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부근 삼성전자 소비자가전 부문 사장은 5일(현지시각) ‘IoT(사물인터넷)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다(Unlocking Infinite Possibilities of IoT)’라는 슬로건으로 CES 2015 기조연설 무대에 섰다. 윤부근 사장은 이 자리에서 “기대에 부응하는 인간 중심의 기술철학에 바탕을 두고 사물인터넷의 무한한 가능성을 실현해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CES 2015를 기점으로 삼성전자의 사물인터넷 전략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하지만 윤부근 사장이 이끄는 삼성전자의 사물인터넷 로드맵에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는 대목은 다소 불안하다.

▲ 출처=삼성전자

윤부근 사장, 무엇을 말하나

윤부근 사장은 올해 사물인터넷 개발자 지원에 무려 1억 달러(1,100억 원)을 투자하는 한편 2017년까지 삼성전자의 TV, 2020년에는 모든 제품을 사물인터넷으로 연결하겠다는 로드맵도 공개했다. 전사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스마트폰 성장 동력이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사물인터넷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의지가 묻어난다.

사실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스마트홈의 형태로 사물인터넷 시대를 준비해 왔다. 지난해 4월 정식으로 스마트홈을 런칭한 삼성전자는 9월 IFA 2014를 통해 본격적으로 경쟁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의 사물인터넷 전략은 타이젠으로 대표되는 OS에 중심에 두고 플랫폼을 개방하는 방식으로 각 제품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 뛰어난 제조기술을 바탕으로 이를 연결하는 네트워크 인프라를 구축하는 한편, 포스트 스마트폰의 핵심인 반도체 기술의 경쟁력 제고를 통해 궁극적으로 스마트홈, 스마트 에너지 등을 넘어 스마트시티로 파급효과를 넓힌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지난해 7월 브로드컴, 아트멜, 델, 인텔 등과 함께 사물인터넷의 연결성 확보를 추구하고 그 패러다임을 가져가기 위해 오픈 인터커넥트 컨소시엄(OIC)을 결성했으며 구글 주도의 사물인터넷 규약 컨소시엄인 스레드 그룹(Thread Group)에도 참여한 상태다.

커넥티드 디바이스와 앱 개발자들에게 개방적 생태계를 지원하는 스마트싱스(SmartThings)를 인수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윤부근 사장에 따르면 스마트싱스는 지난해 8월 삼성전자와 협력한 이후 협업하는 개발자 수가 두 배나 급증했다. 현재 스마트싱스는 창업자이자 CEO인 알렉스 호킨슨(Alex Hawkinson)이 인수와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CES 2015를 기점으로 삼는 삼성전자의 사물인터넷 흐름은 더욱 좁혀지는 분위기다. 윤부근 사장이 기조연설 무대에서 공개한 20여종의 냄새를 구별할 수 있는 초소형 후각 센서, 미세 움직임을 파악하는 동작인식 센서, 모바일 앱 프로세서 및 D램, 낸드플래시를 집적한 ePOP 반도체(embedded Package On Package) 등이 대표적이다.

초소형 및 저전력을 지원하는 하드웨어 기능을 강조하며 삼성전자 사물인터넷의 장점을 소개한 셈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TV, 오디오, 와인냉장고, 스마트 사이니지 등 미래형 사물인터넷 제품들도 영상으로 소개했다. 협력이 예정된 이스라엘 벤처기업 얼리센스의 센서기술을 소개한 것도, 산업의 경계를 허무는 사물인터넷 파급력의 확장도 비슷한 배경이다.

