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코노믹리뷰 송원제 기자)


PROFILE
■ 1959년 광주광역시 출생
■ 서울대 국사학과 졸업
■ 서울대 대학원 국제정치 전공 수료
■ 5공 시절 민주화 운동 참여로 5년 1개월간 투옥
■ 1992년 BNK(나우콤 전신) 입사
■ 나우콤 사업부장, 고객지원실장, 전략개발실장,
전략기획팀장 역임
■ 나우콤 서비스마케팅 총괄이사 역임
■ 2001년~현재 나우콤 대표이사

1990년 가을. 광주 출신의 서른두 살 청년이 입학한 지 무려 11년 만에 서울대 국사학과 졸업 학위를 따냈다. ‘일류 대학 출신’이라는 날개를 달았지만 앞날은 캄캄했다. 그가 새로운 직업을 찾기에는 장애요인이 너무 많았다.

나라의 녹을 먹는 공무원이 되자니 스스로 마음이 불편했다. ‘서울대 출신’이라는 학벌을 내세워 대기업에 지원하자니 ‘운동권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문제였다. 그렇다고 허공만 바라보자니 곁에 있는 아내와 아이가 눈에 걸렸다.

살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하는 절박한 처지에서 그는 모험을 선택했다. 전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IT업계로 눈을 돌린 것. 그가 IT업계에 입문한 것은 호구지책(糊口之策)의 심정이었다.

모든 이들이 그의 성공을 부정했다. 정통 이공계 인사들도 숱한 시련을 맛보는 IT업계에서 ‘먹물쟁이’ 문과 출신 인사가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20년 후 대한민국 IT업계의 거물급 인사로 성장했다.

남들의 예상을 뒤엎고 기적의 성공 드라마를 쓴 주인공은 바로 문용식 {$_001|나우콤_$} 대표다. 얼마 전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의 ‘트위터 설전’으로 본의 아니게 유명세를 치른 그는 대한민국 IT 역사의 변화를 온몸으로 경험한 IT업계 1세대 인물 중의 한 명이다.
문 대표는 자신을 ‘3성 장군’이라고 소개했다. 그가 말한 별은 다름 아닌 전과였다.

79학번인 그는 당시 운동권의 핵심 세력이었다. 1981년 전두환 전 대통령 취임 반대 시위였던 ‘3·19 사건’을 비롯해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일명 깃발 사건)’ 등 각종 민주화 운동을 주동했다는 이유로 세 번의 옥살이를 했다. 기간으로 따지면 5년이 넘는다. 20대의 절반을 감옥에서 보냈고, 서른 살도 감옥에서 맞았다. 당시 대부분의 민주 투사들이 그랬듯 그의 죄목도 국가보안법 및 집시법 위반이었다.

“한우물 파려면 최소 10년 지속해야”

그는 민주화 운동 참여와 옥살이를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고 회상했다. 특히 교도소 독방에서 얻은 깨달음은 인생의 좌우명이 됐고, 작은 벤처기업이었던 나우콤을 굴지의 중견기업으로 성장시킨 밑거름이 됐다.

“무슨 일을 하게 되면 최소 10년은 해야 된다는 것을 독방에서 깨달았습니다. 민주화 운동도 처음에는 잘 몰랐다가 10년 정도 해보니 민주화 운동의 메커니즘, 장단점이 눈에 보이더군요. 경영도 똑같습니다. 무슨 일이던 최소 10년은 해봐야 그 방면에 통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1992년 박성현 고려시멘트 대표의 소개로 나우콤의 전신인 BNK(한국출판정보통신)에 입사했다. 서울대 77학번인 박 대표와 문 대표는 운동권 선후배지간이었다. 당시 BNK는 EDI(기업 간 거래 문서 전자 송수신 시스템) 기반의 출판유통 부가통신망 사업을 펼쳤다.

BNK가 제공했던 책 전문 정보 서비스 ‘북네트’는 게시판과 자료실의 구조를 갖춘 PC 통신 서비스로 발전했고, 이는 공전의 히트 브랜드 ‘나우누리’로 성장했다. 나우누리는 1994년 첫 서비스 제공 후 국내 대표 PC 통신 브랜드로 명성을 떨쳤다.

