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것에 대해 ‘그것 보다는 이것’이라고 합리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유연한 기업문화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지난 2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시무식을 통해 임직원들에게 전한 신년사다.

이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자 장녀가 벌인 일명 ‘땅콩회항’에 대해 국민들과 임직원들에게 사죄한다며 이 같이 밝혔다.

조양호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회사 운영 전반에 걸친 획기적인 쇄신’과 ‘불합리한 제도와 관행 개선’, ‘업무의 자율성 폭넓게 보장’, ‘성과에 따라 보상받는 책임경영’ 등을 강조했다.

언뜻 들으면 모두 좋은 말이다. 경영자가 임직원들을 독려하기 위해 늘 언급하는 보편화된 발언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속내는 직원들의 배신(?)과 두 자녀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쇄도함에 따른 후속조치라는 의견이 높다.

기장이 회항하지 않았다면, 회항의 책임을 항공기 최고 책임자인 기장이 졌다면, 사무장이 폭로하지 않았다면, 직원들이 회사 내 분위기를 외부에 전하지 않았다면, 과거 ‘카더라’ 사례가 쏟아지지 않았다면 아마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구치소에 가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또한 그랬다면 ‘대한항공’에서 ‘대한’이란 이름을 버리라는 비난과 매출감소, 주가하락, 이미지 손상 등의 피해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연쇄반응들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으로 하여금 신년사를 통해 ‘쇄신’을 강조하게 된 바탕이지 않을까 싶다.

지난 2014년은 유독 가진자들의 측근에 의한 비리고발이 많은, 소위 ‘배신의 계절’이었다고 한다.

세월호 사태의 주범으로 전국민적 추적을 받던 유병언 회장은 최 측근 중 한 사람인 운전기사가 홀로 떠나는 바람에 홀로 수색을 피해 산으로 달라나다 변사체로 발견됐다.

세월호 선사 청해진해운이 있는 인천 중구가 지역구인 박상은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보좌관이 자신을 내사 중이던 검찰에 증거자료를 넘기는 배신(?)을 당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사건이 터지기 직전에는 청와대의 인사에 비선이 관여했다는, 소위 ‘정윤회 파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정윤회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한때 신뢰했던 인물이다. 정윤회 말고도 박근혜 대통령이 신뢰하거나 발탁했던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조응천 전 청와대공직기강비서관 등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불리한 얘기를 꺼낸 것도 어찌 보면 측근의 배신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측근과의 불화와 갈등이 리더의 운명을 좌우한 사례가 많다.

카이사르를 암살한 브루투스의 배신은 로마의 역사를 바꾸는 계기가 됐고, 빈라덴도 2500만달러의 현상금을 노린 측근이 배신했다는 얘기도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의해 숙청된 같은 태자당(중국 혁명 원로나 고위 간부 자제를 칭하는 말) 계열인 보시라이 충칭 당 서기도 오른팔인 왕리쥔 충칭 부시장과의 내홍에서부터 파멸이 시작됐다.

윗사람을 배신한 사람들은 충의와 정의, 진실을 이야기 한다. 그 윗사람들은 그들이 등 돌림에 따라 죽거나, 추락하거나, 무너졌다.

역사를 떠나 과거에도 종종 있었던 일이 왜 유독 지난해에 많이 일어나고 또 많이 알려지게 된 것일까.

무엇보다 많은 매체와 각종 SNS가 다양하고 자극적인 이야기를 빠르게 널리 전파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들의 생존모델이 변해서가 아닐까 싶다.

과거에는 열심히 일하면 살아가는데 큰 지장이 없었고, 거의 한 평생을 가족같이 생활했던 시절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평생직장 개념이 없어진 상태다.

한마디로 사업주나 근로자 사이에 ‘신뢰’가 없어진 셈이다. 사업주는 근로자를 언제든 수명이 다하면 버릴 수 있는 ‘건전지’로, 근로자는 사업주를 나의 노동력으로 돈 버는 ‘악당’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아진 것이다.

사업주는 근로자를 회사를 키워주는 고마운 고객으로 대하고, 근로자는 사업주를 내 삶을 유지시켜주고 함께 험로를 해쳐나가는 동반자로, 각각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근로자가 없으면 회사를 유지하거나 키울 수 없다. 또 사업주가 없으면 내가 일할 곳도,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도 없다.

전문가들은 올해는 전세계적으로 모든 분야에서 불확실성이 그 어느 해보다 크다고 강조한다. 또 위기를 맞아 난파할 수도,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도 있는 ‘골든타임’이라고 전한다.

사업주와 근로자, 국가와 국민이 서로 신뢰를 되찾고 함께 해쳐나가지 않으면 그 조직과 국가는 올해가 최악의 해가 될 수도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내가 변할 태니 니들도 변해 달라’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과연 대한항공과 한진그룹이 어떤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