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윈 알리바바 회장이 결국 고개를 숙였다. 알리바바를 통해 유통되는 물건의 60% 이상이 짝퉁이라고 비난하며 이와 관련된 백서까지 발간한 중국 정부와 전면전까지 불사할 기세를 보였으나 사실상 이틀만에 항복을 선언했다. 중국신문은 지난달 31일 마윈 회장이 중국 국가공상행정관리총국 장마오 국장을 찾아가 짝퉁 제품에 대한 재발방지를 약속하며 당국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발단은 지난달 28일 중국 국가공상행정관리총국이 위조상품 유통 및 뇌물 수수 등 알리바바의 불법행위를 적시한 백서를 공개하며 시작됐다. 그러자 차이총신(蔡崇信) 알리바바그룹 부총재는 다음날인 29일 "백서 발표에는 잘못된 점이 많으며, 모든 방식이 알리바바에 매우 불공평하다"고 지적하며 "필요하다면 공상총국에 공식적인 이의제기를 할 것"이라고 노골적인 불만을 터트렸다. 중국 정부와 거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 사이에 불편한 기류가 감돌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지난달 21일 열렸던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리커창 중국 총리가 연설할 때 마윈 회장이 맨 앞자리에 배석했으나, 연설이 끝나고 두 사람이 악수도 하지 않은체 헤어졌다는 이야기까지 퍼지며 전운은 한층 강력해졌다.

하지만 둘의 팽팽한 긴장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달 31일 마윈 회장이 장마오 국장을 찾아가 짝풍 제품 재발방지 노력을 약속하는 순간, 힘의 균형은 중국 정부로 완벽하게 기울었다. 이에 공상총국은 언론설명회를 열어 알리바바와 관련된 백서 내용은 단순한 회의기록이라 법적인 효력은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자비'다.

물론 알리바바의 위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중국 정부와의 관계는 수습국면에 접어들었으나 알리바바가 지난해 9월 뉴욕증시 상장 당시 중국 정부의 규제 움직임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이를 숨겼다는 점 때문에 미국의 투자자들이 집단소송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알리바바의 뉴욕 증시는 큰폭으로 하락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마윈 회장과 알리바바는 일단 급한 불은 껐다는 분위기다. 집단소송은 그 자체로 위협적이지만, 당국의 견제야 말로 생존과 직결된 가장 핵심적인 칼날이기 때문이다. 전례가 너무 많다.

중국 정부의 데스노트
중국 정부, 즉 중국 공산당은 최근 강력한 경제개혁 드라이브를 걸며 글로벌 무대를 호령하는 기업들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BAT라고 불리는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같은 거대 ICT 기업이 탄생했다는 것이 정론이다. 중국 공산당은 구글과 페이스북 등 서구의 거대 ICT 기업을 가차없이 쳐내는 한편, 자국기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민하게 움직였다는 뜻이다. 물론 이러한 점이 자국기업을 온실속 화초로 만들었다는 비판도 있다. 알리바바와 아마존이 맞붙었을 경우 아마존의 근소한 우세를 점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체제의 안정과 당국, 즉 당의 입장에 반하는 기업가들을 가차없이 쳐내는 일에도 손속이 없다. '말을 듣지 않으면 부숴버리고 다시 만들어 버리면 된다'는 관념이 강하게 박혀있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빠른시일안에 사형집행이 유력한 쓰촨성 재계 거물, 한룽그룹의 류한 형제다. 지난해 5월 중국 후베이성 셴닝시 중급인민법원은 고의살인 및 조직폭력 등의 혐의로 기소된 류한 한룽그룹 회장과 그의 동생 류웨이 등 5명에게 모두 사형을 선고했으며, 법원은 공식 웨이보를 통해 "이들이 지난 20년간 폭력조직을 이끌면서 고의적인 살인과 상해 등을 통해 8명을 숨지게 하고, 많은 피해자를 다치게 했다"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류한은 1993년 쓰촨성에서 도박업소를 통해 부를 축적해 건축업까지 손을 뻗친 '숨은 부호'다. 권력도 막강해 쓰촨성의 정협 상무위원을 역임하며 '제2의 조직부장'으로 불릴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그가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많은 사람을 죽이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신비상인'이라 불리는 권력의 윗 선과 결탁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당장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중국 소식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그 신비상인이 현재 위기에 몰린 저우융캉 전 중국 공산당 상무위원이며, 류한 형제의 비극은 그 원죄를 비롯해 저우융캉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본다.

