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매체는 종말하며, 언론도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는 말은 이제 고루한 옛말이 되어 버렸다. IT기술의 발전으로 정보 범람의 시대를 맞이한 우리는 스스로가 빅데이터에 가까운 방대한 정보를 스스로 게이트 키핑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으며, 말 그대로 언론의 역할은 축소되어 버렸다. 이제 지상파 방송을 비롯한 대형 미디어의 영향력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으며 조금씩 그 힘을 다하고 있다. 동시에 새로운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집단지성의 힘을 무기로 새로운 언론의 모델을 찾으려는 시도는 꽤 오래전부터 존재했으며, 이제는 언론과 일반 정보의 경계마저 흐릿해지는 분위기다.

그러나 그 반대급부로 소위 대안언론의 힘이 강력하게 뻗치고 있다고 보기에도 어렵다. 정확히 말해 지금은 과도기다. 근 100년 동안 우리가 철석같이 믿고있던 언론의 존재감이 시대의 변화라는 바람에 휩쓸려 위기에 처하고, 이 위기를 넘기며 온전히 언론의 역할을 수행하려 노력하는 장면이 연출되며 뚜렷한 대체자를 찾기 어려운 상황. 즉 힘의 공백이다.

언론사는 저널리즘만 '파는 것'이 아니다
여기 흥미로운 소식이 있다. 아마존이 인수한 미국의 워싱턴포스트가 자사의 콘텐츠관리도구(CMS)를 라이선스 조건으로 외부기업에 판매하려고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여기서 말하는 CMS는 언론사의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종의 소프트웨어며,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하거나 송고하는 시스템 전반을 의미한다.

현재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미국도 대다수의 언론사는 상용 CMS를 구입해 활용하고 있다.(국내 언론사의 상용 CMS의 예:엔디소프트) 다만 일부 대형 언론사의 경우 자체 CMS를 구축해 활용하고 있으며 워싱턴포스트도 자체 CMS인 '메소드'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워싱턴포스트는 컬럼비아대, 예일대 등 일부 대학을 대상으로 시범적으로 메소드(자체 CMS)를 배포하는 한편 추후 다른 언론사에 자신들의 CMS를 판매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워싱턴포스트가 활용하는 CMS의 성능은 상용 CMS와 비교했을때 비교우위에 있다고 여겨진다. 만약 이러한 '사업'이 속도를 낼 경우 상당한 수입원이 될 전망이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이제 언론사가 자체개발한 소프트웨어까지 판매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저널리즘 정신에 입각해 '글'만 쓰는 시대가 지났다는 오래된 격언을 생생하게 체감하게 만드는 순간이다.

물론 저널리즘의 기본적인 정신까지 흔들리면 곤란하다는 전제로, 현재 워싱턴포스트로 대표되는 글로벌 언론사는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혁신의 글로벌 유통기업 아마존의 DNA를 물려받은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IT인력을 크게 확충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언론사가 소프트웨어만 판매하는 것도 아니다. 디지털 에이전시 사업에 전사적으로 뛰어드는 한편 E-커머스 사업, 대중적인 마케팅, 심지어 실제 유통사업에도 진출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언론사들은 디지털 에이전시 사업에 열중이다. 지역언론의 기반이 튼튼한 미국의 언론환경을 바탕으로 각 언론사들은 기업에 디지털 비즈니스 컨설팅과 웹사이트 리뉴얼, 심지어 홍보까지 대행한다. 구독료로 살아가던 시절은 오래전 사라졌고 광고비에 의존하는 수익모델도 이제 버티기 어려울만큼 약해진 상황에서, 언론사들도 새로운 사업에 속속 진출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국내 언론사는 어떨까? 국내 언론사도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다. 하지만 그 분위기는 외국과 크게 다르다. 발전적이고 투명한 시스템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사업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구태의연한 옛날모델에 기반을 둔 파생상품에만 집중하는 분위기다. 대표적인 사례가 언론사 명의로 열리는 세미나와 각종 이벤트며, 그 과정에서 오가는 협찬이다.

국내 지식 인프라의 발전을 위해 실시되는 언론사의 각종 세미나를 모두 비하할 생각은 없으나, 분명 대부분의 세미나는 언론사의 '돈 벌이 이벤트'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 대목에 이르러 그렇게 첨예하게 대립하던 진보-보수언론도 모두 한마음이다. 언론사 명의로 세미나 및 마라톤 대회를 준비하며 중앙정부 및 관계단체, 지방자치단체에 과도한 협찬비를 요구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뉴스거리도 아니다.

언론사도 변해야 산다
미국의 방식이 모두 옳다는 것은 아니다. 언론사가 디지털 에이전시 사업에 전사적으로 뛰어들어도 문제가 발생할 여지는 있으며, 그 과정에서 언론사의 정체성이 사라질 위험도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생존을 위해 다양한 사업에 진출하며 반드시 새로운 기술의 발전을 전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과 투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어차피 국내와 글로벌 모두 언론사가 처한 상황은 비슷하게 어렵다. 그런데 왜 우리의 언론사는 옛날모델의 파생품으로 연명하고, 미국의 언론사는 자체 개발한 CMS를 배포하거나 명문화된 시스템에 입각해 사업을 벌이는가?

언론사가 게임도 만들고, 자체 개발한 소프트웨어도 팔며, 다양한 마케팅 솔루션을 제공하는 컨설팅 그룹을 구축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투자를 꺼리며 옛날모델에 집착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이는 저널리즘이라는 가장 기본적이고 원칙적인 정신까지 흔드는 심각한 폐혜다.

모든 것을 팔아도 좋다. 단, 자존심만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