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성 은행장을 좀 본받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열린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권선주 IBK기업은행장을 공개적으로 칭찬했다. 크게 두 가지 측면이다.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과 기술금융 확대에 대한 의지다. 실제로 IT와 금융의 신조어인 핀테크가 시대의 대세로 부상하며 권 은행장은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미묘한 지점이 포착된다. 권 은행장의 비전은 당연히 공개적 칭찬의 대상이 맞지만, 기술금융과 더불어 현재 추진되고 있는 인터넷 전문은행 로드맵이 명확하게 정리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의 텐센트는 이미 위뱅크 로드맵을 시장에 '런칭'하며 본격적인 핀테크의 시작을 알렸다. 조만간 알리바바도 인터넷 전문은행에 뛰어들 태세다. 영국에서 시작된 인터넷 전문은행이 미국과 일본을 지나 중국에 이르러 폭발적으로 팽창하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지난해 7월 10일 금융위원회가 은행규제 개혁방안을 발표하며 최저자본금 요건을 갖춘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 허용의 가닥을 잡은 이후 같은해 11월 13일 지원을 위한 종합적 대책이 윤곽을 드러냈다. 이어 12월 22일에는 기획재정부가 2015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올해 3월까지 구체적인 인터넷 전문은행 지원 방안을 마련한다고 발표했으며 올해 1월 5일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신년사를 통해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 번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화룡정점은 1월 9일이다. 금융위원회가 TF를 구성해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 구체화를 확정하겠다는 정부안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업계의 반응은 엇갈린다. 금융쪽은 인터넷 전문은행에 호의적인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이 팽팽하며 IT쪽은 지극히 미온적이다.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15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에 회의적인 발언을 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 회장은 "(인터넷 전문은행에서) 좀 더 하더라도 크게 나아질 건 아니다"는 말로 사실상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에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겼다. 기존에 추진되고 있는 인터넷 뱅킹 서비스와 인터넷 전문은행의 차이점이 별로 없으며, 수익성도 낮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물론 한 회장의 발언이 다른 측면에서 해석될 여지도 있다. 기존에 방향이 설정된 인터넷 전문은행이 아니라, 차라리 은행과 카드를 비롯해 다양한 계열사의 기능을 종합한 빅데이터 기반의 '새로운 인터넷 전문은행'을 설립하겠다는 뜻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인터넷 전문은행의 바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곳도 있다. 서두에 설명한 권선주 IBK기업은행장과 더불어 지난해 12월 30일 취임 기자회견을 통해 “금융은 더이상 금융회사 간의 경쟁이 아니다”라며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천명한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사실상 인터넷 전문은행의 비전을 정조준한 사례다. 2금융권은 적극적으로 인터넷 전문은행을 타진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렇다면 IT는 어떨까? 당초 인터넷 전문은행이 추진되면 가장 빠르게 진입할 것으로 여겨졌던 네이버와 다음카카오는 의외로 정중동의 행보를 보이며 몸을 낮추고 있다. 네이버쪽은 인터넷 전문은행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여러차례 시사하며 사태를 파악하는 분위기며 뱅크월렛카카오와 카카오페이라는 핀테크 인프라를 보유한 다음카카오는 아예 "생각이 없다"고 단언하는 상황이다. 금융위원회 주도로 추진되는 금산분리 정책의 변화 및 산업자본 비율 책정 추이에 따라 상황은 달라지겠으나, 일단 현재 추진하는 O2O 및 기타 핀테크 서비스에 집중하며 인터넷 전문은행의 수익구조를 따져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종합하자면, 핀테크의 거대한 흐름이 빨라지며 인터넷 전문은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속에서 기존 금융권을 중심으로 찬반이 명확하게 갈리고 있으며, IT쪽의 반응은 한없이 제로에 수렴된다는 뜻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핀테크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가? 2000년대 후반부터 핀테크의 일부인 간편결제가 완전한 현실로 굳어지며 사업성이 감소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역으로 간편결제는 이제 누구나 추구하는 하나의 프레임이 되어버렸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핀테크의 중심을 인터넷 전문은행에 집중시키는 것은 필연적이다. 여기까지는 좋다.

하지만 글로벌 핀테크 시장의 배경과 우리의 배경이 조금 다르다는점에 주목해야 한다. 정확히 말해 금융제도 자체가 다르다. 게다가 중국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핀테크는 인터넷 전문은행의 바람을 타고 효과적으로 시장에 안착하고 있으나, 우리는 여전히 규제에 막혀 앞날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IT기업이 인턴넷 전문은행에 뛰어들지 못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기존 금융권이 인터넷 전문은행의 '정의'를 확실하게 내리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사실 규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다. 나라별로 금융문화와 체계가 다른 상황에서 우리만의 인터넷 전문은행이 필요한데, 우리는 이에 대한 논의를 정확하게 정리하지 못했다. 인터넷 전문은행을 빅데이터 분석과 개인간 대출 등 새로운 서비스를 탑재하는 방식이 아니라 단순히 점포가 없는 은행으로 여기기 때문에 벌어지는 이유다. 혼란의 이유는 결국 '과도한 규제와 우리만의 인터넷 전문은행 개념의 부재'다. 전자의 경우 금융위원회의 대책으로 일정정도 해결될 여지가 있으나, 후자는 철저하게 시장에 맡겨지는 느낌이다.

우리만의 인터넷 전문은행이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에 방점이 찍힌 정책이 필요하다. 무턱대고 글로벌 핀테크의 바람을 맹목적으로 도입한다면 국내 인터넷 전문은행은 고사하고 말 것이다.

인터넷 전문은행이 국내에서 논의되기 시작된지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인터넷 전문은행에 실패했으나, 지금 만약 실패한다면 그 이유는 개념의 정립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인터넷 전문은행이 어떤 일을 하는지, 기존의 인터넷 뱅킹과 무엇이 다른지, 구성은 어떻게 할 것인지, 무분별한 소액대출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지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 지금은 방향이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