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용성 안국 수치과 원장.

기네스북은 천문 지리, 자연, 역사, 과학, 인문 등 다양한 분야의 세계기록들을 기술한 책이다. 세계 최고(最高) 기록부터 최저, 최다, 최고(最古), 유일 등 흔치 않은 기록들을 수록하고 있다. 때론 언론매체에 가십거리로 소개되기도 하고, 사람과 관련된 아주 특별한 재주나 기량은 당사자가 대중 앞에서 실제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과거에는 인터넷, 트위터나 카카오톡이 없던 시절이었고 해외여행도 드물었던 시절이었던 만큼 세계 최고, 최저, 심지어 우주에 대한 이야깃거리는 세인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그런 기네스북에 치과와 관련된 내용도 실려있다. 기네스북 2001년판에 <질병과 기생충1>에서 ‘가장 흔한 질병'으로 치과와 관련된 질환이 등재돼 있다.

“세상에서 가장 흔한 질병은 치은염(잇몸질환)과 같은 치주질환이다. 전 세계를 통틀어 이 증상을 겪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위의 내용이 잇몸병에 걸린 치아와 치주 사진을 배경화면으로 기네스북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세상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질환들이 존재한다. 심지어 치과라는 독립된 과(科)에서조차도 수 많은 질환이 있음에도 왜 치주질환이 기네스북에 올려져 있을까.

흔히들 치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여럿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는 어떤 사람이 잔득 찡그린 채 빨갛게 부어오른 턱에 얼음봉지를 대고 있고 그 옆에는 찌릿 찌릿한 통증을 표현한 번개 마크가 있는 모습일 것이다.

이런 이미지가 대중에게 각인돼 있는 것은 아마도 충치로 발생하는 통증의 고통이 엄청나게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기네스북에 오른 치주질환은 충치와 다른 증상을 나타낸다. 서서히 조금씩 증상이 시작된다. 그 증상의 강도도 뜨뜻미지근하기 그지 없다. 뭔가 이상이 있긴 한데 병원에 가기에는 애매하다. 실제로 며칠을 견디면 증상이 거짓말 같이 사라진다. 심지어 이런 증상마저도 없이 병이 진행돼 치료의 시기를 놓치게 된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뭔가 치아가 심각하다는 느낌을 받고서야 치과에 가면 의사로부터 치주질환이 심하니 다수의 치아를 뽑아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받고 망연자실에 빠진다. 그래서 일부 치과의사들은 치주질환을 ‘소리 없는 암살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치주질환의 대표적인 형태로 치은염과 만성치주염을 꼽을 수 있다. 치은염이란 치아를 둘러싼 분홍빛 잇몸에 염증이 생긴 것을 말한다. 전형적인 증상은 잇몸의 부종, 발적(빨갛게 부어오름) 및 출혈이다.

만성치주염은 치주염 가운데 가장 흔한 증상으로 치아를 둘러싼 잇몸, 뼈, 인대와 치아뿌리의 백악질에 염증에 발생해 만성적으로 이환(罹患:병에 걸림)된 상태를 뜻한다. 증상은 병의 진행 상태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며 병의 진행에 따라 병적인 치주낭이 형성돼 염증이 심부조직으로 파고들어 결국 치주인대, 치조골 및 백악질이 파괴되고 최악의 경우 치아상실까지 초래한다.

지난 1988~1994년 조사된 미국의 자료에 따르면 치은염은 만 13세 이상에서 54%의 유병률을 보이고, 전연령에서 48~63%의 높은 유병률을 나타냈다.

유병률이란 어떤 시점에 일정한 지역에서 나타나는 병자(病者) 수와 그 지역 인구 수에 대한 비율을 의미한다.

같은 자료에서 만성치주염도 30대 이상에서 53.1%의 유병률을 나타냈고,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수치가 증가해 80대 이상에서는 거의 90%에 이를 정도로 위험한 유병률을 나타냈다. 기네스북에 ‘전 세계를 통틀어 이 증상을 겪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라는 문구와 딱 맞아떨어진 셈이다.

우리나라 자료를 살펴보면 2012년 만19세 이상에서 치주질환 유병률은 22.7%이다. 연령별로 따지면 ▲20대 2.5% ▲30대 10.8% ▲40대 26.2% ▲50대 34.7% ▲60대 36.4% ▲60대 이상 44.0%로 연령의 증가에 따라 꾸준하게 유병률 수치가 올라간다.

중년남성의 경우 여성보다 높은 유병률을 보이며, 특히 40대부터는 37%의 높은 유병률을 나타내고 있어 각별히 치아 관리에 유의해야 한다.

치주질환 관련 이제는 별로 놀랍지도 않을 소식이 하나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13년 지역별 의료이용 통계연보'에 따르면 의료보장인구 1000명당 주요 질환자 수 집계 결과 치주질환이 316.8명으로 가장 많이 기록했다는 내용이다. 또한 2013년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외래다빈도 상병 급여현황 자료에서 상병순위 1위 급성기관지염 다음으로 치은염 및 치주질환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즉, 가장 흔하게 걸린다는 감기 다음으로 치주질환에 걸린 사람들이 병의원을 많이 찾는다는 분석자료다.

이처럼 기네스북에 기록될 정도로 높은 유병률을 가진 치주질환. 충치나 신경치료처럼 환자에게 주는 임팩트는 없지만 ‘소리 없는 암살자’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위험한 질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