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미래예측의 어려움과 잘못된 예측이 초래할 위험성 또한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미래예측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는 것은 전략적 민첩성과 위기 대응력을 높여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 변화가 빠른 IT 산업에서는 미래 예측 활동이 산업 주도권 강화를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노키아는 미래 준비를 잘 해온 기업이었다. 1865년 제지업으로 시작하여, 1960년대 고무/타이어, 1980년대 컴퓨터, 2000년대 휴대폰 등 주변 환경 변화에 맞춰 발 빠른 변신을 통해 글로벌 선도 기업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1997년 출시되어 스마트폰으로 세계 최초의 상업적 성공을 거둔 9000 커뮤니케이터도 다름 아닌 노키아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 스마트폰 시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노키아는 몰락하고 말았다. 미래를 남들보다 먼저 예측하였더라도 올바른 대응 전략 수립과 지속적인 전략 실행으로 연결시키지 못할 수 있다. 소니도 디지털 융복합 시대의 도래를 누구보다 먼저 인식했지만 폐쇄적 생태계 전략을 무리하게 구사하다가 결국 쇠락했다.

이처럼 미래 준비에 적극적이었던 기업들조차 세상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왜 미래 예측을 하는 것일까? 또 분석된 미래 예측 결과를 전략 수립과 전략 실행으로 어떻게 연계시킬 수 있을까? 미래 예측 활동을 전개하고 있고, 예측 및 분석 결과를 자사 입장에서 기회, 위협 여부와 기업에의 영향도를 재해석해 전략 수립에 적극 활용하는 기업들의 사례를 보면 이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들은 '미래는 움직이는 표적'이라는 관점 하에 사업 환경 변화를 모니터링하고 전략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한다. 미래 예측 활동에 적극적인 해외 전자/IT, 화학, 자동차 기업들을 중심으로 미래 예측의 경영 활용 방식들을 살펴본다.

변화 감지에 미래 통찰 더해져야

정보의 디지털화와 인터넷/모바일 기술의 발전, 다양한 시장조사기관과 컨설팅사의 활동에 힘입어 사업 환경 변화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쉬워졌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로부터 자사의 사업 활동에 중요한 미래통찰(Insight)을 뽑아내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진정 중요한 미래 통찰은 외부 정보에 자사 관점을 전략적으로 결합해야 비로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를 가능하게 하는 미래 통찰 역량은 기업 정보 활동을 수년간 진행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체득되는 고차원의 암묵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미래 예측에 반드시 대형 전문 조직이 필요 한것은 아니다. 해외 기업들에서 미래 예측 담당 조직의 형태는 매우 다양한 것으로 나타났다. BMW처럼 미래 예측에 특화된 별도 연구 조직을 갖춘 곳도 있었지만 이는 드문 케이스였다. 오히려 필립스나 다임러처럼 제품 디자인 부서 차원에서 미래 예측을 전개하거나, 도이치방크, 포드 자동차, 시스코처럼 본사 스탭 조직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기업들이 많았다. 이처럼 미래 예측 기능의 운용 형태가 다양하다는 것은 결국 대규모 조직이나 고유한 예측 방법론의 확보가 미래 통찰력을 높이는 필수 조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운영의 지속성과 네트워킹 범위일 수 있다. 조직이 작더라도 지속적으로 운영되는 과정에서 노하우가 많이 쌓이고, 외부 시각을 다양하게 입수할 수 있어야 외부 변화 감지나 미래 예측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미래 변화의 빠른 감지와 해석 만이 미래 준비 활동의 전부는 아니다. 여기서 얻어진 미래통찰이 대응 전략 마련, 나아가 전략 실행과 연계될 때 미래 선견 활동은 비로소 제 힘을 발휘한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인 셈이다. 어느 기업 못지 않게 트렌드 연구와 미래 예측에 열심이었던 노키아도 산업 경쟁 형태에 대한 고정 관념, 과거 성공 공식에 대한 집착, 자기 능력에 대한 과신 때문에 기존 사업 방식을 고수하다가 결국 몰락했다.

