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제9구단 창단 가시화… ‘온라인 게임=폐인 양산’ 이미지 씻기 승부수

PROFILE

■ 1967년 서울 출생
■ 1989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 1989년 아래아한글 공동 개발·한메타자교사 개발
■ 1991년 서울대 대학원 전자공학전공 석사 수료
■ 1991~1996년 현대전자 R&D센터, 아미로 개발팀
■ 1997년 엔씨소프트 창립
■ 2002년 세계경제포럼 선정 아시아 차세대 리더 18인 발탁
■ 2003년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주최 기술경영인상·최고경영자상 수상
■ 2007년 대한민국 문화콘텐츠 해외진출 유공자 대통령표창

‘야구광’ 김택진 대표는 젊은 벤처 파워와 꾸준한 투자 의지로 프로야구단 성공 신화를 쓰겠다는 각오를 내비치고 있다.

김택진(45) 엔씨소프트 대표의 모험이 시작됐다. 김 대표가 경영하고 있는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12월 22일 한국야구위원회(KBO)에 경남 창원시 연고의 프로야구 제9구단을 창단해 2013년 1군 무대에 데뷔하겠다는 창단 의향서를 제출했다.

전혀 의외의 인물이었던 김택진 대표가 제9구단 창단을 선언하자 재계와 스포츠계 전체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신선한 충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젊은 기업가의 프로야구 참여가 처음은 아니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보면 김 대표의 최근 행보와 너무나 비슷한 과정의 사례를 볼 수 있다. 김 대표의 등장을 30년 전 프로야구 태동기 때 일어난 에피소드와 오버랩 시키면 이해가 더 빨라진다.

1981년 삼미-2011년 엔씨소프트, 닮은꼴?

1981년 11월, 말쑥한 차림의 한 청년이 서울 롯데호텔에 등장했다. 그는 한국프로야구 설립 준비위원회 정기회의 겸 구단주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이날 회의는 서울, 부산, 인천, 대구, 광주, 대전 등 6개 지역을 맡을 기업 관계자들과 의견을 조율할 목적으로 열렸다.

하지만 6개 도시 중 인천만 주인이 없었고, 인천을 뺀 5개 구단 체제로 리그를 출범시킬지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었다. 이 청년은 자신이 기꺼이 인천 연고팀을 맡겠다고 말했다. 그 순간 회의장에 정적이 흘렀고, 관계자들의 눈은 모두 청년에게로 쏠렸다.

호기 좋게 야구단 창단을 외친 청년은 바로 당시 나이 31세의 김현철 삼미그룹 회장이었다. 그는 아버지 고 김두식 창업주가 1980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부터 그룹을 맡았다.

김현철 회장이 프로야구에 참여한 이유는 단순했다. 그가 사랑했던 스포츠를 통해 삼미의 인지도를 높이고 싶어서였다. 그는 소문난 스포츠팬이었다. 특히 미국 유학 시절 메이저리그 야구에 심취했다. 그는 야구단의 이름으로 유학 시절 지켜봤던 프로 풋볼 팀명을 응용했는데, 이 팀이 바로 몇 해 전 영화의 소재로도 등장했던 ‘도깨비 팀’ 인천 삼미슈퍼스타즈다.

김 회장의 ‘금지옥엽’이었던 슈퍼스타즈는 통산 4번의 시즌 중 3번이나 꼴찌를 맡을 정도로 약체였다. 지원할 돈이 부족했고, 선수층도 얇았다. 결국 전무후무의 최다 연패(18연패)와 최저 승률(12.5%, 5승 35패) 기록 등 후세에 길이 남을 우스운 기록만 남기고 청보식품으로 매각됐다. 프로야구 최초의 구단 매각 사례였다.

슈퍼스타즈의 말로는 비참했지만 김 회장의 도전은 큰 박수를 받고 있다. 허구연 야구해설위원은 “김현철 회장의 도전이 없었다면 오늘의 프로야구도 없었을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온라인 게임이 갖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를 프로야구를 통해 정화하고 싶다. 한국에서도 IT기업이 스포츠 마케팅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고 싶다.

‘자수성가형 갑부’의 치밀한 창단 도전기

김현철 회장의 30년 전 도전과 최근 김택진 대표의 등장 과정은 매우 비슷하다. 김현철 회장과 김택진 대표 모두 젊은 편이다. 두 CEO 모두 소문난 스포츠 마니아인데다 스포츠를 통한 사회 공헌을 통해 기업 이미지를 개선시키겠다는 의지도 거의 일치한다. 하지만 내부적 요소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2011년의 엔씨소프트는 30년 전 삼미와 비슷하고도 180도 다른 과정을 걷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택진 대표는 IT업계에서 소문난 야구마니아다. 평소에 야구 중계를 즐겨보는데다 지난해 10월 열린 한국시리즈는 인천 문학야구장에서 직접 관전할 정도로 야구 사랑이 깊다.

