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와도 같은 미국 경제의 성장세는 미국 동부지역보다는 서부지역 캘리포니아에서 만개했
다. 동부지역은 1960년대가 시작되면서 미국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한 베이비붐 세대의 재
발견으로 인권운동과 반전운동이 불길처럼 타올랐다. 이 지역은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자유
와 평화, 평등을 외치는 ‘정치’의 공간이 되어 갔지만 서부지역의 사정은 완전히 달랐다. 이 지역
의 핵심은 ‘경제’였다. 기술 개발과 혁신에 대한 확신으로 1950년대 중반 이후, 서부의 캘리포니
아 주는 미국의 풍요로운 경제를 과시할 수 있는 거점으로 등장했다. 수많은 미국인뿐만 아니
라 중남미와 아시아 사람들까지도 ‘고 웨스트(Go West)’를 외치며 몰려들었다. 이러한 서부행
(行)은 19세기 말, 정확히는 1848년부터 1855년부터 금을 찾아 몰려온, 이른바 캘리포니아 골드
러시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에 이르러 정점에 달했다. 당
시 캘리포니아 주지사 팻 브라운에 따르면 “세계사에서 가장 대규모의 인구 이동”일 만큼 폭발
적인 인구 증가였다. 사람들이 서부로 몰려든 이유는 이곳이 농업, 광업, 공업의 중심지로 고용
의 기회와 폭이 매우 넓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일자리 창출’이 거저라고 할 정도로 쉬웠다. 목
재, 원유, 방사성 금속, 텅스텐 등 천연자원이 풍부했고 과일, 채소, 사탕무, 호두, 아몬드 등 농작
물 생산량은 아이오와 주 다음으로 많아 연간 7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 1차 기초산업 관련 일자
리가 넘쳐났다. 

게다가 1962년에는 국방 및 우주 계획 프로그램이 확립되면서 연방 예산의 25%를 따냈고 1950
년대에는 실리콘밸리가 조성돼 ‘웨스턴 일렉트릭’, ‘레밍턴 랜드’, ‘모토로라’ 등 200여 개의 전
자 회사들이 이곳에 진을 쳤다. 캘리포니아로 몰려든 사람들은 농사를 짓거나 공장에 취직
할 수 있었고 도심의 빌딩에서 근무했으며 조금만 노력하면 집을 살 수 있었다. 1962년 말, 당
시 유명한 잡지 <라이프(Life)>지는 “캘리포니아는 활짝 열린 고용 시장, 수영장이 딸린 풍부
한 주택 시장, 160개의 주립 공원과 슈퍼마켓 등으로 미국 평균보다 25%가 많은 1인당 국민소
득을 예약한 곳”이라며 마치 ‘이곳으로 오라’고 대놓고 이주 욕구를 부추기듯 다른 지역민들
을 선동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긍정과 낙관, 나아가 쾌락이 그들
의 정서를 지배하는 것은 당연했다. 거대 도시, 혁신 도시를 넘어 쾌락 도시가 따로 없었다. 2
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마친 전후(戰後)의 이 같은 캘리포니아 드림은 또한 수십 년을 지배
한 미국의 키워드인 ‘아메리칸 드림’으로 직결되었다. 만약 여기에 음악이, 여기만의 음악이 존재
했다면 어떤 음악이었겠는가. 흑인 공민권 쟁취와 전쟁 반대의 시위 물결에 휩싸인 동부지역
은 밥 딜런과 조앤 바에즈의 포크(Folk)가 융기했지만 캘리포니아는 완전히 성격이 다 ‘낙관적
인’ 사운드의 음악이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바로 전형적인 여름 음악인 서핑 뮤직
(surfing music)이었다. 캘리포니아의 서핑 붐을 반영한 이 음악은 급속도로 캘리포니아를 넘
어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서핑 놀이 하는 미국’이었다. 이 시절 캘리포니아는 미국을 대표
했다. 

