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담뱃값이 오르면서 담배를 끊기로 한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건강을 위해서라기보다 돈도 없고 폼도 구기고 자존심이 몹시 상한 상태로 끊는다. 필자는 다행히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체형이 극심한 비만형이라 건강에 적신호를 안고 산다. 비만한 사람들은 살 빼는 약을 찾거나 다이어트를 통해 뱃살을 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살만 빼는 약이 따로 없다는 걸 안다. 섭취하는 열량을 줄이고 운동을 통해 지방을 태우면 자연스레 근육이 증가하고 지방이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영화배우들은 자신이 맡은 배역에 따라서 살을 빼기도 하고 찌우기도 하는 요술을 부린다. 필자가 아는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영화배우 크리스찬 베일이 있다. 그는 2~3년마다 살을 빼기도 하고 찌우기도 했다.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 2000>에서 그는 완벽한 몸매에 피부관리를 해가면서 온몸을 최고급으로 치장을 한 근육질 배우로 나온다. 그러나 영화 <머시니스트, 2004>에선 잠만 들면 자신을 괴롭히는 악몽에 시달리며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상태로 1년 동안 심각하게 몸이 말라버려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몸매를 보여줬다. 그는 이 역할을 맡으면서 54kg이나 체중을 뺐다. 무려 네 달 동안 커피와 물과 사과만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영화 <배트맨, 2005>에서는 육체미가 좋은 주인공이 되기 위해 고 탄수화물 식단과 영양분이 높은 식사를 하면서 체중을 불리고, 매일 3시간씩 육체미 운동을 꾸준히 한 결과 온몸에 근육이 붙고 뱃살은 식스팩으로 다시 변했다. 이후 영화 <아메리칸 허슬러, 2013>에서는 다시 배가 불룩하게 나온 아저씨로 등장하기 위해 살을 불렸다. 우리나라 배우로는 천의 얼굴로 통하는 설경구가 있다. 그는 영화 <실미도, 2002>에서 깡마른 모습이었지만 <역도산, 2003>에서는 몸살을 불렸다가 <공공의 적2, 2005>에서 다시 깡마른 몸매로 변신했다.

물고기가 육지에서 걷는다

아프리카에 나일강 수역에 서식하는 폴립테루스과(bichir, Polypterus senegalus)라는 민물고기가 있다. 주로 늪과 얕은 범람원 그리고 큰 강어귀에서 서식한다. 이 물고기는 특이하게 아가미 외에도 부레가 폐와 비슷하게 진화를 해서 육지에서 공기로 직접 호흡할 수 있다. 육지에선 강한 지느러미를 이용해서 짧은 시간 동안 이동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수족관에서 이 고기를 키우는 수조는 반드시 뚜껑을 설치하고 바닥 공간을 충분히 만들어 준다고 한다. 워낙 특이해서 애완용 물고기로 팔리기도 한다. 캐나다 오타와 대학의 에밀리 스탠든 교수는 이 물고기를 어릴 적부터 물에서 꺼내 육지에서 키우는 실험을 했다. 원래 이 물고기를 물속에서 꺼내 놓으면 바닥을 비비면서 뱀처럼 꾸불거리며 기어갔는데, 육상에서 8개월쯤 생활하게 되자 지느러미에 힘을 주고 몸을 곧추세우면서 뒤뚱거리며 앞으로 걷듯이 움직여 갔다. 움직이는 몸놀림이 상당히 복잡해지면서 보행 솜씨가 점점 더 좋아졌다. 놀라운 점은 그동안에 물고기 목뼈의 구조와 근육이 보행에 적합하도록 변했다는 사실이다. 어깨뼈가 길어지고 지느러미 뼈와 강하게 접촉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머리뼈에 접촉했던 뼈는 약해져서 머리를 좀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변했다. 참으로 놀라운 점은 이런 변화가 여러 세대에 걸쳐서 점진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당대에 바로 신체구조가 변화했다는 점이다.

생물학자들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동물의 구조가 다른 형태로 변하여 굳어지는 현상을 표현형 가소성(可塑性)이라 부른다. 가소성의 극적인 변화는 많은 학자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예를 들면 네덜란드 동물학자인 에버하트 요하네스 스레이퍼는 태어나면서 앞다리가 없는 염소가 캥거루처럼 뛰어다니는 것을 보고, 그 염소가 죽은 후에 골격을 조사해 보니까 근육과 골격이 2족 동물처럼 변해있었다고 보고했다. 노스이스트 오하이오 의과대학교의 아담 포스트는 쥐를 러닝머신 위에서 매일 한 시간씩 3달 동안 걷게 했다. 일부는 네 발로 걷게 했고, 일부는 두 발로 걷게 했다. 그 결과 두 발로 걸은 쥐는 다리가 길어졌고 넓적다리뼈의 대퇴골두와 고관절이 커졌다. 이는 2족 보행을 하는 동물들과 비슷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들을 진화라고 보는 동물학자는 거의 없다. 동물의 생애 동안 획득한 신체 변화는 일시적인 것으로 유전된다고 여기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스탠든 교수의 실험에서 길러진 물고기의 걷는 능력은 수족관 물속에서 살게 되는 후손에게 유전적으로 전해질 수 없다는 설명이다.

