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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는 인권' 기치 든 로맨틱 혁명가텔레그램 개발자 파벨 두로프

최근 러시아 반(反)푸틴 운동의 중심인 알렉세이 나발니를 지지하는 페이스북 페이지가 러시아 정부의 요청으로 차단되는 일이 발생했다. 당장 페이스북을 향한 엄청난 비난이 폭주하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인물은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개발자다. 그는 “페이스북은 배짱도 없고 원칙도 없다”며 노골적으로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동시에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파벨 두로프는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지.”

   
▲ 출처=파벨 두로프 페이스북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의 개발자인 파벨 두로프는 1984년 10월 10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출생 직후 이탈리아로 넘어갔으며, 덕분에 그는 유년시절 대부분을 이탈리아에서 보내게 된다. 그의 아버지 발레리가 언어학자로 일하며 이탈리아에서 근무했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자유로운 르네상스의 파도가 몰아치는 이탈리아의 중심에서 자연과 문명, 역사와 미술의 인문학적 소양을 강렬하게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2001년, 그는 러시아로 돌아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한다.

대학을 졸업한 파벨 두로프는 수학자이자 프로그램 개발자인 형 니콜라이와 함께 2006년 9월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인 ‘브이콘탁테(VKontakte, VK)’의 베타 서비스를 시작했다. 언어학자의 길을 걷던 그가 형의 영향으로 본격적인 개발자의 세계로 입문한 셈이다. 그리고 VK는 대히트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한다. 2007년 2월 10만 이용자를 끌어모으며 러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소셜네트워크로 인정받았으며, 2008년 4월에는 무려 1000만 이용자를 기록해 12월 기준으로 라이벌 회사 오드노클라스니키(Odnoklassniki)를 물리치기에 이르렀다.

파벨 두로프는 단숨에 ‘러시아의 마크 주커버그’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 VK의 성공으로 그는 약 2억6000달러(약 2조원 이상)의 순자산을 보유하게 됐으며, (2014년 기준) 글로벌 랭킹 8위에 오르기도 했다. VK는 러시아를 비롯해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 동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며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하게 된다.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형인 니콜라이와의 협업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니콜라이는 수학자이자 프로그램 개발자로서 이미 상당한 경지에 이른 인물이다. 그리고 파벨 두로프는 언어학자인 아버지의 영향을 짙게 물려받아 인문학적 소양이 충만하다. 이 둘의 만남은 곧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시너지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 형제를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에 비교하기도 한다. 물론, 파벨 두로프가 스티브 잡스, 형 니콜라이가 스티브 워즈니악이다.

승승장구하던 파벨 두로프의 인생에 굴곡이 지기 시작한 것은 러시아의 정치적 급변과 관련이 깊다. 2011년 총선과 2012년 대선 직후 러시아의 대통령인 푸틴을 규탄하는 ‘반푸틴 시위’가 급속도로 확장되며 VK와 러시아 정부의 갈등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 2011년 반푸틴 시위. 출처:뉴시스

당시 러시아 정부는 급속도로 퍼지는 ‘반푸틴 시위’를 우려스러운 사태로 규정하고, 이를 진화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 집권 3기 취임식을 하루 앞둔 2012년 5월 6일, 모스크바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져 다수의 시위대가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지자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러시아 정부는 빠르게 상황을 정리해야 했다. 가뜩이나 반푸틴 시위에 참여한 시위대가 ‘수치(Shame)’, ‘마이단(Maidan, 친(親)유럽 운동)’ 등의 구호를 외치며 국제사회의 관심을 고취시키는 것은 자칫 복잡한 외교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마이단(광장)이라는 구호는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몰아낸 반체제 시위의 중심이 됐던 ‘키예프 독립 광장’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러시아 정부는 다급했다.

이에 러시아 정부는 최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인 VK에 자료협조를 요청한다. VK를 통해 시위대가 정보를 교환하고 이를 바탕으로 조직적인 행동에 나서자 VK에 시위대의 개인정보와 반정부 인사들의 VK페이지 삭제를 요청한 것이다. 이는 2014년 10월 대한민국 검찰과 카카오톡 사이에서 벌어진 일과 유사하다. 하지만 VK의, 파벨 두로프의 선택은 대한민국의 2014년 10월과 달랐다. 그는 러시아 정부의 요청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한편, 어떠한 정보도 제공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러시아 정부 입장에서 VK가 ‘눈엣가시’로 부상하는 순간이다. 이후 파벨 두로프는 러시아 정부가 보낸 공문을 VK 페이지에 전격 공개하며 사실상 독일로 망명했다. 그리고 대화내용을 암호화시켜 제3자가 모니터링 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보안용 모바일 메신저인 텔레그램을 개발했고 2013년 8월, 독일에서 처음 시작됐다.

텔레그램은 지금도 순항 중이다. 최초 카카오톡 감청사건이 불거졌을 당시 벌어졌던 ‘모바일 메신저 망명’의 폭발적인 성장세는 아니지만, 월간 사용자 5000만명을 모으며 증권가를 중심으로 전문수요가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 정계를 달구고 있는 정윤회 문건도 텔레그램을 통해 오갔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2015년은 텔레그램에도, 파벨 두로프에게도 중요한 시기로 보인다. 온라인 보안 및 사생활 보호에 대한 담론이 뜨겁게 타오르며 파벨 두로프로 상징되는 이상적인 관련 인프라의 발전이 화두로 부상하기 때문이다. 그가 보여줄 낭만적인 혁명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최진홍 기자  |  rgdsz@econovill.com  |  승인 2015.01.05  11: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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