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채권단은 지난 14일 현대차그룹과 매각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작은 사진은 현대건설 김중겸 사장.


2001년 채권단 관리에 들어갔다. 2003년엔 창립 이후 지켜오던 시공 능력 1위란 완장도 뺏겼다. 2000년 워크아웃을 선언한 현대건설의 얘기다. 주인을 잃고 난 뒤 자체 경쟁력이 떨어지자 경쟁사의 집중적인 견제 앞에 과거의 영광은 맥없이 무너지는 듯 했다.

김을 매는데 주인이 아흔아홉 몫을 한다는 말이 있다. 주인이 없으면 잘 되던 일도 안 되고 없던 악재도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현대건설은 달랐다. 임직원이 똘똘 뭉쳐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2008년 경기 불황엔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고, 2009년부터 시공 능력 1위 자리를 되찾았다. 내친김에 2010년 해외 수주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 국내 업계 최초다. 특히 미국 다우존스 지속가능 경영지수에서 업종 선도기업으로 뽑혔다.

혹자는 그동안 업계 1위를 하며 보유하고 있던 인력과 영업망이 있으니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을 게다. 채권단이 선발한 유능한 CEO가 나서 제대로 운영만 한다면 거둘 수 있는 성과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운영,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주인이 아닌 CEO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적다. 기술 개발과 인력 관리, 홍보 등을 위한 예산 집행을 위해선 채권단의 사전 결제가 있어야 가능하다. 공격적 투자와 빠른 업무 처리가 불가능한 구조다. 경영 중 갑작스런 상황이 닥쳤을 때 대처하는 능력은 급격히 떨어진다.

사례는 있다. LG전자는 지난 9월 남용 부회장을 사퇴시켰다. 업무 능력이 떨어진다는 게 이유다. 정확히 말하면 스마트폰 실적 부진이 빌미를 제공했다. 남 전 부회장을 대신해 구원투수로 오너 일가인 구본준 부회장을 전면에 내세웠다.

구 부회장이 LG디스플레이 재직 시절 보인 과감한 공격투자가 부회장 취임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여기에서 생각해 봐야 할 게 있다. CEO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디까지인가라는 점이다. CEO는 주인이 아니다. 투자에 있어 공격적이지 못하다. 돈이 들어가는 일은 주인(오너)의 지시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실제 남용 전 부회장은 사퇴 직전 지식경제부로부터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바 있다. 또 스마트폰 관련 별도 조직을 만들어 실적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사업 역량 강화를 위해 주요 모델·지역별로 나누었던 팀을 통합하고 해당 총괄 책임자도 과거 부장급에서 부사장급으로 교체했다. 이후 번호이동 고객이 많이 풀리는 2011년에 주목, 옵티머스 등 전략 제품을 출시할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진다.

현대차서 10조 실탄 “날개 달았다”

전례 없던 글로벌 금융 위기로 시작된 건설 불황에도 현대건설은 잘 나가고 있다. 올해는 매출·수주·순익 면에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할 전망이다. 매출액은 11조 원을 넘어섰다. 수주 물량도 110억 달러에 이른다. 현대건설을 자금난에 빠뜨렸던 이라크 미수 채권 회수 협상 타결로 인해 2008년부터 이자 수익도 거두고 있다.

현대건설의 성장에는 CEO 4인이 중심에 있다. 이들 CEO의 공통된 경영 키워드는 능동 경영이다. 회사가 직원에게 뭔가 해주기보다는 직원이 회사에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했다.

위기가 닥쳤을 때 극복해 내는 것은 직원 개개인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지송 전 사장과 이종수 전 사장은 “회사 주인이 누가 되던 열심히 노력하기만 하면 현재 상황에서 달라질 것은 없다”고 직원들에게 자주 언급했다고 한다. 김중겸 현 사장도 “회사의 전부는 사람”이라며 직원을 위해 업계 최고 수준의 환경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직원의 경쟁력이 곧 회사의 경쟁력이라는 것이다.

현대건설은 세계 최고 수준의 플랜트·원자력 발전소·토목 등 건설 능력을 갖추고 있다. 세계 최고 강도 콘크리트 개발 능력도 갖췄다. 주인이 없어 과감한 기술 개발 투자에 인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도 현대건설이 기술 경쟁력을 갖게 된 배경이다.