순수 민간 기업으로는 최초로 PC 통신 상용화에 성공한 나우누리는 KT의 하이텔과 데이콤 천리안 등 대형 업체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대등한 경영 성적표를 내며 ‘PC 통신 전성시대’를 열었다.

2000년대 초 삼성(유니텔), LG(채널아이), SK(넷츠고) 등 재벌기업들이 PC 통신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도 이들에게 위축되기보다 오히려 이들을 능가하는 실력을 보여줬다.

2002년 별도의 독립법인으로 분사할 때까지 문 대표는 나우누리에 온갖 열정을 쏟아 부었다. PC 통신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던 그가 각종 부서를 옮겨 다니며 PC 통신 업계를 주름잡는 도사가 되기까지는 꼬박 7년이 걸렸다.

군림보다 소통을 중요시하라

그는 예전부터 쓰던 휴대전화 이외에도 스마트폰을 따로 쓰고 있다. 시대의 트렌드에 맞춰서 살겠다는 그만의 의지 때문이었다. 지난해 그를 깜짝 스타로 만든 트위터는 그가 즐겨 찾는 놀이터다.

그는 평소에도 스마트폰으로 트위터에 자주 접속해 글을 남기는 편이다. 팔로워들의 멘션에는 일일이 답을 해주는 등 누리꾼들과의 소통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문 대표에게 본인이 생각하는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묻자 “소통이 없는 조직은 죽은 조직”이라고 답했다.

“제가 가끔 하는 뼈 있는 농담이 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CEO의 C는 ‘Chief(최고)’죠.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CEO의 C는 다릅니다. 바로 ‘Communication(커뮤니케이션)’입니다. 왕처럼 군림하는 CEO보다 소통하는 CEO의 성공 확률이 높습니다.”

그는 “조직관리의 핵심에는 소통이라는 키워드가 담겨 있다”면서 “진정으로 마음을 열고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주고받는다면 사회 발전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표는 CEO가 반드시 갖춰야 할 또 다른 덕목으로 ‘자율성 존중’을 강조했다. 직원들이 모든 일에 있어서 자기 소신껏 자신 있게 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CEO의 임무라는 것이다. “상명하복(上命下服) 식의 경영 마인드로는 즐거운 회사 분위기 조성이 어렵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평소에는 직원을 하인 부려먹듯 대하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만 우는 아이 달래는 것처럼 즐거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 방법은 오히려 사람에게 더 큰 상처와 배신감만 심어줄 뿐이죠. 직원들 의견을 평소에 잘 듣고, 그들이 자율적 판단을 할 수 있게끔 직원들을 배려하는 것이 즐거운 회사 만들기의 초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송원제 기자)


중소기업의 생존 비법은 시대의 트렌드를 읽는 데 있습니다.
더불어 자기혁신 뒤따르면 70%의 성공 이루죠.

“아직은 생존력 강한 하이에나”

문 대표는 나우콤을 ‘하이에나’로 비유했다. 고상한 표현을 놔두고 하이에나라니. 하이에나는 밀림을 떠돌다 사자가 먹잇감을 다 먹고 난 찌꺼기를 게걸스럽게 먹는 ‘밀림의 청소부’가 아닌가.

하이에나 별명의 의미를 묻자 그는 “꼽등이만큼 생존력이 강한 짐승이 하이에나라서 별명을 붙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원래 ‘나우콤=바퀴벌레’라는 표현을 썼는데 벌레 이미지가 너무 더럽다는 생각 때문에 하이에나로 바꿨다”고 덧붙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우콤은 지난 20년간 모진 시련 속에서도 질긴 생존력으로 버텨왔다. 대주주 회사가 한 번만 바뀌어도 대부분의 회사들이 휘청하지만, 나우콤은 대주주 회사가 5번이나 바뀌었음에도 굳건히 간판을 지켜냈다.

