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게임 산업은 ‘최악의 1년’을 보냈다. 침몰하고 있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노를 젓는 선원은 많았지만 가려고 하는 방향은 다 달랐다. 혼란을 틈타 다른 배로 옮겨 탄 선원도 생겨났다. 게임 산업은 지금 꼼짝없이 표류 중이다.

숫자는 위기를 증언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한 <2014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지난 2013년 국내 게임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0.3% 감소한 9조7198억원이다. 2008년 이후 게임 산업이 매년 10% 이상 성장해 온 점을 감안하면 마이너스 수치가 주는 충격은 크다. 업계 관계자는 2014년 시장 규모가 최대 5%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었다.

규제 펀치에 ‘그로기’ 상태

“규제가 게임 산업을 죽였다.” 과장된 표현이지만 일정 부분 맞는 얘기다. 이재홍 한국게임학회 학회장은 “규제가 게임 산업을 망친 1차 원인이다”고 전했다. 김종득 게임개발자연대 대표는 “게임 규제가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낳았다”고 덧붙였다.

2014년에도 게임 규제 이슈는 끊이지 않았다. 대표적인 게임 규제인 셧다운제는 지난 2011년 전격 시행됐다. 문화연대는 주도적으로 이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는 합헌 판정을 내렸다. 문화연대는 논리를 보강해 다시 헌법소원을 제기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중독예방법)과 손인춘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인터넷게임중독 치유지원에 관한 법률안’(매출징수법)이 가세한다. 게임 업계의 분위기는 더욱 침울해졌다. 현재 두 법안은 계류 중이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치권에서 게임에 대해 규제만 외친 것은 아니다. 규제를 넘어 인식 개선을 도모하기 위한 법안이 제출되기도 했다. 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해 6월 ‘게임, 중독인가 예술인가’라는 토론회를 개최한 후 게임을 법적으로 ‘문화예술’에 포함시키는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마약을 불태우고 해외로 떠나라

게임 규제의 기저엔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존재한다. 게임은 ‘악의 축’이라거나 ‘마약’이라는 식의 생각 말이다. 심지어 모 정치인은 “게임 중독이 흉악 범죄를 낳는다”고 발언해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인식이 법을 낳고 법이 인식을 재생산하는 순환 구조는 계속되고 있다.

게임 규제에 인식 문제까지 겹치자 업계 관계자는 일상생활에서 위축될 정도라고 전했다. 이들은 산업을 다시 일으키려는 자체적인 노력도 하고 있다. 해법은 다양하겠지만 꽁꽁 얼어붙은 국내 시장보다는 글로벌 시장에 주목하기도 한다. 세계 시장이 게임 산업 부활의 열쇠라는 것이다.

아예 해외로 터전을 옮겨버리는 국내 게임사도 등장하고 있다. 더불어 개발자가 외국으로 떠나는 경우는 더욱 비일비재하다. 김종득 대표에 따르면 “해외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국내 기업에 손짓을 보내고 있다. 해외 게임사들은 고액 연봉을 제시하며 국내 개발자를 데려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 출처=텐센트

국내 게임사가 규제로 앓고 있는 사이 해외 자본이 대거 유입됐다. 중국 텐센트는 국내의 경쟁력 있는 업체에 차근차근 자본을 투자하고 있으며, 알리바바 역시 국내 게임사와 접촉하고 있다. 게임사들이 지금 당장은 투자금을 해외에서 온 구호물자처럼 여길 수 있지만, 이런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산업 주도권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소는 잃었어도 외양간은 고치자

최근 정부는 일명 ‘게임 피카소 프로젝트’라는 청사진을 공개했다. 게임 산업에 5년간 2300억원을 들이겠다는 진흥책이다. 오는 2019년까지 세계적인 게임사 20개를 양성하겠다고 밝혔다. 10조원 규모인 국내 게임시장을 13조원으로 확대하고 수출 규모도 28억달러에서 40억달러까지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반응은 대체로 괜찮다. 최준영 게임규제개혁공대위 사무국장은 “규제 정국이 진정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내용은 이전에 나왔던 것과 크게 다를 것 없지만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평했다. 김종득 대표도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개발자들 사이에서 반응이 긍정적인 편이다”고 밝혔다. 이재홍 학회장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지만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물음표를 던지기도 한다. 언제든 다른 정부 부처와 국회의 ‘태클’이 존재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게임 산업이 오늘은 ‘창조경제를 이끄는 핵심 콘텐츠 산업’이라고 불렸다가도 언제 또다시 ‘마약’ 또는 ‘사회악’이라고 불릴지 모른다는 지적이다.

“모든 분야에 게임적인 요소가 가미되고 있다. 미래 사회에서 게임이 담당하는 역할은 더욱 커질 것이다.” 이재홍 학회장의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당장 닥친 위기 상황을 모면해야 할 형편이다. 지난해 열린 ‘지스타 2014’의 슬로건처럼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다만, 가라앉고 있다. 2015년은 게임 산업의 향방을 좌우할 중요한 한 해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