본인은 부인하지만 끊임없이 망명설이 나오고 있는 아시아 최고의 부자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도 있다. 지난 9일 리카싱 회장이 홍콩에 있는 그룹 지주사 등록지를 조세피난처로 알려진케이먼 제도로 옮긴다고 발표하자 중화권 매체는 사실상 '그가 망명을 준비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리카싱 회장과 시진핑 주석 사이에 불편한 기류가 감돈다는 것은 오래된 상식이기 때문이다.

발단은 2012년 3월 홍콩 행정장관 선거 당시 공산당 부주석이던 시진핑 현 주석이 리카싱 회장에게 렁춘잉 후보를 밀어달라고 부탁했으나 리카싱 회장은 헨리 탕 후보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리카싱 회장이 홍콩 우산혁명 당시 아무런 입장표명을 하지 않았다는 점도 당국의 심기를 건들였다는 후문이다.

홍콩 최대의 부동산 재벌과 과거 홍콩 정부 권력 서열 2위가 한번에 '날아간' 케이스도 있다. 지난해 12월 홍콩 법원은 아시아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인 순흥카이 그룹의 토카스 쿽 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하는 한편 전 홍콩 정무사 사장 라파엘 후이에게는 징역 7년 6개월을 선고했다. 2005년 이들이 벌인 뇌물수수 범죄가 결정타였다. 한 때 홍콩의 번영과 권력을 상징했던 두 사람의 몰락은 그 자체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북 경제정책의 선봉장이던 양빈 전 어우야 그룹 회장의 비극도 있다. 2002년 북한의 신의주 특별행정구 초대 행정장관으로 발탁되어 글로벌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한 그는 하훼사업과 부동산, 관광 사업을 벌이며 승승장구했으나 2002년 부동산 불법 유용 및 탈세 혐의로 조사를 받기 시작해 2003년 7월 징역 18년을 선고받았다. 어우야 그룹은 공중분해됐으며 그는 지금도 차디찬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 일각에서는 그가 중국 해군에 몸담고 있던 시절 중국의 미사일 기술을 북한에 유출했기 때문에 체포됐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중국 공산당과 사영기업가(私營企業家)의 관계
1950년 중국은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며 국가주도의 경제개발 원칙을 고집했으나, 1980년에 이르러 사영기업가가 부활했으며 현재 이들은 중국 전체 GDP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 정치학계는 사영기업가가 중국의 정치 및 사회분야에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켜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의 달성이라는 씨앗이 될 것으로 전망하는 쪽과, 국가의 뜻과 부합하는 도구적 역할에 국한될 것이라는 보는 쪽이 대립하는 상황이다.

다만 1990년대 사영기업가의 폭발적 증가를 경계했던 중국 공산당이 이들을 통일전선대책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과 달리, 2001년 장쩌민 당시 주석의 삼개대표론은 사영기업가를 중국이라는 거대한 사회의 새로운 엘리트 계층으로 포용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영기업가는 다른나라와 약간 다른 정체성을 가지게 됐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국가의 뜻과 부합하는 도구적 역할에 국한될 것이라는 보는 쪽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알리바바로 돌아오면, 당초 마윈 회장과 알리바바가 중국 공산당과 각을 세우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마윈 회장의 캐릭터가 독특한 구석이 있고, IT기술을 기반으로 하며 글로벌 센스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다른 사영기업가와 분명히 대비되는 점이나 그렇다고 중국 공산당의 데스노트에 스스로 이름을 적힐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화려했던 시절로 돌아가나
사실 알리바바는 물론, 바이두와 텐센트 등 소위 BAT는 중국 공산당 최고 지도부와 꽤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중국의 IT주간에 따르면 2013년 공산당 중앙정치국 소속 지도자와 가장 접촉이 많았던 민간기업은 알리바바와 바이두, 텐센트였다. 접촉이 많았던 상위기업 10개 중 7개가 국유기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BAT는 중국 공산당과 끈적끈적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알리바바는 정치국위원과 6차례, 텐센트와 바이두는 5차례 회동을 하며 중국 공산당과 유대관계를 유지했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중국 공산당이 새로운 시대를 맞아 공들이는 사업 대상군이 IT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며, 이러한 IT기업들도 중국 공산당의 정책이 자신들의 사업에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이유로 BAT 경영자들은 모두 중국 공산당내에서 지위를 가지고 있다. 이정도면 밀월이 아니라, 아예 한 몸이다.

결국 일각에서 제기했던 알리바바와 중국 당국의 힘겨루기는 사실상 신기루였다. 알리바바의 백기투항은 기정사실이었으며, 운명처럼 이뤄질 수순이었다. 중국을 이해하려면, 중국에서 사업을 이해하려면 다양한 분석과 고찰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