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31년. 여행업계에서 30년 이상 몸담고 있는 경영자는 그가 유일하다. 업계 1위인 박상환 하나투어 회장보다 1년 앞선다. 홍기정 모두투어 사장의 얘기다.
홍 사장은 지난해 12월17일 청와대를 찾았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대통령 업무보고를 위해 업계 대표로 참석, 발전 방향을 들고 이명박 대통령과 직접 대면하기 위해서다.

홍 사장 한국의 관광자원은 엄청납니다.
이 대통령 …
홍 사장 가이드 육성 등을 통해 실업난 해소와 국가경쟁력 강화를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이 대통령 (무릎을 치며)G20 정상회의 만찬을 국립중앙박물관에 잡으라고 내가 지시했지.
한강 등을 보라고 말이지.

홍 사장은 대통령에게 관광지 개발과 여행업계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행 가이드로서 느낀 한국의 관광자원을 그냥 썩혀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홍 사장은 “해외를 다닐 때마다 느꼈던 점”이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여행 가이드의 사명감이랄까. 그의 인생사를 들여다보면 그렇다.

홍 사장은 사원 출신 CEO다. 대리, 계장, 과장, 차장, 이사, 전무, 부사장을 거쳐 사장에 올랐다. 알래스카에서 아프리카 희망봉까지 돌아다니며 좋은 곳이 있으면 소개하고 싶어 한다. 볼거리, 먹을거리 등을 소개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다.

그게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모두투어의 경영 이념은 ‘지성이면 감천’이다. 그는 “돈을 벌기 보단 최고의 휴식처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소비자를 감동시키려고 경영을 한 게 지금까지 일을 했더니 좋은 결과로 나타났다는 얘기다.

겸손한 말은 아니다. 모두투어는 지난해 지경부가 주최한 ‘인터넷소통고객만족도’ 조사에서 여행업계 1위로 뽑혔다. 소비자가 직접 선택한 만큼 의미가 크다. 소비자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면 삼고초려도 마다하지 않은 결과다.

때는 글로벌 금융 위기가 시작되기 시작한 2008년 초. 그는 중국 시장 진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저렴한 가격으로 좋은 휴식처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중국의 성장을 예상, 국내 관광사업 발전도 이뤄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컸다. 생각이 정리된 순간, 자본금 10억 원의 모두투어인터내셔널을 만들기 위해 발로 뛰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여행산업이다. 현지 시장 공략을 위해선 현지인의 영입이 절실했다. 타국 사람에 대한 견제가 심했고, 무엇보다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업무 효율을 높일 순 없었다.

‘한국과 중국을 잘 아는 능력 있는 현지 사람의 영입이 먼저 돼야 한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이 장유제 사장이다. 장 사장은 중국인이었다가 한국인으로 귀화, 국내에서 중국 관련 여행 사업으로 짭짤한 수익을 거두고 있었다.

“사업을 하며 수익을 거두고 있는 만큼 남에 밑에선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홍 사장은 그를 영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매일 같이 찾아가 공을 들였다. 홍 사장은 “단순한 이익보다 고객을 위한 시너지 효과를 생각해보자”고 말했다.

일본인 송출객과 중국 송출객 등 다양한 국가의 송출객을 보유하고 있는 모두투어와 모두투어인터내셔널이 힘을 합치면 최고의 여행사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제의다. 며칠 뒤, 장 사장은 홍 사장의 제의를 수락한다.

모두투어인터내셔널은 장 사장 영입 이후 급격한 성장세를 보인다. 설립 1년 만에 흑자를 거뒀고, 신라호텔로부터 4억 원의 투자를 받았다. 10억 원의 자본금 회사에 4억 원의 투자가 들어온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특히 국내 최고 호텔로부터 투자를 받았다는 것은 회사의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것이기도 하다.


2008년 말 위기와 정면으로 맞서다

방심하는 순간 위기는 말 없이 찾아온다. 2008년 말이 그랬다. 정확히 2008년 9월 이후부터 여행업계는 최악의 순간을 맞았다. 사스, 쓰나미, 9.11 테러, 금융 위기 등으로 인해 회사의 상황이 급격히 악화됐다. 홍 사장의 고민은 시작됐다.

“최고의 여행사를 만들기 위해선 직원 수를 줄일 수 없었다. 위기는 기회다. 바닥을 쳤으니 올라갈 일만 남았다. 2년 만 버텨보자. 그동안 줄일 수 있는 것은 모두 줄여야 한다.”

홍 사장 딱 2년이다. 경영이 정상화 되면 보상은 충분히 하겠다.
노조 위원장 구조조정만 하지 않으면 비상경영에 동참하겠습니다.
홍 사장 구조조정은 없다. 내 임금부터 깎겠다.

