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세 원장.

‘화’가 많이 나는 세상이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말이다. 뛰어놀아야 할 어린아이들은 선행학습에 짜증이 가득하다. 청소년들은 학교 폭력과 왕따에 주눅이 들고 무관심한 사회에 대한 적개심이 적지 않다. 청년들은 스펙을 아무리 쌓아봤자 일자리가 없으니, 당장 먹고살 걱정에 분노가 치민다. 중년들은 백수인 아들과 노후 대책 없는 부모님 봉양에 허리가 끊어진다. 노인들은 오늘도 차가운 골방에서 다섯 명에 한 명꼴로 고독사(孤獨死)를 맞을 운명에 처해있다. 사방팔방 분노로 가득하니, 그 안에 있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숨을 못 쉴 지경이다. 모두가 ‘화’ 때문이다.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겠는가.

‘화’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화가 나면, 코티솔(Cortisol)이나 아드레날린(Adrenalin)과 같은 분노호르몬이 분비되면서 몸은 ‘싸우거나 도망칠’ 준비를 한다. 눈동자가 커지고, 호흡이 가빠지면서 심장이 방망이질 친다. 근육에 힘이 들어가 심하면 손발이 떨리기도 한다. 에너지를 공급하는 신진대사도 급격하게 증가한다. 이런 상태는 화가 가라앉으면 자연스럽게 정상적으로 돌아오지만, 반복적인 화나 급격한 분노가 생기면 문제가 생기기 쉽다. 그래서 화가 많은 사람일수록 심혈관계 질환이 훨씬 많이 발생한다. 기억력과 판단력 같은 뇌의 기능도 떨어진다. 우울증이나 화병이 발병할 가능성도 많아진다. 화를 감당하지 못할 경우 행동이 거칠어지고 공격적으로 변해 대인관계가 나빠질 수밖에 없다. 개인뿐만이 아니다. ‘화가 많은 사회’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구성원 간의 반목과 폭력적인 행동은 물론이고, 타인에 대한 배려나 희생은 아예 생각도 못 한다. 점점 각박해지고 무서워진다.

화가 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개인적인 애티튜드(Attitude)나 가치관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평소 적대적이거나 피해의식이 많은 사람은 화를 달고 산다. 신체의 상태도 영향을 준다. 몸과 마음이 이완되고 느긋할 때는 화가 잘 안 나지만, 피로하거나 긴장하게 되면 화가 쉽게 난다. 사고가 부정적인 사람도 화가 많다. 작은 나쁜 일도 큰 비극으로 확대해석하기 일쑤다. 더불어 사회 전체의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정의가 구현되지 않거나 안전 문제로 생존에 위협을 받거나 배려가 없고 무관심한 사회에는 분노가 폭등한다.

화가 나면 ‘짐승’이 되는 이유

본래 ‘화’와 ‘분노’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 중의 하나이다. 인간의 모든 감정은 나름의 의미를 갖고 진화를 해왔다. ‘질투’의 감정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겠다는 의미와 역할을 하듯이 ‘분노’는 ‘나를 업신여기지 마! 그러다간 큰 코 다칠걸!’이라고 경고하는 목적이 있다. 문제는 일단 화가 나면 이런 목적을 까맣게 잊고, 파괴적으로 행동하는 데 있다.

이유가 있다. 인간의 뇌는 진화를 거듭하면서 태생학적으로 3가지로 구분된다. 우선 숨골을 포함한 ‘양서류의 뇌’가 있다. 이 하위단계의 뇌는 호흡, 식욕, 성행위 등 생존을 관장한다. 그다음 위쪽에 ‘포유류의 뇌’가 있다. 중간단계의 뇌가 하는 역할은 기억이나 사회화와 관련되지만, 주로 불안, 공포, 질투, 미움, 사랑과 같은 감정을 지배한다. 분노 역시 포유류의 뇌에 지배를 받는다. 그리고 맨 바깥쪽에 ‘신피질’이 존재한다. 인간에게만 존재한다는 이 부위가 하는 역할은 언어의 중추이며, 동시에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을 가능하게 한다.