혁신 활동의 촉발자, 전략가, 반대자 역할

독일의 미래학 전문가인 Rohrbeck에 따르면 미래 예측의 결과들은 기업 혁신 활동에 촉발자(Initiator), 전략가(Strategist), 반대자(Opponent)의 역할로 활용될 수 있다. 새로운 혁신의 계기를 마련하고, 혁신 전략의 방향성을 수립하거나, 혁신을 가로막는 기존 고정관념에 반기를 드는데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필립스나 다임러는 미래 예측을 차세대 제품 컨셉과 디자인을 촉발하는데 적극 활용한다. 필립스의 경우 독립 사업부인 Philips Design을 통해 상시적으로 다양한 미래 가전제품의 컨셉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사용자(현실 경험), 문화(최신 트렌드), 사회(패러다임, 가치, 욕구)의 미래상에 중점을 두고 미래에 요구될 경험 원형(Experience Prototypes)을 도출하는데 주력한다. 다임러도 1979년부터 30년 넘게 미래 예측 조직인 STRG(Society and Technology Research Group)를 운영하고 있다. 인력 40여명 규모의 다학제적으로 구성된 STRG에서는 '거대 도시화에 따른 자동차의 역할 변화', '미래 럭셔리 차량의 컨셉' 등의 연구를 진행해 왔다.

한편 지멘스는 미래 예측 활동을 혁신 전략 수립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즉 로드맵을 통해 현재 사업 분야의 중단기 비전 및 전략 방향을 수립하고, 장기 전략은 메가 트렌드에 따른 미래 시나리오로 구체화한 후 최종적으로 장기와 중단기 두 결과물을 통합해 전략적 비전을 수립한다. 폭스바겐도 전략 수립 과정에 중장기 미래 연구를 활용하고 있다. 폭스바겐은 2008년 친환경, 스마트, 연결성, 안전을 골자로 미래 자동차의 컨셉을 담은 '비전 2028'과 이를 구현하기 위한 혁신 방향성을 담은 '전략 2018'을 제시하였다. 여기에는 시장 분석을 활용한 중단기 예측과 기술, 사회, 환경에 대한 포괄적 미래 연구에 기초한 장기 예측이 결합되어 활용되었다.

인텔은 최근 미래 예측 결과물을 반대자 역할로 활용한 바 있다. 미래의 컴퓨팅 활용상에 대한 예측을 SF 소설 형태로 제시해, 내부 개발자들이 기존 관점에서 벗어나 미래 CPU의 기능, 용도를 전향적으로 고민하게 자극한 것이다. 시스코도 주요 기술 트렌드를 모니터링해 만든 기술 레이더를 반대자 역할로 활용한다. 즉 외부 환경 변화에도 기존 사업의 기본 가설이 계속 타당한지, R&D 프로젝트를 재조정할 필요성이 있는지, 기존 R&D 기술들을 위협하는 새로운 와해성 기술은 없는지를 검토하는데 이용하는 것이다.

나아가 미래 예측 결과는 새로운 혁신 방향성을 창출하는데 활용될 수도 있다. 최근 기업들 중에는 사회문제 해결형 혁신(Social Innovation)을 추진하는 사례가 많다. 이는 다양한 미래 글로벌 트렌드 관련 현안들을 기업이 혁신 기술 및 비즈니스를 통해 해결하서, 경제적 실리와 사회적 대의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다. IBM은 IT 기술을 활용해 기업, 사회, 지구의 비효율, 낭비를 해결하고 세상을 더 살기 좋게 만들자는 Smarter Planet 어젠다를 제시하며 자사의 IoT 기반 비즈니스 솔루션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또한 듀폰은 동반적 혁신(Inclusive Innovation)을 강조하며 하이브리드 종자, 태양 전지 소재 등의 개발에 노력하고 있다. 이는 식량, 에너지, 인간/환경 보호 등 글로벌 당면 과제에 기술/제품 혁신으로 대응하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특히 개도국의 현장 주민들과 적극 협력해 현지 실정에 최적화된 솔루션을 창출하자는 것이다. GE의 에코/헬시메지네이션(Eco/Healthy-magination)도 유사한 맥락이라 볼 수 있다.

