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일에너지가 국제유가 하락을 유도한 이유는 단순 공급증가를 뛰어넘어 에너지 의존도를 분산 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유국들은 에너지시장의 지배력 확대를 위해 감산은 뒷전으로 미룬 상태다. 이에 유가는 곤두박질 치는 반면, 대표 안전자산인 달러의 수요는 증가하고 있다. 이는 다시 위험자산회피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어 글로벌 증시 또한 불안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낮아진 이익전망대비 급등한 PER(주가수익비율)이 버텨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 서부텍사스유(WTI)가격 추이 출처:SK증권

5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유(WTI)는 전일대비 2.65달러(5.02%) 내린 배럴당 50.04달러를 기록했다. 장중 50달러를 하회하는 등 불안한 상황이 지속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지수는 전일대비 331.34포인트(1.86%) 급락한 1만7501.65로 거래를 마쳤다.

이날 뉴욕증시에 영향을 미친 것은 유가뿐만이 아니다. 그리스총선을 앞두고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이 집권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최근 독일 메르켈 총리는 시리자가 총선에서 승리해 긴축정책을 포기할 경우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그렉시트)가 불가피 할 것이라고 발언하는 등 그리스발 리스크 우려가 확대되는 상황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만약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한다면 시장 충격은 불가피할 것”이라며 “이는 유로존 출범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것들에 대한 의구심이 확대된다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유로화를 버리고 달러로 몰려드는 자금이 많아지면 국제상품가격도 폭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유로존은 유로화라는 통화로 묶여 있다. 즉, 유로존을 탈퇴한다는 것은 유로화를 등지는 일과 같은 것이다. 이 경우 안전자산으로 취급되는 달러의 수요는 증가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세계 통화의 중심인 달러와 상품가치는 반비례한다. 즉, 달러의 강세는 국제유가를 중심으로 한 상품가격을 짓누르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불안감이 위험자산회피로 둔갑해 뉴욕증시의 하락을 이끌었다.

에너지치킨게임, 불안심리·안전자산선호↑...증시 버틸 수 있나?

다우지수는 지난해 12월 1만8000선을 넘으며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수만 본다면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발발 전 1만4000선을 기록했던 것에 비해 위기를 극복한 것은 물론 미국 경기는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난 3일 래리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전 미국 재무장관)은 2015년 전미경제학회 연례총회에 참석해 미국 경제 회복세에 불만을 표시했다.

서머스교수는 “2007년과 비교해 실제 생산량이 잠재생산량대비 10%가량의 격차를 보이고 있다”며 “이를 끌어올리면 1가구당 약 2만달러의 추가소득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했다.

잠재생산량이란 노동·자본을 최대로 활용해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의 생산량을 말한다. 서머스 교수는 현재 미국의 실제생산량이 안심할 수 없는 수준에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이에 서머스교수는 단·중기 미국 경제 성장세 개선을 위한 6가지 처방전을 제시했다. 이 중 하나가 미국의 석유수출금지 조치 해제다. 석유수출을 통해 휘발유 가격은 낮아지고 에너지관련 일자리는 증가해 재정적자도 크게 축소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미국이 앞으로 10년간 에너지 강대국의 지위를 누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적정수준 하회해 급락하는 국제유가 출처:하나대투증권

에너지 수출로 미국은 일자리 창출과 수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미국 석유수출이 현실화 될 경우 미국에 대한 세계의 에너지의존도를 확대할 수 있다. 미국의 석유 수출은 원유 공급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해 유가는 하락하고 달러는 더욱 강해진다. 미국은 달러를 통한 세계 통화 패권은 물론 에너지 시장의 지배력도 늘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소재용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국제유가하락을 촉발한 미달러 강세가 미국 금리인상과 맞물려 한동안 기조화될 것”이라며 “치킨게임 양상으로 전개되는 원유공급 경쟁과 에너지 수요의 다변화 등의 요인을 감안할 경우 수급 부담이 조기에 해소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치킨게임(game of chicken)이란 누가 겁쟁이(chicken)인가 여부를 가리를 게임이다. 산유국들이 원유 생산량을 줄이지 않는 상황에서  재정균형유가에 대한 우려감은 확대되고 있다. 버틸 수 없는 국가는 결국 겁쟁이(chicken)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상품시장에서 원유가격이 반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현재 진행형인 치킨게임의 시장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유가의 추가하락이 불가피한 셈이다.

▲ 정체된 수요를 감안할 경우 공급축소가 현실화 돼야 함 출처:하나대투증권

소 연구원은 “글로벌 저성장으로 원유수요의 정체가 예상되고 있다”며 “원유공급의 가시적인 조절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추가하락이 저지된다해도 저유가 기조는 당분간 불가피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통화전쟁, 에너지전쟁 등 글로벌 강국들의 자본 및 상품 시장을 둘러싼 경쟁은 ‘전쟁’이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전쟁의 끝은 결국 한 쪽이 항복을 해야만 한다. 설령 두 세력간의 싸움에서 한 쪽 진영이 밀린다 해도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에너지시장을 둘러싼 국제적 싸움이 끝나려면 누군가의 ‘항복’이 필요하다.

이은택 SK증권연구원은 “게임이론에 따르면 지금 상황에서 원유 생산을 줄인다는 것은 곧 게임에서 탈락함을 뜻한다”며 “누군가 쓰러질 때까지 생산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는 이어 “최근 러시아가 오히려 생산량을 늘리고 재정유가가 높은 이라크 역시 80년대 이래 최대 생산량을 기록했다”고 전했다.

▲ 낮아지는 이익전망 VS 고공행진하는 PER 출처:SK증권

결국 ‘항복’보다는 더욱 치열한 ‘전쟁’을 선택한 셈이다. 이러한 시장의 불안 심리는 투자자들로 하여금 안전자산을 선호를 가속화 시킨다. 이는 대표 위험자산이라 할 수 있는 주식시장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는 요인이다.

SK증권에 따르면 지난 2013년 이후 MSCI 세계 PER(주가수익비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해 현재 향후 12개월 이익전망대비 약 15배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오는 2015년 주당순이익(EPS)은 낮아질 것으로 예상돼 주가 추가상승에 대한 부담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연구원은 “달러강세와 더불어 엔화도 동반 강세의 모습을 나타냈다”며 “미국 경제기대감에 달러 강세와 유가하락이 반복됐던 것과는 다른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안전자산선호 시그널이 포착된 가운데 급등한 주가수익비율(PER) 버텨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