 

제레미 리프킨과 삼성전자의 조합

강력한 하드웨어 기술에 바탕을 둔 개방형 플랫폼 제공을 통해 ‘삼성전자 사물인터넷 로드맵’은 상당부분 베일을 벗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의 비전이 스며드는 대목은 위험해 보인다. 물론 윤부근 사장 기조연설 무대에 깜짝등장한 제레미 리프킨은 말 그대로 임팩트있는 무대적 장치에 불과할 수 있으나, 사실 삼성전자가 추구하는 사물인터넷 흐름과 제레미 리프킨의 등장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사물인터넷은 연결의 개념을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로 확장시킨 개념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유경제라는 절대적 목표를 설정하고 사물인터넷 기술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제레미 리프킨의 이론은 그 자체로 유토피아적이다. 사물인터넷이 사회적 저비용의 기조를 끌어오며 그 자체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는 모델이지만, 무수히 제로에 가까워지는 재화의 낭비가 완벽한 제로로 정리되기에는 어렵기 때문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자신의 저서 ‘한계비용 제로사회’를 통해 기술의 발전이 협업공유재(collaborative commons)의 개념을 끌어내며 공유경제가 급격하게 발전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 과정에서 무수하게 연결된 사물인터넷은 디바이스적 측면에서 새롭게 조명된다. 결국 생존하기 위해 이윤을 취득하는 시대는 사라지고 모든 것은 ‘공유’되며, 인류는 사회적 기업에 종사하게 된다는 이론인 셈이다.

현 단계에서 제레미 리프킨의 전망에 섣부른 단정은 금물이다. 하지만 공유경제 모델인 우버가 사상 최대의 경제적 불평등이 치솟던 시기와 장소에서 처음 등장했음을 고려하고, 결국 공유경제도 재화의 불평등에서 파생되는 사각지대를 창출한다는 ‘순리’를 짚어보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어쩌면 공유경제는 인간의 기본적인 본질과 동떨어진, 그래서 마르크스의 실패를 답습할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다시 삼성전자로 돌아와 보자. 제레미 리프킨은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의 기조연설 무대에 올라 “사물인터넷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지만, 플랫폼의 호환성이 떨어지고 산업 간 협업도 원활치 않다는 게 진정한 사물인터넷 시대의 도래를 막는 커다란 장벽이다”고 말했다. 이는 사물인터넷의 발전과정에서 당연히 수반되는 부작용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제레미 리프킨이 커다란 장벽을 넘는 수단으로 삼성전자의 사물인터넷을 선택하는 순간, 둘의 만남은 잘못된 만남이 될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의 사물인터넷은 제조 DNA에 사로잡힌 하드웨어 제조사가 추구할 수 있는 가장 확률 높은 도박이다. 삼성전자는 구글과 애플처럼 소프트웨어를 패러다임으로 잡아(시작은 아니었지만) 다양한 가능성의 토대에서 사물인터넷을 타진하는 기업이 아니다. 하드웨어의 기능적 우위를 중심에 두고 이를 ‘오픈’해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말 그대로 하드웨어적 사고의 사물인터넷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개방’의 측면에서 지금까지 보여줬던 지긋지긋한 제조사 마인드에서는 다소 멀어졌으나, 여전히 중심은 하드웨어다. 플랫폼 기술을 발전시켜 내부에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은 현 단계에서 그리 나쁘지 않은 성택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로드맵이 제레미 리프킨이 말하는 공유경제의 목표와 부합되는 순간이다. 사물인터넷을 디바이스로 삼아 재화의 공유를 추구하는 제레미 리프킨의 공유경제 유토피아에는 하드웨어가 없기 때문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기술, 즉 플랫폼의 발전이 궁극적인 인문학의 공유를 추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가 어울린다.

하드웨어냐, 소프트웨어냐는 이제 중요한 프레임이 아니다.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둘 중 누가 더 빠르게 사물인터넷이라는 신세계를 개척해 상대의 인프라를 끌어들여 생태계를 구축하느냐에 달려있다. 이런 대목에서 하드웨어를 선택한 삼성전자의 사물인터넷 전략은 훌륭하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한 공격적인 투자도 훌륭하지만, 제레미 리프킨은 어울리지 않는다. 부디, 극적인 무대장치를 위한 설정이었다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