에서 모두 최고 점수를 받았다. 기술을 바탕으로 내수 시장의 판매 증가는 시간 문제란 얘기다.

남은 과제는 세계 시장 점유율 확대다. 현대차는 그랜저HG를 아제라의 브랜드로 출시, 내년 상반기부터 판매에 들어갈 예정이다. 김성한 국내마케팅실 상무는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현대차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관심의 대상”이라며 “그랜저HG에 대한 반응도 벌써부터 뜨거워지고 있다” 고 말했다.

25년 럭셔리 세단 불멸의 DNA

25년 럭셔리 세단의 최고 자리를 지켜온 그랜저는 디자인을 중요시 여긴 차다. 1986년 첫 출시 당시 네모반듯한 각을 내세워 인기몰이에 성공했고, 1992년 출시한 뉴그랜저부터 둥근 이미지를 도입해 두 번째 흥행을 이끌었다.

1998년 출시된 그랜저XG는 둥그런 이미지에 날렵함을 추가시켰고, 2005년 출시된 그랜저TG엔 세련미를 더했다. 그리고 2011년 출시된 그랜저HG는 모든 디자인을 아우르는 섬세함을 갖췄다. 어딘지 모르게 이전 그랜저와 닮아 있으면서도 달라 보이는 것이 매력이다.

특히 그랜저TG부터 차량 앞에 부착했던 엠블럼을 빼 젊은 이미지를 추가시켰다. 또 세로로 이뤄졌던 라디에이터그릴을 가로로 바꾸고, 라이트를 날렵하게 바꾸며 자동차에 표정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그동안 준대형차의 타깃층이 그랜저와 에쿠스 등 준대형차와 대형차 시장으로 나뉘기 시작한 것이 이 무렵이다.
기술력 면에선 전자연료분사 엔진 도입, 차체 제어시스템, 국내 최소 수동 겸용 5단 자동변속기 적용, 에코드라이빙, 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ASCC)을 국내 차 최초로 탑재하고 있다.

김세형 기자 fax123@asia2.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