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택의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1차 공개매각이 불발된 후 인수 희망자를 개별 접촉하며 적극적인 매각작업에 나서고 있지만 적절한 투자의향자를 찾지 못했다는 소식이다. 최악의 경우 청산절차를 밟을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8일 팬택은 이마트 수서점에 서비스센터를 신규로 여는 등 사후서비스에 만전을 기하는 분위기다. 파격적인 단말기 가격을 내세워 현금 유동성을 살리는 한편, 자신들을 선택한 고객들을 끝까지 챙기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게임의 법칙은 냉정하다
사실 냉정하게 말하자면, 현 상황에서 선뜻 팬택을 인수하겠다고 나서는 기업이 없는 것이 정상이다. 팬택이 막대한 기술개발 인프라와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지만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자체가 정체기에 돌입한데다, 외국기업 입장에서 국내에 삼성전자와 LG전자라는 '넘사벽'이 버티고 있어 팬택의 매력이 크게 반감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국시장은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과 비교하면 깊이있는 내수시장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중국이나 인도는? 안타깝지만, 스마트폰 하드웨어 스펙 샹향표준화가 이뤄진 마당에 굳이 팬택을 원할 이유가 없다. 그들도 어느 정도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국내기업이 팬택인수에 나서기도 쉽지 않다. KT의 테이크폰, SK텔레시스의 휴대폰(더블유폰) 제조 사업이 결국 실패로 끝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스마트폰 시장은 기술력이 모든 것을 '커버'해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위험요소가 너무 크다.

종합하자면, 현재의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제조 인프라에 집중한 팬택의 매력은 퇴색됐다는 결론이다. 천문학적인 금액이 오가는 사업의 법칙에서 감정으로만 움직이는 기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팬택이 1991년 직원 6명, 자본금 4000만 원으로 일어나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 다량의 특허를 보유한 '한국의 자랑'임은 틀림없지만, 법칙은 냉혹한 법이다.

하지만 바로 이 차갑고 냉정한 측면에서 팬택을 조명하면, 의외의 길이 보인다는 지적이다. 제조사로서의 팬택이 가지는 매력은 빛이 바랬지만, 그래도 최고수준의 기술력과 연구개발 인프라를 보유한 팬택의 기본바탕에 변화된 로드맵을 적용하기만 하면, 빛이 바랬던 팬택의 매력은 다시 눈부시게 빛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수를 바로 잡아야
그렇다면 변화된 로드맵은 무엇인가? 바로 팬택의 실수를 바로잡는 것이다. 지금까지 팬택은 스마트폰 시장에 발 빠른 대응을 보이며 사실상 시장선도의 DNA를 스스로에게 각인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과도한 성공에 이은 후속조치가 문제였다. 대기업이 되었다는 허울뿐인 외형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막대한 자본력을 보유한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맞서 과도한 마케팅 비용을 지출하는 등 출혈경쟁을 불사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전략에도 문제가 있었다. 팬택이 지금까지 투자한 연구개발 비용만 3조 원에 달하며 직원의 70%는 연구원이다. 현재 약 5000개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으며 1만5000개의 특허를 출원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고집스럽게 프리미엄 스마트폰으로 승부를 걸었던 팬택은 결국 자본과 브랜드 네임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좌초하고 말았다. 차라리 글로벌 시장의 문이라도 두드렸어야 한다.

만약 팬택이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현재 중국의 샤오미처럼 소프트웨어 개발에도 역량을 집중하며 중저가 단말기에 방점을 찍었다면 결론은 어땠을까? 물론 이는 결과론적인 이야기며, 웨어러블과 사물인터넷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재이기에 가능한 말이지만 일말의 아쉬움은 남는다. 샤오미처럼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자본력과 브랜드 네임을 보유한 대기업과의 정면승부라도 피했다면 지금 팬택의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업계에서는 팬택 위기의 배경을 무리한 출혈경쟁과 더불어 국내시장에 대한 과도한 의존, 방송통신위원회의 통신사 영업정지, A/S 불량 등에 따른 부정적 이미지에서 찾는다. 다 맞는 말이다. 결국 위기는 팬택이 자초했다.

지금, 위기에서 기회가 보인다
종합하자면, 팬택은 몇 차례 결정적인 실수와 더불어 외부에서 닥쳐온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체 막강한 기술력이라는 날개가 꺾인 셈이다. 하지만 역으로 현재의 팬택이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지금'에 있다는 것은 아니러니한 일이다.

최근 팬택은 베가 팝업 노트와 같은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파격적인 가격으로 출시해 관심을 끌었다. 물론 이는 공개매각 당시 현금 유동성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한 고육책이지만, 결과적으로 팬택의 저력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기도 했다. 현재 팬택의 스마트폰은 품귀현상까지 일으키며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아이폰6 대란이 필요없다. 베가 팝업 노트 자체가 업계에 대란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일차적 희망이 보인다. 팬택의 기술력은 아직 살아있으며, 여전히 시장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낸다는 점이다. 물론 '중저가'라는 전제가 붙기는 하지만.

18일 이마트 수서점에 서비스센터를 열었다는 지점에서는 팬택의 변화된 철학을 확인할 수 있다. 벼랑 끝에 몰렸던 팬택이 사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깨닫는 느낌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중요한 가치를 깨달았다는 점을 대외적으로 피력해야 한다는 것을 백번 공감했다고 볼 수 있다. 동기야 무엇이든, 이는 팬택이 지금까지 저질렀던 치명적인 패착인 '대기업 마인드'를 걷어내고 고객에 집중하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 자체로 성공적인 마케팅이다.

여기에 소프트웨어의 영역까지 치고 나가는 한편, 틈새전략을 통한 글로벌 시장까지 타진할 수 있다는 잠재능력을 보여준다면 팬택의 반전은 가능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기본적인 연구개발 인프라가 있다는 점은 이제 '기본'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무기를 장착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돌고 돌아 연구개발 인프라와 변화된 팬택이다. 최근 중국의 샤오미가 특허문제로 인도와 자국시장에서 맹공격을 당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팬택의 가능성은 더욱 각광을 받을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사업 다각화의 가능성까지 보여준다면 금상첨화다. 현재 팬택은 이 모든 조건을 빠르게 충족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지나친 이상론을 경계해야 하지만, 동정론도 경계해야 한다. '대한민국 제조업 벤처 1위' 신화를 추억하며 자위할 생각을 버려야 한다. 냉정하게 생각해서 팬택이 살아날 수 있는 가능성은 낮지만 지금까지의 실수를 통해 새로운 로드맵을 짜고 급변하는 스마트 기기 생태계를 아우르는 비전을 찾을수만 있다면, 그리고 이를 적절하게 드러낼 수만 있다면, 이를 외부의 누군가 알아챌 수 있다면 기사회생의 기회는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