엔씨소프트의 창단 과정에는 치밀한 준비가 있다. 이미 지난해 봄부터 프로야구 참여를 위한 별도의 준비팀을 직접 꾸리는 등 체계적인 준비 과정을 거쳤다. 여기에 김 대표 본인은 물론 임원들과 함께 KBO 관계자들을 수차례 만나면서 프로야구 참여에 대한 조언을 들어왔다.

실체가 불분명했던 김현철 회장과 삼미그룹의 모습과 달리 김택진 대표와 엔씨소프트의 외형적 모습도 너무나 다르다. 철저히 비밀에 가려졌던 김현철 회장과 달리 김택진 대표는 이미 잘 알려진 ’1조 갑부’다. 서울대 졸업 직후 ‘아래아한글’ 공동 개발과 타자 연습 프로그램 ‘한메타자교사’ 개발에 참여한 것을 뿌리로 삼아 지금은 보유 주식 1조 원에 이르는 거액의 자산가가 됐다.

“야구하는 삼미(三美)가 통조림 만드는 삼미(三味)냐”는 질문이 나올 정도로 삼미의 인지도는 낮았다. 하지만 엔씨소프트는 IT업계에서 소문난 알짜 기업이다. ‘리니지’ ‘아이온’ 등 국내 최고의 인기 온라인게임을 개발해온 중견 게임 개발 업체다. 회사 구성원의 평균 연령대도 30대로 매우 젊다. 재무 구조도 탄탄해 게임 업체에서 손꼽히는 기업이다.

온라인 게임이 갖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를 프로야구를 통해 정화하고 싶다. 한국에서도 IT기업이 스포츠 마케팅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고 싶다.

엔씨소프트의 비전은 매우 좋은 편이지만 게임 유저 외에는 대외 인지도가 아직 낮다는 점이 단점이다. ‘리니지’라는 장수 온라인 게임은 유명하지만 엔씨소프트라는 기업의 존재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드물다고 봐야 한다.

김 대표는 프로야구 참여를 통해 상대적으로 낮은 엔씨소프트의 인지도를 높이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또한 “온라인 게임이 폐인을 양산하고 있다”는 좋지 않은 사회 이미지도 야구를 통해 불식시키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게임 업체가 국내 프로 스포츠에 참여하는 것은 엔씨소프트가 최초다. IT 벤처 업계로 폭을 넓히면 1999년 창단됐다가 경영난으로 매각된 골드뱅크 농구단(현 KT 농구단)에 이어 두 번째다. 엔씨소프트 야구단이 성공적인 경영 궤도에 오를 경우 직접 스포츠 마케팅에 성공한 국내 최초의 IT기업이 된다.

IT 업체의 프로야구 참여가 우리에게는 낯선 일이지만, 해외에서는 결코 낯설지 않다. ‘추추 트레인’ 추신수가 메이저리그 무대를 처음 밟았던 팀인 시애틀 매리너스의 대주주는 일본 게임업체 닌텐도다. 일본 후쿠오카 연고의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재일 한국인 손정의씨가 경영하는 소프트뱅크 소유다. 일본 최고의 인터넷 쇼핑몰 ‘라쿠텐’은 골든이글스 야구단을 성공리에 운영하고 있다.

김택진 대표는 “한국에서도 제2의 호크스·골든이글스가 등장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 주인공이 엔씨소프트 야구단이 될 것이라는 점도 확신하고 있다. 자금력 동원이 최대의 난제가 될 수 있겠지만 창단 여부가 확정되면 연고지 창원지역에 지속적 투자를 감행해 프로야구단 운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겠다는 다부진 각오도 갖고 있다.

김현철 삼미그룹 회장은 차디찬 현실의 벽에 막혀 고배를 마셨다. 1985년 5월 인수대금 60억 원에 슈퍼스타즈 구단을 청보식품에 매각하던 날, 김현철 회장은 아들을 잃은 아버지처럼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과연 김 대표가 갖고 있는 지독한 야구 사랑과 그만의 치밀한 노력, 그리고 젊은 벤처 조직만이 갖고 있는 열정의 DNA가 한데 뭉쳐 30년 전 김현철 회장이 이루지 못한 꿈을 실현할 수 있을지 엔씨소프트 야구단의 향후 행보가 더욱 주목된다.

정백현 기자 jjeom2@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