‘모두가 미국 전체에 바다를 가질 수 있다면/ 모두들 파도타기를 할 텐데 캘리포니아에서처
럼/ 헐렁한 바지를 입고 가죽 끈 샌들을 신고/ 부스스한 금발 머리로/ 미국을 서핑하지…/ 우
린 모두 떠날 계획을 세울 거야/ 우린 진짜 곧 떠날 거야/ 우린 서핑 보드들에 광을 낼 거야/ 6월
까지 기다릴 수 없어/ 모두 여름 동안 떠나 있을 거야/ 우린 사파리를 계속할 거야/ 선생님께 우
린 파도타기 하러 갔다고 말해 줘/ 미국 전체가 파도타기를 하지.’

(If everybody had an ocean across the U.S.A/ Then everybody’d be surfin’ like   California/ You’d
seem’em wearing their baggies
Huarachi sandals too/A bushy bushy blonde hairdo/Surfin’ U.S.A.
…/We’ll all be planning out a route/ We’re gonna take real soon/ We’re waxing down our surfbo
ards/ We can’t wait for June/ We’ll all be gone for the summer/ We’re on safari to stay
/ Tell the teacher we’re surfin’/ Surfin’ U.S.A..) -
 비치 보이스의 ‘서핑의 미국(Surfin’ USA)’ 

히피의 찬가 ‘캘리포니아 드리밍’
캘리포니아는 몇 년 뒤인 1960년대 중후반 즈음에는 기성 질서에 가담하기를 거부하며 새로
운 가치를 주창한 젊음의 무리, 이른바 히피(Hippie)의 본거지가 되기도 한다. 여기의 중심지
는 캘리포니아 주를 대표하는 도시로 로스앤젤레스와 라이벌 관계에 있는 샌프란시스코였다. 샌
프란시스코에 몰려든 히피들은 전쟁 아닌 평화를, 출세 아닌 나눔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공
동체 의식을 설파하고 또 실천했다. 당시 히피들 중에는 부모가 중산층인 베이비붐 세대 대학생
들이 많았다. 그들은 공황기를 겪은 전(前) 세대들이 신봉한 물질주의적 문화 덕분에 상대적 풍
요 속에 자랐지만 부모들이 숭고하게 떠받든 바로 그 부르주아적 가치를 전면적으로 공격했
다. 젊은이들은 히피의 고상한 이데올로기가 움트기 시작한 캘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와 근
처 로스앤젤레스로 몰려들었고 무척 동경했다. 

팝의 명곡으로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마마스 앤 파파스(Mamas & Papas)의 곡 ‘캘리포니아 꿈
꾸기(California dreamin’)’가 이러한 흐름을 포착할 수 있는 대표적인 노래다. 이 곡은 히피 문화
가 막 태동한 1966년에 발표되어 단숨에 밀리언셀러를 기록할 만큼 빅히트했다. ‘나뭇잎은 모
두 갈색으로 변하고 하늘은 뿌연 빛이고/ 이 겨울날에 난 산책을 했지/ 만약 내가 로스앤젤레스
에 있다면 편안하고 따스할 텐데/ 이 추운 겨울날 캘리포니아를 꿈꾼
다…’(All the leaves are brown/ And the sky is grey/ I’ve been for a walk on a winter’s day
/ I’d be safe and warm if I was in L.A/ California dreamin’ 

On such a winter’s day…) - 마마스 앤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꿈꾸기’  차가운 날씨의 뉴욕에
서 따스한 캘리포니아로 가기를 희망하면서 캘리포니아가 주도하는 히피 문화를 찬양하는 메시
지를 담은 내용이다. 넉넉한 경제가 꽃을 피운 1960년대에 ‘아메리칸 드림’은 곧 ‘캘리포니아 드
림’이었다. 그 캘리포니아는 1976년에 나온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와는 전혀 성질이 다
른 것이었다. 이글스의 캘리포니아도 미국을 상징하는 것이었지만 안타깝게도 1970년대 미
국 경제는 이미 성장의 속도가 꺾여 장기 불황에 허덕이는 우울한 상황으로 변해 있었다.

본 기사는 아하경제신문 2014년 제 22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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