그가 가장 먼저 실행에 옮긴 것은 분기별 비상경영이다. 1년 단위로 움직이던 사업전략을 분기별로 나눴다. 매월 월례회의를 통해서 얼마를 벌고 얼마를 썼는지 확인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자신의 급여 50%도 자진 삭감했다.

급여 삭감을 통해 1000명의 직원 중 단 한 명도 구조조정 하지 않겠다는 결심에서다. 그의 결단에 과장급 이상 간부사원들도 동참, 30∼50%의 급여를 삭감해달라고 했다. 또 직원들이 1/3씩 돌아가며 무급휴가를 갔다.

직원 1000명 중 60%가 민주노총 노조원에 속해 있는 조직에서 자진 무급휴가가 이뤄졌다는 소식에 노동부도 깜짝 놀랐다. 또 위기의 순간 대출을 받아 회사 주식을 대량으로 매입했다. 경영 정상화를 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비상경영을 한 지 딱 1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무급 휴직과 통신료, 전기료 등 절감이 효과를 거뒀고, 그 즉시 전 직원에게 20만 원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그리고 올해 성과급으로 200%를 지급할 예정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홍 사장은 위기의 순간 직원을 채찍보다 당근으로 다스렸다. 흑자가 나면 직원들과 공유했다. 일한 만큼 대가가 돌아오니 회사가 잘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게 쉽지가 않다. 이익을 직원과 함께 나눈다는 것은 웬만한 결단력으론 안 되는 일이다. 사원으로 출발해 CEO에 오른 홍 사장은 업무의 효율성을 성과급으로 독려했다.

“30년 동안 벌면 준다는 말만 듣고 일을 해왔다. 이제 말은 통하지 않는다. 직장인에게 월급은 중요하다. 깎았던 만큼 돌려줘야 하고, 성과급은 확실히 챙겨줘야 한다. 믿고 따라와준 직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직원의 믿음은 반드시 실적으로 나타난다.”

모두투어는 비상경영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경영 정상화를 이뤘다. 직원의 월급 삭감분을 모두 보존해주고도 남을 만큼의 이익을 거뒀다. 2010년 당초 계획했던 총매출액 890억 원보다 110억 원 가량이 많은 1000억 원의 결과를 얻었다.


“돈, 버는 것은 기술·쓰는 것은 예술”

위기를 기회로 바꾼 모두투어가 성장하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직원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간파, 업무 효율로 활용한 것이다. 홍 사장은 “돈 버는 것은 기술, 돈 쓰는 것은 예술”이라고 했다.

예컨대 2010년 성과급은 올해 3월 지급돼야 하지만 지난 12월과 3월 두 번에 걸쳐 지급하는 식이다. 총 성과급에서 미리 주는 것. 돈이란 것은 빨리 줄수록 좋다는 게 홍 사장의 지론이다. 직장인에게 연말과 연초 돈이 필요한 일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배려한 것이다.

그러나 홍 사장은 자신에겐 인색하다. 직원에겐 한없이 인자하지만 자기에게 만큼은 늘 혹독하게 대한다. 회사 전체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기업설명회(IR)에 직접 나서 설명을 하고, 매일 뉴욕과 런던 증시 관계자들과 컨퍼런스 콜을 한다. 영어에 대한 자신감도 있지만 사장이 직접 IR을 할 경우 투자자에게 높은 신뢰감을 줄 수 있어서다.

연평도 사태가 발생했을 당시에도 모두투어의 외국인 투자자의 유출은 없었다. “북한 리스크는 항상 있었다. G20 정상회의를 한 만큼 관광객이 증가할 것이다. 주식을 보유하고 있어도 좋다.”

현재 모두투어의 외국인 지분율은 18∼20% 정도다. 여행업계에선 높은 편으로 성장 가능성을 중요시 여기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강한 지지를 받고 있다. 2011년은 모두투어가 제2의 도약을 계획하고 있는 해다.

수출입이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늘고 있고, 경기 안정을 통해 휴식을 찾는 이들이 늘어 외형적 성장을 꾀할 수 있다. 특히 중국과 홍콩, 한국 등 아시아 시장이 글로벌 경제의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어 국내의 좋은 관광명소를 발굴, 소개할 예정이다. 홍 사장은 “2011년 회사 성장 목표율을 30%로 세웠고 달성할 자신감이 있다”고 강조했다.

경영자로서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경영을 잘 하는 CEO로 남기보다는 모두투어와 (나와) 함께 여행했던 사람들이 가장 알차고 보람된 여행이었다는 말을 듣는 여행 가이드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김세형 기자 fax123@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