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표절 논란을 겪고 있는 애플 아이팟 터치(왼쪽)와 삼성전자 갤럭시플레이어.


삼성전자가 새로운 스마트 디바이스를 공개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에 이은 갤럭시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 ‘갤럭시플레이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갤럭시플레이어는 음악이나 동영상을 재생할 수 있는 휴대용 미디어 재생기기로서의 역할을 할 제품이다.

‘갤스(갤럭시S)’, ‘갤탭(갤럭시탭)’처럼 ‘갤플’이라는 축약형 별칭으로 불리고 있는 갤럭시플레이어는 내부 조정을 거쳐 이르면 오는 설 즈음에 국내 출시될 예정이다.

갤럭시플레이어의 출시로 삼성전자와 애플의 스마트 디바이스 경쟁은 스마트폰, 태블릿 PC에 이어 휴대용 미디어 재생기기에서도 맞붙게 됐다. ‘스마트 전쟁 3라운드’로 부를 만하다.

하지만 갤럭시플레이어의 외관과 제품 사양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아해 한다.
아무리 봐도 애플이 판매하고 있는 휴대용 미디어 재생기기 ‘아이팟 터치’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갤럭시플레이어가 출시되자 애플 제품 마니아들은 “삼성이 애플의 디자인을 대놓고 표절하고 있다”는 지적을 하고 나섰다.

물론 비슷한 종류의 제품인 만큼 어느 정도 디자인이나 제품 사양의 유사성은 인정할 수 있겠지만, 삼성의 애플 제품 표절 수위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지적이다.

MP3 플레이어에서 진화한 애플 아이팟 터치 4세대가 3G(WCDMA) 통화 기능을 뺀 아이폰4 기능을 그대로 가져왔듯 갤럭시플레이어도 스마트폰 갤럭시S의 판박이다.
구글 안드로이드 2.2(프로요) 버전을 채택해 안드로이드 마켓에 있는 애플리케이션들을 활용할 수 있고, 와이파이를 이용해 인터넷 전화(mVolp)도 가능하다.

삼성 “단순한 유사성 확대 해석 말라”

갤럭시플레이어와 아이팟 터치의 외관을 비교하면 표절 논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두 제품 모두 외곽선이 둥근 곡선으로 처리되어 있고, 메인 화면에 배열된 애플리케이션의 구조도 4열 5행으로 똑같다.

크기는 4인치 액정 화면을 탑재한 갤럭시플레이어가 3.5인치 화면의 아이팟 터치보다 조금 크다. 대신 두께는 아이팟 터치가 갤럭시플레이어보다 2㎜ 정도 얇다. 비슷한 점은 여기까지다.

이러한 유사 논란은 이전에 갤럭시S나 갤럭시탭 출시 때도 불거졌다. 문제의 핵심은 “예전부터 정말로 삼성이 애플의 디자인과 기술을 베꼈느냐”에 있다. 삼성은 최근 불거지고 있는 스마트 플레이어 표절 논란에 대해 “경쟁 제품의 디자인을 표절할 이유도 없고, 표절할 의향도 없다”고 해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갤럭시플레이어가 아이팟 터치를 겨냥하고 만든 제품이라는 점은 맞지만 표절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스마트 디바이스의 디자인과 제품 사양에 대한 유사성은 있을 수 있다고 본다”면서 “삼성이 다른 나라 업체의 디자인을 베껴 쓴다면 이는 우리나라 IT·가전 산업의 수치”라고 덧붙였다.

디어터 램스가 디자인한 라디오와 비슷한 디자인을 지닌 아이팟 1새대(왼쪽)와 브라운 계산기와 유사한 모습의 아이폰 초기 모델도 한때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스마트 디바이스 포지션 불명확이 화근

애플 제품을 좋아하는 사람에는 갤럭시플레이어가 아이팟 터치의 표절로 보일 것이고, 삼성의 제품을 선호하는 이들에게는 삼성이 출시한 고사양의 스마트 플레이어로 보일 것이다.

문제는 누가 누구를 따라했느냐에 있지 않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이 제품이 해당 업체의 스마트 디바이스 라인업에서 어떤 포지션에 있느냐다. 삼성의 스마트 디바이스가 매번 논란에 휘말리는 것은 차례로 내놓은 스마트 디바이스들의 포지션이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삼성의 스마트 디바이스에서 갤럭시플레이어가 차지하는 정확한 제품 포지션은 알 수 없다. 갤럭시S와 갤럭시탭이 보유하고 있는 기능들이 갤럭시플레이어에도 거의 동일하게 탑재됐기 때문이다.

세 제품 모두 통화 기능과 DMB 기능 등 갤럭시S가 보유하고 있는 대부분의 기능을 동시에 갖고 있다. 이는 삼성의 디자인과 기술 발전이 정체되어 있다는 점과도 맥을 같이 한다.

애플의 경우 아이팟과 아이폰, 아이패드의 포지션이 거의 명확하다. 아이팟 터치가 4세대 제품을 내면서 아이폰과 포지션이 조금 흐려졌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각 라인의 구분은 명확한 상태다.

주목해야 할 것은 갤럭시플레이어가 얼마나 아이팟을 따라 했느냐가 아니라 갤럭시플레이어와 갤럭시S의 포지션 구분이 얼마나 명확한가에 대한 의문이다. 만약 삼성이 스마트 디바이스의 독창적 포지션 구분을 명확히 했다면 적어도 삼성이 애플을 따라 했다는 의혹에서 자유로웠을 것이다.

정백현 기자 jjeom2@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