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익은 사과는 떫은맛이 난다. 단맛이 오르기 전에 나무에서 떨어진 사과가 그런 맛이다. 이 사과는 상품으로서 가치도 떨어진다. 나무에 매달린 몇몇 과실은 이런 운명을 맞이한다. 모든 사과가 최고의 품질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혁신의 아이콘’ 애플이 심은 사과나무에도 달콤하고 큼직한 열매만 매달려 있지는 않다. ‘설마, 애플이 이런 것도?’라는 생각이 드는 제품도 여럿 만들었다. 애플 역시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분명 혁신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솔직히 더 많지만 여기 애플의 실패작으로 불리는 10가지 제품을 모았다.

△피핀: 애플은 콘솔 게임기를 출시한 적이 있다. 일본 반다이와 공동으로 개발했지만 안타깝게도 1년 후 판매가 중단되었다. 총 4만2000대가량을 팔았다. 인기를 끌기에는 역부족인 제품이었다. 일단 게임 소프트웨어 생태계가 처참했다. 출시 당시 즐길 수 있는 게임은 20개 남짓이었고, 게임을 불러들이는 속도도 느리기로 악명이 높았다. 만약 애플이 차세대 콘솔 게임기를 내놓았다면 소니, 마이크로소프트와 겨뤄볼 수 있었을까.

△퀵테이크: 애플이 만든 디지털카메라로 출시 시점도 상당히 빠른 1994년이다. 가격은 749달러로 다소 비쌌다. 초기 모델인 퀵테이크100은 코닥과 함께 만들었다. 후속 모델인 퀵테이크150은 윈도 OS를 지원하는 제품이었다. 퀵테이크200은 코닥과 결별하고 후지필름과 만들었다. 하지만 이 시리즈는 1997년에 생산이 중단된다. 그 나름대로 완전히 자동화된 모델이었고 카메라의 기본적인 기능을 담았지만 큰 호응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매킨토시TV: 진보된 애플TV에 대한 루머는 끊임없이 나오고 있지만 언제 신형이 출시될지는 미지수다. 현재 시장의 주도권은 구글이 잡고 있다. 애플이 갑자기 TV에 관심을 보이게 된 것은 아니다. 지난 1993년에 이미 TV와 컴퓨터가 결합한 매킨토시TV를 발표했었다. 두 분야에서 모두 혁신을 일으키고 싶었지만 결과적으로 두 분야에서 모두 대표적인 실패작으로 남게 됐다. 판매 실적은 고작 1만대였다. 컴퓨터로 쓰기에는 사양이 부족했고, TV치고는 너무 비쌌다.

△파워맥 G4 큐브: 깔끔한 플라스틱 육면체 디자인으로 이름을 알린 소형 데스크톱이다. 각종 디자인상을 휩쓸었을 정도로 외관이 준수했다. 지난 2000년 세상에 공개됐으며 가격은 1799달러였다. 중앙처리장치(CPU)는 450MHz 파워PC G4프로세서를 탑재하며, 하드디스크 용량은 20GB에 램(RAM) 메모리는 64MB이다. 당시 ‘슈퍼컴퓨터’에 버금가는 성능을 자랑한다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내부에 냉각팬이 없어 기기가 무척 뜨거웠다. 소비자들은 큐브를 외면했고, 결국 출시된 지 1년 만에 생산이 중단되었다.

△맥포터블: 맥북의 전신쯤으로 생각할 수 있다. 애플이 만든 최초의 랩톱으로 지난 1989년에 출시됐다. 무게는 7.2kg에 육박했으며 크기는 서류가방보다 컸다. 한마디로 랩톱이라고 부르기 무안한 크기였다. 가격도 상당히 비쌌는데, 출시할 당시 7300달러로 책정됐다. 물가가 오른 현시점에 동일한 가격으로 출시된다고 하더라도 지갑을 열 소비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뉴턴 PDA: 당시만 해도 PDA(개인용휴대단말기)가 최신 IT기기로 대우받았다. 1993년 출시한 뉴턴 PDA는 뉴턴 OS를 탑재한 제품이었다. 처음 출시됐을 당시 일대 혁명을 가져올 것으로 주목받았다. 이메일, 팩스 전송이 가능했고 일별 일정 및 연락처 정보 정리에 도움을 주는 애플리케이션도 장착하고 있었다. 스타일러스 터치 펜으로 필기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타가 많이 나기로 악명이 높았다. 이 제품의 생산은 1998년에 중단됐으며 이후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조상으로 주목받곤 했다.

△ROKR E1: 의미가 있는 휴대전화다. 이는 애플이 휴대전화 사업에 처음 도전했을 때 내놓은 제품이었다. ROKR E1은 애플과 모토로라가 손잡고 지난 2005년 출시한 휴대전화로, 일명 ‘아이튠즈폰’이라고 불렸다. 이때 처음으로 아이튠즈 서비스를 지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장공간이 부족했으며 데이터 전송 속도가 몹시 느렸다. 또한, 휴대전화 네트워크를 통해 음악을 내려받는 것이 불가능했다. 요즘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애플지도: 애플은 지난 2012년 아이폰5와 함께 애플지도를 출시했다. 그러나 애플지도는 오류가 무척 많았다. 미국 CNN 방송은 2012년 기술부문 10대 실패작에 애플지도를 올렸을 정도다. 애플은 이 서비스를 출시하자마자 운영체제(OS)인 iOS를 점검했고 결국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소비자에게 “애플지도를 개선하는 동안 구글지도 같은 다른 지도 앱을 사용하라”고 말했다. 현재 서비스를 중단한 것은 아니다. 애플지도는 구글지도를 따라잡기 위해 변신을 모색 중이다.

△하키 퍽 마우스: 애플이 1세대 아이맥을 출시하면서 내놓은 마우스다. 하키 경기에 쓰이는 공인 ‘퍽(Puck)’을 닮았다. 스티브 잡스는 유독 이 마우스에 애착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반적이지 않은 생김새만큼 인체공학적 설계와는 무관했다. 소비자는 실용적이지 않은 이 제품을 선택하지 않았다. 이 마우스는 애플의 실패작 명단의 단골 카메오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아이팟 양말: 애플이 양말까지? 지난 2004년 애플은 아이팟 양말을 선보였다. 이 제품은 사람 발에 신는 양말이 아니라 아이팟에 신기는 양말이었다. 인기를 끄는 데는 실패했다. 소중한 아이팟을 왠지 모르게 냄새날 것 같은 양말에 담고 싶어 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결국, 지난 2012년 아이팟 양말은 애플스토어에서 쓸쓸히 퇴장했다.

실패는 혁신의 자양분

애플도 분명 실패를 맛봤다. 그런데 완전한 실패라고 할 수는 없다. 경쟁사보다 기술 혁신을 먼저 보여주려다가 시대를 너무 앞선 탓에 시장에서 외면당한 경우도 부지기수기 때문이다. 이런 도전이 지금의 애플을 만들었을 것이다. 작은 실패를 ‘메가 히트’의 자양분으로 삼은 셈이다.

애플은 여전히 혁신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 봄 출시 예정인 ‘애플워치’는 최고의 기대작이다. 업계는 애플워치가 출시될 경우 스마트워치 시장의 70~80%까지 점유율을 가져갈 것으로 내다보기도 한다. 과연 애플워치는 또 다른 혁신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이후 ‘애플 실패작’에 이름을 올릴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