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파이프로 만들어진 프레임, 1인치짜리 퀼 스템과 수수하거나 혹은 놀랄 만큼 화려한 데칼(프레임 컬러 및 패턴, 마크), 크롬으로 도금된 포크 블레이드와 러그는 옵션. 우리는 이런 요소를 가진 자전거를 ‘클래식’이라고 부른다. 이 클래식을 구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크로몰리 프레임이 아닐까 싶다.

크로몰리. 정확하게는 ‘크롬 몰리브덴 강(Chrome Molybdenum Steel)’인데, 이렇게 부르면 클래식은 사라지고 아카데믹이 살아나니 우리는 그냥 ‘크로몰리’라고 부르자.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면 크로몰리는 철(鐵)의 일종이다. 하지만 이건 칼럼이니 조금만 더 복잡하게 설명해 보겠다.

자전의 소재인 철은 혼합된 소재에 따라 성질과 함께 이름도 달라진다. 자전거 프레임에 사용되는 철은 크게 두 가지, 하이텐과 크로몰리로 나뉜다. 철은 혼합된 소재에 따라 성질과 함께 이름도 달라지는데, 하이텐은 탄소강에 망간이나 니켈 등을 첨가해 성능을 향상시킨 소재로 보통 강(Steel)보다 인장강도가 강한 철이며 하이 텐실 강(High Tensile Steel)의 줄임 말이다. 인장강도는 쇠를 잡아당기면 끊어지지 않고 얼마나 늘어나나를 나타낸 수치로, 인장강도가 높을수록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번 칼럼 읽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겠다. 하여튼 무거워도 가공하기 좋고 저렴해 생활 자전거 소재로 인기 있는 하이텐이지만, 자전거인들에게 하이텐 자전거는 싸구려 혹은 저질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 있는 소재이기도 하다.

한편, 크로몰리는 철에 크롬, 몰리브덴을 섞어서 만든 합금강이다. 크롬은 단단함과 충격을 견디는 성질을 강화시키고, 몰리브덴은 가공성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합금은 하이텐보다 인장강도가 높아 프레임을 구성하는 튜브를 더 얇게 할 수 있어서 가볍고 탄성 좋은 프레임을 만들 수 있다.

크로몰리 프레임은 완성도에 따라 등급이 나뉘어 몇 십만원부터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제품까지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다. 크로몰리 프레임의 등급을 결정하는 요인은 다양하지만 크게 튜빙과 제작방식에 따라 결정된다.

튜빙은 프레임을 구성하는 파이프다. 파이프의 두께를 얇게 해 가벼우면서도 튼튼하게 제작하는 것이 관건인데, 뒤틀림이라든가 충격 같은 응력이 집중되는 파이프 끝 부분은 튼튼하고 두껍게 제작하고, 상대적으로 응력을 덜 받는 파이프 중간 부분을 얇게 만드는 방식을 ‘버티드 가공’이라고 한다. 파이프가 두 가지 두께로 구성되면 ‘더블 버티드’, 세 가지 두께로 구성되면 ‘트리플 버티드’가 되는데, 이런 튜빙 기술을 가진 업체들이 저마다의 이름을 내걸고 시장을 리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비둘기 마크가 인상적인 이탈리아의 ‘콜럼부스’, 가장 오래된 튜빙 회사인 영국의 ‘레이놀즈’ 그리고 뭐 요즘 밉상 짓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나라 일본의 ‘탕게’ 등이 유명한데, 이 브랜드를 달고 나온 튜빙을 사용한 크로몰리 프레임이라면 대부분 쓸만한 녀석들이라고 봐도 좋다.

크로몰리 프레임의 장점을 꼽으라면 직진성을 꼽는 사람들이 많다. 직진성이 좋다는 말은 앞으로 쭉쭉 치고 나가는 맛이 있다는 이야긴데, 솔직히 필자는 크로몰리가 쭉쭉 치고 나가는 건지 아니면 무거워서 관성이 생긴 것인지 잘 구분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경륜이 풍부한 라이더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니 직진성이 좋은 것으로 하고 넘어가자.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필자가 말하고 싶었던 크로몰리 프레임의 첫 번째 장점은 ‘긴 수명’이다. 피로한계는 어떤 충격을 영구적으로 받아도 부러지지 않는 최대 충격, 힘의 크기를 뜻하는데, 크로몰리는 인장강도가 높아 피로한계도 높다. 즉, 자전거를 타다 보면 필연적으로 생기는 충격이 누적되어 알루미늄이나 카본이 부러질 때, 크로몰리는 저 계룡산 높은 곳 소나무처럼 독야청청하며 저 혼자 멀쩡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크로몰리가 녹스는 부분만 잘 관리하면 평생 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장점은 ‘크로몰리 프레임은 멋있다’는 거다. 카본이 날고 기어도, 티타늄이 제아무리 희소성과 고가의 포스를 뿜어내도, 클래식한 크로몰리 앞에서는 다 부질없는 짓이다. 크롬으로 도장되어 은색으로 반짝거리는 러그와 포크 블레이드, 체인스테이는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고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페인팅은 무조건 섹시한 거다. 퀼 스템과 시트포스트, 핸들바까지 프레임에 맞춰 장착한다면 예술작품처럼 보일 것이며, 마지막으로 프레임에 맞는 실버 계열 구동계와 가죽 바테잎, 안장까지 갖추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어떤가? 퍼포먼스도 중요하지만 나와 함께 늙어갈 수 있는 멋진 자전거라니, 정말이지 남자의 ‘머스트 헤브’ 아이템이지 않은가. 이 글을 읽고 흥미를 느꼈다면 이제 당신은 크로몰리 프레임이 가지고 싶어 밤에 잠도 오지 않게 될 것이다. 필자 역시 그런 이유로 잠이 오지 않아 칼럼을 쓰고 있다는 점을 고백하면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