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와 다음카카오가 마치 약속이나 한듯 벤처 생태계 조성에 나섰다. 12일 네이버가 강남역 메리츠타워 1개 층을 스타트업을 위한 엑셀러레이팅 센터로 구축한다고 발표했으며 23일 다음카카오는 1000억 규모의 투자전문회사 케이벤처그룹을 설립해 창조경제 활성화에 나서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국내 ICT 업계를 사실상 양분하고 있는 대형 포털업체들이 연말을 맞아 '새삼스럽게' 유망 스마트업과 사랑의 온정을 나누는 분위기다.

▲ 이미화 기자

일단 전제할 점은, 네이버와 다음카카오의 움직임은 그 자체로 긍정적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사실 시너지 효과 측면에서 장기적인 플랜을 짰을때 네이버와 다음카카오의 선택을 탁월하다. 스타트업 생태계를 구축해 글로벌 ICT 기업의 과도한 시장개입을 막아내는 한편, 토종 ICT 생태계의 경쟁력을 강력하게 견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네이버와 다음카카오라는 거대한 우산 아래에서 육성된 스타트업은 그 자체로 창조경제의 결과물이며, 동시에 네이버와 다음카카오의 영원한 우군으로 남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네이버와 다음카카오의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 움직임 이면에는 치밀한 정치적 셈법이 숨어 있다고 본다. 긍정적인 유발효과를 위해 두 포털업체가 대승적인 결단을 내렸다는 점은 변함이 없으나, 여기에는 냉혹한 사업의 법칙도 숨어있다.

먼저 네이버. 네이버는 국내 ICT 대부분을 장악한 말 그대로 인터넷 공룡이다. 그런 이유로 잊을만 하면 독과점 문제가 수면위로 부상해 네이버를 괴롭히곤 한다. 한때 네이버가 독과점 비판에 직면해 1000억 원의 자본금을 상생경영의 형태로 시장에 풀었던 점을 상기해 보자. 네이버 입장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여론의 악화가 실제적인 정치-사회적 압력으로 구체화되어 인프라의 근간을 뒤흔드는 사태다.

이런 관점에서 네이버의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은 일석이조의 꽃놀이패다. 스타트업을 지원하며 상생경영의 이미지를 쌓는 한편, 자신들의 우군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여론에 등을 떠밀려 막대한 과징금을 무는 것보다, 차라리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를 단행하는 것이 네이버에게는 유리하다. 그런 의미로 올해 하반기를 뜨겁게 달구었던 텔레그램 열풍과 구글과 유럽연합의 반독점 이슈는 네이버에 있어 중요한 반면교사가 되었을 것이다.

텔레그램 열풍은 IT의 시장 지배자적 위치를 점하던 사업자가 이용자의 지지를 상실하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여실히 보여줬으며, 유럽연합의 반독점 이슈는 외연적 확장을 거듭하는 순간, 더 이상 상대할 적이 없어져 강호를 평정하는 순간 새로운 위기가 닥친다는 교훈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네이버는 최근 모바일 생태계로의 이동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에서 런칭한 라인페이와 더불어 국내 출시용인 네이버페이 등을 연이어 런칭하며 전자결제 및 O2O 서비스를 공격적으로 추진하는 민감한 상황에서, 불필요한 논란은 사전에 제거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뉴스 검색 재편으로 일부 언론사와의 관계가 약간 불편해진 대목도 중요하다. 결국 네이버는 또 한번 '상생'이라는 키워드가 적힌 카드를 꺼냈다.

다음카카오의 케이벤처그룹 이면에도 비슷한 전략이 깔려있다. 다만 다음카카오의 경우 네이버보다 상황이 더 안좋다. 10월부터 시작된 감청논란이 몇 차례 변곡점을 돌며 정부와의 관계가 악화됐으며, 급기야 이석우 공동대표가 음란물 관련 혐의로 경찰에 출두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결국 다음카카오의 케이벤처그룹은 네이버와 비슷한 이유에서, 아니 더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동한 소방차로 이해될 여지도 있다.

일각에서는 네이버가 반독점 문제로 몸살을 앓았을 무렵 상생경영을 위해 시장에 풀었던 1000억과 다음카카오의 케이벤처그룹 설립을 통한 1000억원을 묘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논란을 수면 아래로 가라앉히고 상생경영의 시동을 거는 적정금액이 1000억원이라는 뜻일까?

물론 네이버와 다음카카오가 스타트업을 위한 생태계 조성에 나서며 통 큰 결단을 내린 점은 그 자체로 인정받아야 한다. 전반적인 큰 뜻은 지극히 긍정적이며, 또 순수하다. 다만 그 이면에는 복잡한 정치적 셈법이 숨 쉬고 있다는 점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네이버와 다음카카오의 결단이 새로운 스타트업 생태계를 성공적으로 구축해 토종 ICT의 자존심을 살리길 진심으로 기원해본다. 사실, 정치적 셈법 따위야. 가볍게 무시해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