현대건설은 2011년 현대차라는 새 주인을 맞는다. 현대차는 국내 2위 기업으로 엄청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지속적인 투자가 바탕이 된다면 세계적 건설사로 자리매김 할 가능성이 크다. 멍석은 깔렸다.

현대차는 “인수 후 2020년까지 10조 원을 투자해 외형을 다섯 배로 키울 것”이라고 했다. 자동차와 철강, 건설을 미래 3대 핵심 성장 축으로 하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구축하고 세계적인 종합 건설회사로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현대건설의 미래 비전과 경영전략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다. 증권가는 현대건설의 주식가치의 상승에 대한 보고서를 쏟아내고 있다. 동양종합금융증권은 “2011년에도 해외 수주가 120억 달러를 넘고 매출액도 올해보다 1조 원 이상 늘어난 11조 원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래에셋증권은 업계 최고 수준의 수주 모멘텀에 힘입어 2011년과 2012년 주당 순이익(EPS)을 각각 4.5%, 5.4% 상향 조정했다. 특히 하이투자증권은 “현대차에 인수 후 현대엔지니어링과의 시너지 효과 등으로 국내 건설 업체로는 최초로 글로벌 플레이어가 될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현대차의 계획과 현대건설의 2015년 비전과 합쳐질 경우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김중겸 현대건설 사장은 “2015년까지 매출 23조 원, 수주 54조 원을 달성해 글로벌 건설사 톱20에 진입하겠다”고 말했다. 계획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구체적인 큰 그림도 그려 놨다.

우선 지난해 높은 성과를 낸 수익성 개선과 공존 다각화 전략을 계속 추진할 계획이다. 빠른 업무 처리가 가능해짐에 따라 조직간 시너지를 강화하고 기술력 개발 확대가 시작이다. 글로벌 종합건설사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디자인 마케팅, 품질, 상품, 서비스 등 역량 강화 한다는 구상이다.

시장 다변화에 따른 사업 포트폴리오 최적화 전략도 추진하고 있다. 플랜트·원자력·전력과 토목·건축·주택 부문의 사업이 50%씩 차지하도록 구성 완료 했으며, 국내보다 해외 물량 수주 확대를 꾀할 예정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올해 해외 물량 수주가 14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빠르면 1월 말, 늦어도 2월 안에 해외에서 40억 달러 규모의 해상교량 프로젝트와 대규모 발전소 프로젝트 성사가 있을 것이란 귀띔이다.

미래경영, 사람에서 답을 찾다 ‘인재 경영’

현대건설의 2011년 계획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직원교육 강화다. 1인당 업계 최고 수준인 264시간의 교육을 위해 100억 원을 사용할 예정이다. 경기 불황을 극복해 낼 수 있었던 것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다. 중심엔 김종수 사장이 있다.

“교육 투자비용, 1인당 교육시간을 업계 최고 수준으로 만들어야 한다. 인력운영 시스템을 정비하고 인사제도의 혁진 작업도 필요하다.”다양한 재능을 가진 글로벌 인재가 배출 돼야만 지속가능 경영을 벌인다는 게 김 사장의 지론이다. 이 중에서 인문학에 대한 지식을 쌓기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기술지식만으론 능동적인 시장 창출에 한계가 있다는 것. 해외 영업 확대를 위해선 폭넓은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직원의 외국 유학과 연수를 극대화 하고 서산연수원, 용인 기술연구소, 서울 현대건설인재개발원 등 3곳의 교육시설을 재편해 최상의 환경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현대건설이 사람에 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인 직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어려운 이웃과 상생을 시도하고 있다. 사람과 기업의 공존이 지속가능 경영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회사의 외형적 성장에 주력했다면 앞으론 사회적 기업으로서 한 단계 더 발전을 꾀하기 위해서다. 김 시장은 2011년 새해 첫 출근하는 임직원에게 기업 시민정신에 입각한 사회책임 실현과 윤리규범의 준수를 골자로 하는 ‘현대 웨이북’을 선물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 했다. 환경보호를 위한 녹색성장 체제를 구축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현대건설은 위기 때면 언제나 사람에게서 답을 찾아왔다. 주인이 없는 빠듯한 살림에서도 직원 교육과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2011년 현대차라는 든든한 주인을 만나 한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된 현대건설. 지난 활약보다 앞으로의 발전이 더욱 기대된다.

김세형 기자 fax123@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