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새해 벽두부터 대규모 투자 계획을 잇따라 발표하는 등 글로벌 영토 확장을 위한 공격 경영에 힘찬 시동을 걸었다.

2011년 신묘년, 21세기 두 번째 10년의 출발점에 선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투자와 고용으로 한국 경제의 글로벌 도약을 이끌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풀이된다.

지난 5일 재계에 따르면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이날 오후 서울 삼성동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기자들에게 “올해에는 총 15조 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10조5000억 원)에 비해 10.5% 늘어난 것이다. 정 회장은 또 “올 상반기에 현대제철 고로 3호기 건설에 착공하는 등 올해 투자가 많이 계획돼 있다”며 “새해에 투자를 늘려서 일자리를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이날 투자와 채용 규모를 지난해 대비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면서도 “지난해보다는 늘릴 것”이라고 대답했다.

SK는 지난해 모두 8조 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했으며, 2000명의 인원을 채용했다.
앞서 삼성그룹은 사상 최대 규모인 43조원 이상을 투자하고 채용 규모도 사상 최대인 2만5000명으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투자 규모는 지난해 36조5000억 원보다 18%, 채용 규모는 2만2500명을 뽑은 작년보다 11% 많은 수준이다.

구체적으론 시설에 29조9000억 원, 연구개발(R&D)에 12조1000억 원, 자본 분야에 1조1000억 원을 각각 쏟아 붓는다. 장기 사업에 대한 투자라는 점에서 삼성의 공격 투자는 향후 10년을 넘어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으로 관측된다.

LG그룹도 지난달 20일 역시 역대 최대 규모인 21조 원(시설 17조3000억원, R&D 4조7000원)의 투자 계획을 공개했다. 이는 지난해 18조8000억 원보다 11.7% 늘어난 규모다. 특히 그룹 창립 이래 연간 투자액이 20조 원을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R&D 투자가 4조 원을 넘어선 것도 미래 기술 확보라는 점에서 삼성과 궤를 같이 한다.

포스코는 오는 13일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정준양 회장 주재로 CEO포럼을 열고 구체적인 투자 규모를 발표한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해외 철강과 자원개발, 그룹 동반성장 분야 등의 투자에 주력할 방침인 가운데, 채용 규모도 지난 해(5520명)보다 많은 6300명을 공채한다는 계획이다.

이밖에 현대중공업그룹은 작년 투자액(2조원)보다 25% 증가한 2조5000억 원을, 두산그룹은 친환경기술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 등에 작년 대비 28% 증가한 1조6000억 원을 투자키로 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과 LG가 사상 최대 투자 계획을 발표함에 따라 다른 그룹들도 투자 및 채용 확대에 나설 것”이라면서 “투자와 채용 확대를 통한 대기업들의 공격경영 움직임이 국가 경제와 산업계의 올해 분위기를 이끌 화두가 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소비자 마음 읽어라” 두산 女사령탑 영입

중공업·B2B 위주로 하는 두산그룹이 ‘소비자 마케팅 전문가’를 영입해 마케팅 전략의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두산은 지난 5일 임원 인사를 통해 최명화 전 LG전자 상무를 브랜드팀 팀장(전무급)으로 발령했다고 밝혔다.

1965년생인 최 팀장은 미국 버지니아공과대학 대학원에서 마케팅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세계적 컨설팅 업체인 맥킨지에서 마케팅 리서치 분야 분석가로 활동하다가 지난 2007년 4월 LG전자 상무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남용 부회장은 ‘인사이트 마케팅팀’을 신설해 그를 팀장으로 임명해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최 팀장의 주 전공인 인사이트 마케팅은 고객이 표현하지 않은 욕구를 ‘통찰’해 제품에 반영하는 것으로, 인텔 등 세계적 기업들이 활용하고 있다.

“고객의 숨겨진 욕구 파악이 상품 개발의 핵심”이라고 강조하는 최 팀장은 이를 활용해 실속형 기능과 세련된 디자인으로 인기를 끈 ‘와인폰’, 플라즈 마디스플레이 패널(PDP)은 대형 TV용이라는 통념을 깨고 제작된 32인치 PDP TV 등을 개발토록 해 큰 성공을 끌어낸 바 있다.

또한 팀원들과 함께 수도권 지역 LG전자 매장을 직접 돌며 고객의 동선과 시선을 면밀히 분석한 끝에 LG전자의 제품 배열을 ‘ㄷ자형’으로 바꿔 고객의 편의를 극대화 시켰다.

3년여의 LG전자 생활을 마치고 두산그룹으로 입사한 최 팀장은 그 자신이나 두산 모두에게 새로운 도전이 될 전망이다.

2011년! 우리 회사엔 각별한 생일

10살 STX 재계 12위 성장…20살 팬택계열 워크아웃 극복

새로운 10년을 시작하는 2011년. 올해 끝자리가 ‘0’으로 끝나는 ‘의미있는 생일’을 맞는 기업들이 상당수 있다. 지난 5일 재계에 따르면 재계의 신화라고 불리는 STX그룹(5월 1일), 팬텍계열(3월 29일), 웅진그룹(4월 1일)이 각각 설립 10·20·30주년을 맞는다.

