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처럼 스쳐 지나가는 계절의 미각을 느끼기에는 제철 음식만한 것이 없다. 찬바람 부는 겨울, 살이 오동통 올라 그 미각의 빛을 바라는 꼬막은 일반적으로 봄이 제철인 다른 조개들과는 달리 겨울에 먹어야 제 맛이다.

소설 ‘태백산맥’에 묘사된 것처럼 ‘간간하며 쫄깃하고 알큰하며 배릿하기도 한’ 꼬막은 우수한 맛과 영양을 자랑하여 임금님 수라상에도 오르는 진미 중 하나다. 참꼬막과 피꼬막, 새꼬막 이렇게 세 종류가 있다. 그 중 찰진 갯벌, 벌교에서 나는 참꼬막을 으뜸으로 치는데 제사상에도 오른다 하여 제사꼬막이라고도 불린다.

매년 설날 아침 조상님께 새해 소망을 담은 우리 집 차례 상에는 정성스레 손질된 꼬막이 올라간다. 다른 조개보다 표면에 홈이 깊이 파여 흙이 많이 묻어나는 꼬막은 여러 차례 씻어 소금물에 해감한 후 솔로 하나하나 깨끗이 닦아내야 하는 수고가 필요하다. 그래도 살짝 데쳐 매콤한 양념장 얹은 꼬막을 쏙쏙 빼먹는 그 맛은 고단한 손질 과정도 금세 잊게 할 만큼 감미롭다.

꼬막은 다른 조개보다 그 맛이 진하고 쫀득쫀득 씹히는 감촉이 좋아 찜뿐만 아니라 다양한 요리로 변신이 가능한 식재료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듯, 나는 얼마 전 회 먹으러 나들이 갔던 수산시장에서 벌교에서 막 상경한 듯 싱싱한 꼬막을 사 들고 왔다.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가격에 뭔가 특별한 맛으로 멋을 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택한 메뉴는 ‘꼬막파스타’와 ‘꼬막전’. 입이 벌어지기 전에 살짝 데친 꼬막을 껍질 발라 따로 담아두고 계란 물에 갖은 야채와 버무려 노릇이 팬에 구워 홍고추 청고추 고명을 올리니 쫀득한 식감이 그럴 듯한 꼬막전이 완성됐다.

다음은 꼬막 파스타 차례. 편으로 총총 썰어놓은 마늘과 칼칼한 맛의 청양고추를 올리브유에 달달하게 볶고 여기에 삶지 않고 남겨둔 꼬막을 입이 벌어질 때까지 자글자글 볶아 링귀니(스파게티 면보다 조금 납작한 파스타 면)를 넣었더니 어느새 윤기 좔좔 흐르는 근사한 꼬막 파스타가 탄생했다. 색감과 시원한 감칠맛을 살리기 위해 냉장고 한편에 있던 부추와 홍고추도 마지막 단계에 넣는다.

꼬막의 새로운 맛에 연신 “맛있다! 맛있다!” 외치며 꼬막 파스타와 꼬막전이 담겼던 접시가 쥐도 새도 모르게 깨끗해졌다. 겨울철 보양식으로 손색이 없는 꼬막은 뼈가 약한 노인과 어린이에게 풍부한 칼슘을 제공하며 빈혈에 좋은 철분과 비타민B12, 필수아미노산이 풍부해 여성에게도 좋다. 서양에서는 산모에게 산후 회복식으로 꼬막을 듬뿍 넣고 만든 크램챠우더(조개수프)를 제공하는데 칼로리가 높아 영양식으로 손색이 없다.

삶으면 쫄깃한 식감이 골뱅이와 비슷한 꼬막은 매콤상콤한 고추장 양념에 신선한 채소와 버무리면 잘 어울린다. 간의 독성을 해독하고 숙취 해소에 좋은 타우린과 베타인 또한 풍부하다. 더불어 혈관에 쌓인 노폐물이나 독성 물질을 배출하는 작용을 하여 혈색을 맑게 하고 동맥 경화 예방에 도움을 준다. 고단백 저지방 저칼로리의 알칼리성 식품 꼬막으로 겨우내 추위에 움츠렸던 기력을 회복해 보자.

꼬막 오일 파스타 레시피

재료…깨끗이 손질된 꼬막 한줌(15~20알), 링귀니 또는 스파게티 75g, 마늘 3톨, 다진 양파 3큰술, 청양고추 1/2개, 홍고추 1/2개, 화이트 와인 3큰술, 파스타 삶은 물, 올리브 오일, 소금 후추.
만드는 방법
1. 물 4컵, 올리브 오일 1큰술, 소금 약간 넣고 끓는 물에 파스타 면을 알단테로 삶는다.
2. 편으로 송송 썬 마늘, 청양고추, 다진 양파를 올리브 오일에 타지 않게 볶는다.
3. 2번에 손질된 꼬막을 넣고 볶다가 화이트 와인을 넣고 꼬막이 벌어질 때 쯤 삶아둔 파스타, 홍고추를 넣고 소금 후추로 간한다.
4. 파스타가 드라이하면 파스타 삶은 물을 조금 넣고 조절하고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을 한 번 더 둘러준다(이는 한식에서 참기름을 마지막에 첨가해 풍미를 더하는 식과 같다).
Tip…매운 성질과 잘 어울리는 부추 또는 바질을 기호에 따라 꼬막 오일 파스타에 추가시켜도 좋다.

김애리
영국 Kent 지역 Thanet College 요리 제과부문 전공/런던 ST Martins Lane Hotel, Asia de Cuba 레스토랑/시드니 Hat 2개 Lucio’s 이태리 레스토랑에서 근무/푸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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