산업 주도권 강화 위한 마케팅 수단

기업들은 미래 예측 결과를 산업 리더십 강화 목적으로도 활용한다. 이러한 경향은 다양한 신기술과 미래관(Future View)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전자/IT 산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신기술의 봇물 속에서 특정 신기술, 미래관이 승리하려면 무엇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투자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자신들의 미래 비전과 기술 전략을 적극 공개, 전파해 우군을 확보하고 산업 주도권을 확대하려 한다. MS는 미래의 컴퓨터 사용 시나리오를 2011년에 Future Vision이라는 인터넷 동영상으로 공개하여 주목을 받았다. 인텔의 개발자회의(IDF)나 애플의 세계개발자컨퍼런스(WWDC)도 이러한 맥락에서 개최된다. 한편 시스코의 미래학자 Dave Evans는 네트워크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술 트렌드를 예측하고 시스코의 미래 역할을 홍보하는 일종의 기술 에반젤리스트(Evangelist)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항공기, 광고, 중전 등 기업 고객 대상의 B2B 기업들도 미래 예측을 기술 마케팅에 적극 활용한다. 미래는 누구나 궁금해 하는 대상인 만큼, 미래 예측을 마케팅에 접목시키면 마케팅 청중(Audience) 확대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지멘스의 경우 연 2회 Picture of the Future라는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여기서는 10년 뒤의 공장, 이동성, 에너지, 사물 인터넷 등 다양한 미래 연구들이 발표되며, 이와 관련해 지멘스가 현재 수행 중인 R&D, 신사업들의 현황도 함께 제시된다. 미래 보고서이자 미래 지향적 기업 이미지를 전파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되는 셈이다. 이러한 산업 리더십 강화 방식은 자동차 등 내구재 기업들에서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폭스바겐의 Das Auto, 다임러의 Technicity는 원래 회사 사보였지만 지금은 최신 차종 소개를 넘어 미래 자동차 기술 개발 동향과 미래 이동성 비전을 상세히 제시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위험 관리를 위한 기초 자료 제공

최근 사업 환경의 불확실성이 크게 증대되면서, 불확실한 사업 위험들의 예측과 대응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폭넓은 예측력과 통찰력에 기반한 사업 위험 관리를 전사 경영 체계에 통합하는 기업들도 관찰된다. 독일 자동차 회사 다임러는 중장기 사업 리

스크를 2년 단위로 분석, 모니터링하고, 리스크 발생가능성과 영향력을 정량적으로 파악하여 정기적으로 이사회와 운영진에 모니터링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도이치 텔레콤은 미래 예측 방법의 하나인 기술 레이더 기법을 해킹, 멀웨어 등 네트워크 위협의 평가 및 관리에 활용하고 있다. 엔진 제작사 롤스로이스는 사업 성과를 2~3년도 아니고 10년 후까지 예측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시장 수요 및 자사 수익에 대한 개별 위험의 영향이나 사업부별 미래 매출 변화 정도에 대한 종합적인 정량적 분석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정말 중요한 위험은 수치로 정량화하기 힘들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미래 위기 예측에는 시나리오 기법이 많이 활용된다. 유럽의 에너지 기업인 쉘(Shell)은 이미 1970년대부터 시나리오 기법을 활용해 큰 성공을 거둔 것으로 유명하다. 친환경 트렌드 부상에 대한 1990년대의 시나리오 예측은 쉘이 2000년대 초반 청정 에너지 분야 사업을 남보다 빨리 진행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쉘은처럼 시나리오 경영을 계속 고도화시켜 왔고, 최근에도 2100년까지의 에너지 전망 시나리오 나 미래 도시화 지속과 에너지 사용 패턴 변화 시나리오를 공개하는 등 시나리오 경영을 지속하고 있다.