회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뻔 했던 적도 있다. 삼보컴퓨터그룹 계열사인 두루넷 자회사로 운영되던 시절의 일이다. 국내 최초의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공급업체였던 두루넷은 1999년 국내 기업으로는 최초로 나스닥에 상장되는 등 무서운 성장 속도를 보였다.

하지만 2000년대 초 ‘IT 버블 붕괴’ 때문에 심각한 자금난에 빠졌고, 두루넷을 구하기 위한 대책으로 나우콤과의 합병 계획을 내놨다. 당시 두루넷은 나우콤과 합병한 뒤 두루넷의 포털 ‘코리아닷컴’과 나우콤의 ‘나우누리’ 서비스를 통합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삼보컴퓨터그룹과 나우콤 사장이 모두 수락한 안건이었다.

하지만 당시 이사였던 문 대표가 제동을 걸었다. 나우콤이 두루넷과 합병되면 두 업체가 공멸할 것 같다는 직감이 그의 뇌리를 스친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지금의 두루넷처럼 흔적 없는 존재가 될까봐 두려웠죠. 그래서 이홍순 삼보컴퓨터 부회장(이용태 삼보컴퓨터 창업주의 장남)에게 메일을 보내서 긴급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다행히 이 부회장과 면담이 성사됐고 2시간 동안 합병 반대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습니다. 결국 합병은 번복됐죠.”

IT 사업은 농부의 경작 과정과 같아

문 대표가 두루넷과의 합병을 극렬하게 반대한 것은 당시 두루넷 경영진들의 엉뚱한 경영 마인드 때문이었다. 그는 합병 반대 당시 “IT 사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이들과의 합병은 곧 공멸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탁상행정’이라는 말이 있죠. 당시 두루넷 경영진들은 ‘탁상경영’ 마인드였습니다. 책상 위에서 도깨비 방망이 두드리듯 뚝딱 하면 그럴싸한 결과물이 나올 것처럼 생각하더군요. 그런 마인드로 IT 기업을 꾸리고 있다는 것에 경악했습니다. IT 산업을 일반 제조업처럼 이해한다면 아무리 기반이 좋아도 백전백패입니다.”

그는 “IT 기업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곡식을 길러내는 농부의 마음으로 경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IT 산업의 결과물은 공장의 기계에서 찍어내는 공산품이 아니다”라면서 “아주 작고 기초적인 것에서부터 한 단계씩 차근차근 올라가야 성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 대표는 “IT 업계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트렌드 적응과 꾸준한 혁신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고 할지라도 시대의 트렌드를 읽지 못하고, 옛것에만 의존하면 바로 무너지는 곳이 IT업계이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로 먹고 사는 중소기업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트렌드 적응이 필수 조건입니다. 트렌드는 경영 성공의 70%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시대의 트렌드를 제대로 읽고 그에 맞는 자기 혁신이 있어야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는 앞으로 우리 경제를 이끌어나갈 청년들에게 “고생하는 삶을 살라”는 조언을 남겼다. 특히 연봉이나 근무 환경 등 가시적 지표에만 고민하는 최근의 세태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요즘 청년들은 ‘내가 여기서 얼마나 클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여기는 연봉이 얼마나 되나’하는 생각만 합니다. 안타깝습니다. 눈에 보이는 몸값을 좇다보면 그 인생은 불행해집니다. 힘든 환경이더라도 자신이 있는 위치에서 경력과 평판을 높여야 합니다. 돈은 있다가도 없어지지만 경력이나 평판은 한 번 생기면 평생 가는 자산이니까요.”

문 대표는 앞으로의 꿈에 대해 “나우콤의 이미지를 하이에나에서 사자로 업그레이드 시키겠다”는 거창한 한마디를 남겼다. 그는 “스마트 시대는 우리 모두가 또 한 번 도전할 수 있는 기회”라면서 “시대의 트렌드에 적절하게 대응한다면 하이에나가 사자로 변신하는 날도 멀지는 않을 것”이라며 웃어보였다.

정백현 기자 jjeom2@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