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코닥처럼 된다”는 말이 있다. 시대의 흐름을 놓치면 실패에 이르게 된다는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다. 아직 코닥은 건재하지만 업계에서 실패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어쩌다 ‘필름 명가’가 ‘반면교사의 대명사’로 추락한 걸까. 한편, ‘즉석카메라의 신화’ 폴라로이드는 ‘코닥처럼 된’ 업체 중 하나다.

우연일까. 코닥과 폴라로이드는 나란히 CES 2015에 등장했다. 매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는 대규모 가전전시회다. 전자업계 트렌드가 총망라된 현장으로 많은 인파가 몰린다. 카메라 사업으로 명성을 얻은 두 회사가 선보인 것은 신형 카메라가 아니었다. 다름 아닌 ‘스마트폰’이었다.

▲ 코닥이 CES 2015에서 선보인 스마트폰. 출처=코닥

코닥은 스마트폰 IM5를 공개했다. 코닥의 첫 스마트폰인 이 기기는 큼직한 UX(User Experience)가 특징인 실버폰이다. 가격은 249달러(약 27만원)으로 중저가 라인업에 해당한다. 폴라로이드는 다양한 제품군을 공개했다. 사실 작년 CES에도 스마트폰을 선보였는데 이번에는 모델 수를 늘렸다. 이들이 어쩌다 스마트폰 사업에 뛰어든 걸까?

 

아득한 영광의 시절

코닥과 폴라로이드에 영광의 시절을 안겨준 물건은 ‘필름’과 ‘카메라’다. 명실상부한 ‘필름 명가’인 코닥은 한때 필름 시장을 독점하며 황금기를 누렸다. 폴라로이드는 세계 최초로 즉석카메라를 만든 회사다. 전용 필름을 판매해 이룬 초고속 성장은 역사가 됐다.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당신은 찍기만 하세요, 나머지는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You press the button, We do the rest).” 지난 1888년 코닥의 광고 카피다. 코닥은 100년도 더 전에 자동 스냅샷 카메라를 저렴한 값에 선보였다. 이로써 카메라는 대중의 물건이 됐다. 코닥은 카메라를 전파하고 필름을 팔아 몸집을 불렸다.

▲ 출처=폴라로이드

1975년에는 디지털카메라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역사적인 회사의 선견지명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1990년대엔 매년 1억원대가 넘는 일회용 카메라를 판매했다. 특허도 착실하게 수집하며 기업 가치를 끌어올렸다. 그렇게 코닥은 ‘미국 25대 기업’에 이름을 올리며 승승장구했다.

한편, 폴라로이드도 영광의 시절을 보냈다. 물리학자이자 폴라로이드 창업자인 에드윈 H. 랜드에게는 3살짜리 딸이 있었다. 딸은 그에게 “왜 사진은 찍은 뒤에 바로 볼 수 없어요?”라고 물었다. 이것이 계기가 돼 1944년 랜드는 즉석카메라 개발을 시작했다. 그렇게 4년이 흘렀고 독보적인 기술이 담긴 카메라가 탄생했다.

‘파괴적 혁신기술’이라고 불릴 만큼 즉석카메라 기술은 주목받았다. 오토매틱100, SX-70 등은 사진의 역사에 이름을 올린 카메라가 됐다. 타사도 뒤늦게 즉석카메라 분야의 진출을 노렸다. 코닥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1986년 특허권 분쟁을 통해 폴라로이드는 코닥을 주저앉혔다. 535개의 관련 특허가 폴라로이드를 지켰다.

폴라로이드의 매출 성적표는 실로 놀라웠다. 1948년부터 1978년까지 30년간 연매출 성장 23%, 연간 순익성장 17%라는 경이로운 실적을 기록했다. 30년 동안 매출은 497배, 이익은 111배 성장한 셈이다. 폴라로이드는 즉석카메라 분야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갔다. 딸의 한마디에 영광의 역사가 탄생한 것이다.

 

뼈대가 무너졌다

영광에 영원은 없었다. 두 회사는 아찔한 내리막길을 경험하게 된다. 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필름 사업이 특히 문제였다. 이들은 ‘필름 독점’이라고 부를 만큼 이 분야에서 많은 돈을 벌었다. 독식 체제는 공고했다. 하지만 필름 사업에 신경 쓴 나머지 시대의 흐름에는 무신경했다. 시대가 필름이 필요 없는 디지털 중심으로 변하자 독점은 그 효용을 잃었다.

 

코닥은 세계 최초로 디지털카메라 기술을 보유했으면서도 기술을 묵혔다. 아날로그 필름 시장을 위협할 수 있다고 여긴 탓이다. 디지털카메라 사업을 열등한 비즈니스라고 여긴 채 20년을 가만히 있었다. 결국 일본 업체들이 줄줄이 디지털카메라를 출시했다. 아날로그 기술은 빠르게 디지털로 대체됐고, 코닥의 입지는 점차 좁아졌다.

이들은 지난 2012년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필름 사업을 접고 특허권을 매각해 가까스로 탈출했다. 고강도 다이어트로 직원 5만여명이 떠나고 공장 13곳을 매각한 뒤였다. 한우물만 파려다가 자신이 땅속에 묻히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결과다. 패러다임 전환기에 잘못된 판단으로 비운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폴라로이드도 필름 없이 사진 찍는 시대의 부적응자다. 시대 변화가 폴라로이드 비즈니스 모델을 뒤흔들었다. 이들은 1990년대 초 디지털카메라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뚜렷한 성과를 얻진 못했다. 다시 즉석카메라에 집중해 수익성을 회복하겠다며 마케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했지만 시대의 물줄기는 바뀌지 않았다.

1997년까지 60달러 수준이었던 주가는 2001년 28센트로 폭락해 기업 가치의 99.5%가 허공으로 날아갔다. 주주들은 재산을 모두 날렸고, 종업원은 대부분 일자리를 잃었다. 이들은 지난 2001년과 2008년 두 차례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2005~2009년 사이 최고경영자(CEO)가 6번이나 교체될 정도로 이들은 불안정했다. 결국, 폴라로이드는 2007년 카메라 생산을 중단했고, 2009년 필름 판매를 접었다. 뼈대가 무너져 내린 셈이다.

 

여전히 아날로그?

현재 코닥과 폴라로이드는 연명에 주력하고 있다. 두 회사는 여러 분야를 전전한 끝에 스마트폰 분야에서 다시 만났다. 이들의 미래는 알 수 없다. 더군다나 글로벌 모바일 시장에서는 피터지는 전투가 펼쳐지고 있다. 시장이 포화에 이르러 본격 치킨게임이 시작된 탓이다.

심지어 스마트폰 시장은 이미 레드오션이라는 진단까지 나왔다. 업체들은 그다음을 준비하려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따라서 코닥과 폴라로이드의 행보는 3밴드 LTE-A 시대의 3G 기술처럼 시대착오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디지털시대의 희생양이 돼버린 흑역사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들은 또다시 늦어버린 게 아닐까. 소비자는 냉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