기업 변신을 위한 나침반

미래 예측 활동은 궁극적으로 사업 영역이나 사업 모델 자체를 바꾸는 사업 변신(Business Transformation)에도 활용될 수 있다. 흔히 기업들은 외부 충격에 대한 능동적 대응이나 경영진의 남다른 미래 통찰에 의해 선제적으로 사업 변신을 추진한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분석대상 기업들 중에서 이러한 선제적 사업 변신을 실행한 기업은 찾기 힘들었다. 내외부에서 산업 변화에 대한 경고성 예측이나 사업 전환 필요성에 대한 요구가 많더라도 기존 사업이 잘 되고 있을 때 선제적인 사업 전환을 추진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사업이 잘 될 때 굳이 위험을 감수하려는 주주나 임직원들은 많지 않은 법이다. 또한 외부 충격이 크더라도 기업 체질이 강해 이를 버텨냈다면 대개 사업 변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대대적인 사업 변신 노력은 적자 발생, 주가 하락, CEO 경질 등 뚜렷한 내부 충격이 발생한 뒤에야 비로소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이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서야 비로소 운동, 생활습관 변화 등 건강 관리에 들어가는 것과 유사하다.

이는 다른 각도에서 보면 대다수 미래 선견 활동이 사업 변신의 방아쇠 역할은 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미래 선견은 기업 변신에 어떤 쓸모가 있는 것일까? 분석 대상 기업들의 사업 변신 경험을 살펴보면, 미래 예측은 두 가지 기능을 수행했다. 첫째, 미래 예측은 사업 변신 전에 경영층의 위험 신호 민감도를 높여 위기가 왔을 때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게 만든다. 미래 예측이 종종 내부 통념과는 다른 외부의 반대 시각을 제공해 경영층의 사고를 유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둘째, 기업에 확고한 변신 의지가 생겼을 때사업 전환의 유용한 나침반이 된다. 변신 과정에서는 수없이 많은 논란과 직원, 주주들의 동요가 발생한다. 이때 설득력 있는 미래 예측에서 도출된 명확한 방향성 제시가 있다면 이러한 문제들을 비교적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지멘스와 듀폰의 사업 변신 과정은 미래 선견의 나침반 역할을 잘 보여준다. 지멘스는 1990년대 후반 지나친 다각화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계기로 1999년부터 현재까지 사업 변신을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 트렌드에 따른 미래 예측 및 분석은 추진 과정에서 기업 변신의 가이드로 적극 활용되었다. 도시화, 글로벌화, 기후변화, 인구변화 등 전세계적 트렌드에 대응해 기존 사업들을 Infra & Cities, Industry, Energy, Healthcare 사업부로 재편한 것이다. 듀폰도 1998년 이후 방만해진 사업들을 구조조정하며 종자 및 제초제 등 농업 부문을 신성장 사업으로 적극 육성했다. 이는 세계 인구 증가 (2060년 100억명 시대 도래)에 따른 식량난 가능성에 주목한 결과이다. 특히 2008년 Kullman CEO가 취임한 이래 듀폰은 사업 포트폴리오와 메가 트렌드 연계성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미래인식-전략수립-전략실행의 유기적 연계 중요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해외 글로벌 기업들은 미래 트렌드 변화를 내부적으로 재해석해 혁신 활동, 산업 리더십 강화, 위험 관리, 사업 변신 등 경영 활동 전반에 활용하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미래인식-전략수립-전략실행의 유기적 연계 방식을 구축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불확실한 미래 비즈니스 환경에서는 미래 예측 결과의 정확도보다는 유연한 대응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산업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장기 트렌드 변화에 중점을 두면서 다양한 중단기 시나리오를 통해 전략적 민첩성을 높이고 위기 대응력을 제고하는 것이다. 또 미래 변화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대신 가급적 자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미래를 바꿔가기 위해 지속적으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피터 드러커는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했다. 동일한 미래를 예측해도 한 기업은 기회로 다른 기업은 위기로 볼 수 있으며, 대응 전략이 같아도 경영진과 조직 역량에 따라 결과가 천양지차로 달라 질 수 있다. 미래 예측이중요한 기업의 미래 준비 과정이지만 예측 자체가 올바른 답을 알려주는 해답서는 아니라는 점 또한 인식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