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부터 봄까지 먹기 위한 김치를 한 번에 많이 담가두는 김장은 우리 조상들에겐 중요한 월동(越冬) 준비였다. 마땅히 먹을 만한 채소, 과일이 없었던 겨울의 김장김치는 이듬해 햇채소가 나오기 전까지 서민들의 거의 유일한 비타민, 미네랄 보충 식품이기 때문이다.

겨울 밥상에서 김장김치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했는지는‘김장은 겨울철의 반 양식’이란 말만 들어도 알 수 있다. 김장김치는 통배추김치, 통무김치, 총각김치, 깍두기를 모두 포함한다. 김치의 주재료는 배추, 무지만 거의 모든 채소로 김치를 담글 수 있다. 어떤 채소를 사용했느냐에 따라 열량, 영양소가 조금씩 달라진다.

발효과정을 거친 유산균의 제왕
김치는 침채류(沈菜類)의 일종이다. 침채류란 채소를 소금이나 식초에 절여 만든 것으로 중국의 파오차이, 일본의 츠케모노, 서양의 피클 등이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김치는 다른 침채류와 달리 두 번의 발효과정을 거친다. 먼저 소금에 절였다가 다시 갖은 양념과 젓갈을 넣어 버무린 뒤 항아리에 넣고 발효(젖산 발효)시킨다. 다른 침채류보다 김치에 유산균(젖산균)이 훨씬 많은 것은 그래서다.

김치를 흉내 낸 일본의 기무치는 발효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장(腸) 속 유해 세균을 죽이는 항균(抗菌) 작용과 장을 깨끗하게 하는 정장 작용도 김치의 매력이다. 김치의 숙성과정에서 다량 생성되는 유산균은 김치 내 유해균의 번식을 억제한다. 김치 먹고 식중독에 걸리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은 이래서다. 잘 익은 김치 1g에 든 유산균 숫자는 자그마치 1억 마리에 달한다. 김치를 ‘살아있는 음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래서다. 김치의 유산균은 공기가 없는 상태에서 더 잘 자란다. 김치를 담근 뒤 손으로 누르고 뚜껑을 꼭 닫아 놓으라고 권하는 것은 이래서다.

김치의 유산균은 잘 익은 김치는 물론 덜 익은 김치, 신 김치, 묵은 김치에도 들어 있다. 그러나 김치에서 군내가 나기 시작한다면 유산균 대신 잡균이 주종을 이루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김치는 식용 외의 다른 용도로 쓰거나 버리는 것이 좋다. 김치가 너무 시어지면 발암성 물질인 나이트로스아민이 생길 수 있다.

식욕을 북돋아주는 뛰어난 감칠맛
저열량 식품이란 사실도 김치를 돋보이게 한다. 김치의 열량은 100g당 9(동치미)〜5㎉(파김치)에 불과하다. 배추김치는 29㎉다. 수분이 많은 데다 식이섬유가 풍부하며 고추의 매운맛 성분인 캡사이신이 지방의 분해, 연소를 촉진하는 것도 김치를 다이어트 식품으로 꼽는 이유다. 이런 이유로 최근 일본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김치, 고춧가루 붐이 불고 있다.

김치는 또 양념이 ‘예술’이다. 김치 양념 중 하나인 마늘에 든 알리신 성분은 암 예방을 돕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역학조사에서는 마늘을 많이 섭취할수록 위암, 전립선암, 결장암의 발병률이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배추, 무 등에 풍부한 식이섬유는 특히 대장암 예방에 효과적이다. 김치에는 또 베타카로틴, 비타민 C, 비타민 E 등 유해(활성)산소를 없애는 3대 항산화(抗酸化) 비타민도 많이 들어 있다. 김치의 항암 효과는 이 다섯 후보들의 합작품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맛이 뛰어나 식욕을 북돋아준다는 것도 김치의 장점이다. 매끼 먹어도 질리지 않으며, 발효식품 특유의 감칠맛은 한 번 빠지면 여간해선 외면하기 힘들다. 특히 김치가 잘 익으면 감칠맛과 코끝을 톡 쏘는 탄산미가 최고조에 달한다. 우리 선조들은 이 맛을 보전하기 위해 숨을 쉬는 옹기에 김치를 보관했다. 여름에는 석정(石井)에, 겨울에는 땅속에 묻어 김장김치의 맛을 오래 유지했다. (계속)

이 기사는 건강소식 11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