안정된 상태의 일반적인 성인의 경우, 일상 대부분을 신피질의 뇌가 지배한다. 하지만 화가 나면 달라진다. 화가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포유류 뇌의 기능이 점점 강력해져서 마침내 뇌 전체를 지배하게 된다. 결국,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와 행동은 자취를 감추고, 감정적이고 폭력적인 상태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화가 나면 앞뒤 가리지 않고 짐승만도 못한 행동을 하는 이유다.

충동조절장애

감정의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화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의로운 분노’라는 것도 있다. 안중근의사의 이토히로부미 저격과 같은 것이다. 또 어떤 경우에는 작정하고 화를 내서 혼쭐을 내주어야 할 때도 있다. 화가 가진 순기능이 그런 것이다. 그런데 유독 화가 나면 문제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

소위 ‘충동조절장애’ 또는 ‘분노조절장애’라는 병이 있는 사람들이다. 분노조절장애는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억제하지 못하는 경우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별것도 아닌데 버럭 성질부터 내고 만다. 그리고 자기 성질을 조금이라고 거스르면 주먹부터 올라가고 본다. 그러므로 당연히 주위와 문제를 많이 일으키고, 심지어 상습 폭행범으로 낙인찍히기도 한다. 이 정도가 되면 행복은 입 밖에 꺼내기도 어렵다. 당사자는 물론 주위 사람들마저 모두 불행에 몰아넣기 때문이다.

걱정되는 부분은 분노조절장애 환자가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질병 통계에 의하면 2007년 1660명이었던 충동조절장애 환자가 2011년에는 3015명으로 4년 사이에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런 문제로 정신과를 찾는 경우가 드물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환자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치료는 화를 조절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겠지만, 충동을 억제하는 약물로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화를 다스리는 법

우리 시대에 화를 다스려야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다. 하지만 잘 다스리기만 하면 나는 물론이고 주위 사람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스스로 화가 난 상태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화가 난 친구에게 ‘너 화났어?’하면 ‘아니!’라면서 화를 내는 경우가 흔하다. 물론 화가 난 것을 숨기기 위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정말 스스로 화가 난 것을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스스로 화가 났다는 것을 모른다면 화를 다스릴 방도가 없다. 화가 나면 사람마다 특징적인 변화가 있다. 어떤 사람은 얼굴이 붉어진다든지, 또 어떤 사람은 목소리가 떨리기도 한다. 이러한 특징이 화를 낼 만한 상황에서 나타난다면, 자신의 화를 인정해야 한다.

두 번째 단계는 무조건 즉각 탈출이다. 분노를 유발하는 호르몬은 15초 이내에 피크에 도달하고 그 이후에는 서서히 분해되어 사라진다. 적어도 30초만 피해있으면 분노반응은 누그러지게 마련이다. 화가 인지되면, 즉각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라.

그다음 단계는 산책이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걷기만 해도 화는 많이 가라앉게 된다. 좀 더 효과적으로 분노를 관리하려면, 다음 4가지 생각에 집중해야 한다. 1) 왜 화가 났을까? 정당한 화인가? 2) 무엇을 위해 화를 내는가? 화의 목적은 무엇인가? 3) 그렇다면, 과연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4) 다른 방법은 없을까? 화내지 않고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만약 화를 낸 이유가 정당하지 않다면, 당신의 화는 그저 습관이므로 고치도록 노력해야 한다. 화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그 목적을 이룰 방법에 집중해야 한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산책을 하다 보면, 어느새 분노는 사라지고 평온한 마음만 남게 된다.

화는 ‘내 몸에 슨 녹’과 같다고 했다. 화가 커지면 커질수록 우리 몸은 바스러진다. 화가 나서 죽겠다고? 당장 화를 멈추고 밖으로 나가 생각을 정리하자. 좀 더 건강하고 행복해지고 싶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