말단 사원에서 쌍용중공업 사장에 오른 강덕수 STX 회장은 외환위기 사태로 쌍용그룹이 부도가 나자 회사로부터 받은 스톡옵션과 사재 20억 원을 들여 회사를 인수했다.

이후 대동조선(현 STX조선해양)·범양상선(현 STX팬오션)·야커야즈(현 STX유럽) 등을 인수하며 조선·해운 부문 수직 계열화를 완성한 강 회장은 10년 만에 STX그룹을 연매출 규모 30조 원, 자산 규모 25조원으로 21세기 이후 설립된 그룹으로는 유일하게 재계 순위 12위로 성장시켰다.

야커야즈 인수 계약서에 사인한 후 “그제서야 내가 엄청난 일을 벌였다”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그의 말은 사내에 종종 회자 되고 있다. 웅진그룹의 모태인 웅진씽크빅(4월 1일)도 서른 살이 됐다.

설립일은 1980년이지만 만 나이로 올해 30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출판사 영업사원으로 승승장고 하던 윤석금 회장은 직원 7명, 자본금 7000만 원으로 도서출판 헤임인터내셔널을 설립해 사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30년이 지난 현재 웅진그룹은 교육 출판과 생활환경가전과 식음료, 건설, 소재, 금융 등 14개 계열사를 거느리며 연매출 5조3000억 원의 그룹으로 성장했다. 윤 회장은 올 신년사에서 “감사할 일이 많은 한해를 만들겠다”며 성장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박병엽 팬텍계열 부회장의 20년 여정도 한편의 소설과 같을 정도. 10여명의 동료와 함께 맥슨전자에 사직서를 낸 그는 1991년 서울 신월동 20평 남짓한 사무실에 자본금 5000만 원으로 무선호출기를 생산하는 ‘팬텍코리아’를 설립했다.

1997년 휴대전화 사업에 뛰어든 뒤 2001년 하이닉스반도체(구 현대전자)의 휴대전화 사업부였던 현대큐리텔(구 하이닉스반도체 휴대전화 사업부), 2005년 SK텔레텍을 인수하며 사세를 키웠다.

무리한 확장정책으로 2007년 기업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갔지만 백의종군의 자세로 마음을 다잡은 박 부회장은 매출액 4조 원대, 국내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2위, 세계 휴대전화 시장점유율 10위의 기업으로 부활시켰다. 팬텍계열은 국내 전자산업 역사상 삼성전자, LG전자에 이어 세 번째로 연매출 1조원이 넘는 기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강화된 오너체제…위상 높아진 홍보맨

3세 경영 대비 삼성·SK 홍보 임원 승진 대폭 확대

국내 주요 그룹의 본격적인 오너가 3세 경영 시대 개막과 함께 기업의 ‘얼굴’ 혹은 ‘입’으로 불리는 홍보맨 위상이 부쩍 강화되고 있다.

삼성그룹을 비롯한 연말 대기업 인사에서 홍보 담당 임원의 승진이 눈에 띄게 두드러진 점에서 단초를 읽을 수 있다.

특히 예년과 달리 올해는 재벌가 3세들이 경영 최전면에 급부상하면서 홍보맨의 역할 비중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트렌드 중심에는 삼성그룹이 있다. 삼성그룹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맏아들과 딸 이재용, 이부진이 나란히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르면서 이례적으로 홍보 임원 인사를 대폭 확대했다.

평소 “기업의 손익 문제는 재도전의 기회가 있지만, 기업의 홍보는 곧바로 생사 여부를 결정한다”고 언급한 이 회장의 의중이 십분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12월8일 대기업 연말 정기 인사의 물꼬를 튼 삼성그룹은 490명의 역대 최대 규모 인사를 단행하면서 계열사 홍보 담당 상무 2명을 전무로, 부장 7명을 상무로 진급시켰다. 삼성 관계자는 “지난해 계열사별 호실적을 바탕으로 역대 홍보 라인 가운데 가장 많은 임원 승진이 이뤄졌다”고 전했다.

SK그룹은 지난 2004년 이래 7년 만에 처음으로 홍보 총괄 책임자를 교체했다. 재계 ‘홍보통’으로 알려진 권오용 SK그룹 브랜드관리실장이 PR고문(사장)역에 오르는 대신 현 자리에서 물러나고 이만우 상무가 전무로 승진하면서 뒤를 잇게 됐다.

이 외에 그룹의 현안이 산적한 금호아시아나그룹과 현대그룹 등에서도 홍보 담당 임원 승진이 두드러졌다.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는 장성지 전무가 4년 만에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장 부사장은 이번에 승진한 박삼구 회장의 장남 박세창 금호타이어 전무를 도와 그룹의 워크아웃 조기 졸업을 위해 진력을 쏟을 예정이다.

정리=백가혜 기자 lita@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