헐리우드 영화배우 크리스찬 베일은 영화 배역에 맞춰 체중과 체형을 자주 바꿔왔다.

유전정보 없이도 신체구조는 변한다

학자들은 동물들이 생애 동안에 경험한 정보가 후대에 유전되는 방법은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은 가소성이 진화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후대에 유전되려면 정자나 난자의 유전자가 먼저 돌연변이를 일으켜야 후손의 일부에서 신체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지금까지의 진화론은 유전자의 돌연변이 현상이 먼저 발생하고 후대에서 신체적으로 환경에 적응하는 데 이롭게 작용하게 되면 그 돌연변이는 널리 퍼지게 된다는 설명이다. 달리 말하면 우연한 돌연변이가 자연적인 선택을 받는다는 설명이다. 이것이 지금까지 진화론의 주된 설명이다.

궁금한 점은 ‘동물의 신체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다른 형태로 굳어져 버린 현상이 후대에 이어질 수는 없느냐’다. 학자들은 자연의 기후가 변하거나 먹잇감 동물인 경우에는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유전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즉, 모든 개체가 공통적으로 겪는 현상이라면 발현된 신체적 특징도 같아져서 자연스럽게 후대에 선택받게 된다고 한다. 다만, 시험적으로 한 개체만 다른 환경에서 길러준다고 유전적으로 모든 개체에게 새로운 형질이 퍼질 수는 없다는 결론이다.

하지만 스탠든 실험에서와같이 유전자를 물려받지 않았는데도 동물의 신체구조가 환경에 적응해 영구히 고착되는 현상은 왜 일어나는 걸까? 아마도 유전자의 메칠화가 발생하면서 후성적으로 유전자들이 작동하지 않도록 변했을 가능성이 높다. 무작위로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생해도 원리는 같다. 특정 환경에서 신체적 변화를 일으키는 이유는 생존을 위해서다. 이런 신체적 변화는 환경 조건이 원래 상태로 돌아가도 원래 모습의 신체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영국의 생물학자 콘라드 웨딩톤은 이런 변화를 유전적 동화(同化)라고 불렀다. 초창기엔 이런 변화가 유전자와 무관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유전자가 변했다고 보는 관점이 많다. 다른 말로 하면 온전히 고착된 신체변화는 유전적으로도 대물림될 수 있다는 관점이다. 즉,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발생한 후 환경에 적응한다는 이전의 진화이론과 함께 폴립테루스과에서 관찰했듯이 먼저 신체적인 구조변화가 진행된 이후에 환경에 맞게 유전자가 바뀔 수도 있다는 관점이다. 유전자 동화란 현상이 유전자 변형과 같은 진화로 해석될 소지가 짙어졌다.

극한의 조건에서만 변태한다

다시 살 빼기로 돌아와서, 동물 실험에서 관찰했듯이 내 체형이 비만 상태를 탈출하려면 생활환경을 극한적으로 바꿔줘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인체의 근육이나 골격이 느끼는 하중이나 피로감을 극한조건까지 누적되도록 하는 것이 살 빼기에 효과적이라 본다. 극한의 근육 피로조건이 반복될수록 인체는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하기 위해 근육이 강화되고 골격이 변하게 될 것이다. 체중을 줄이려면 당장 식단에서 탄수화물과 지방 섭취량을 크게 줄이고 축적된 지방층을 태워버리는 지구력 강화 걷기훈련 등을 꾸준히 실천해야겠다.

신체의 문제만이 아니다. 두뇌사고능력도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다. 새해 들어 디지털 기술 환경의 변화가 눈부시다. 아날로그적인 사고만으론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이 돌출할 것 같다. 디지털 경제가 확산하면서 탈물질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디지털 상품들이 창궐하면서 원자재 시장이 폭락하고 있다. 디지털화된 에너지 혁명이 태동하고 있다. 초연결사회는 온 인류의 지능을 디지털 정보로 변환시켜 클라우드에 축적시키고 있다. 디지털상품을 인터넷에서 찾아내는 공짜경제가 확산하고 있다. 누구나 어디서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원하는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정보민주화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구글 번역기는 온 세상 사람들과 자유롭게 실시간 대화가 가능하도록 동시통역 서비스를 개시했다. 디지털 혁명은 서로 다른 문화와 민족이 쉽게 교류할 수 있도록 언어장벽을 해체해 버렸다. 이런 환상적인 디지털문명에 제대로 적응하려면 극한의 디지털적 사고로 세상을 보는 디지털 유전자가 필요하다. 21세기 문명사회에서 생존해 나가려면 먼저 ‘디지털 신인류’로 변태해야만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