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재벌가 장녀의 비상식적인 인격 모독 사건이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급속히 전파하면서 세계적인 가십거리가 되었고, 그 장녀의 사회적 신분이 한꺼번에 박탈당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비슷한 사건으로 우유업계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게 인격 모독적인 말투와 함께 자사 제품을 강제로 할당해 판매하다가 논란이 되고 해당 기업의 주가가 폭락한 사건, 한 대기업의 신임 임원이 비행기에서 서비스된 라면 국물의 온도가 어떻고 하면서 스튜어디스에게 폭력을 행사하다가 결국 자신의 직장에서 쫓겨난 사건 등은 소셜네트워크가 발굴해낸 ‘갑’질의 민낯이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드라마 ‘미생’에서도 못된 구매업체 간부가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생인 납품업체 직원에게 고급 룸살롱 접대를 강요하고 납품도 거절하는 등 힘을 과시하며 ‘갑’질하는 장면이 나온다. ‘갑’질하는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자신의 지위나 권위가 상대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는 허세 의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 자신이 가진 우월적 지위를 과시하여 상대를 굴복시키는 쾌감을 느끼고 싶은 천민적 열등의식에서 나온다. 예를 들면 얼마 전 대리운전자에게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너 그 몇 분도 못 기다려?”라고 인신공격적인 반말로 자신이 국회의원임을 과시하고 동행인들의 폭력을 방조하던 얼치기 모 국회의원 같은 경우다. 이런 일들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하고 있다.

‘갑’질은 열등의식에서 나온다

‘갑’질이라 표현했지만 가진 자들 또는 권력층의 민낯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건만 이런저런 정치권 뉴스가 소문과 진상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 광속으로 퍼져나가고 여론은 급속히 냉각되는데도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는 무선 사각지대 속에 기거하는 구시대적 권력층 인사들은 아날로그 수첩에 의존해서 각본을 연출하느라 분주하다는 사실이 실로 안타깝다.

영국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은 권력을 “의도적인 효과가 나타나게 하는 힘”이라고 정의했다. 앨빈 토플러의 <권력 이동>이란 책에선 권력의 속성이 세 가지로 구성된다고 설명한다. 그 세 가지는 무기, 돈 그리고 지식이다. 이런 요소들이 힘의 원천이 되는 원리는 이것들이 소수에 의해 장악되고 있기 때문이다. 토플러는 국가 간의 힘을 비교하기 위해서 전쟁 무기를 거론했지만 개인과 조직의 권력을 표현할 때는 의사결정권을 의미한다고 본다. 일단 이런 요소를 장악하게 되면 철저히 보호되고 접근이 차단되며 이를 소유한 자가 지도자가 되어서 위에서 명령하며 모든 이익을 장악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 세 가지 요소들을 갖추지 못했다면 허세가 된다.

봉건사회의 전형적인 권력은 왕과 귀족이 움켜쥐고 있고, 종교조직에서는 신 또는 성직자가 그런 힘을 가진다. 냉전 사회 체제하에선 군인과 정치가들이 권력을 장악했고 산업사회가 되어선 금융인들과 기업인들이 최고의 권력자가 되었다. 이들이 권력을 휘두르는 가장 큰 배경은 의사결정권이란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 의사결정에 따라서 모든 이권이 좌우된다. 권력자가 위에서 지시하고, 발생한 이익을 권력자가 배분해주는 구조다.

초연결 사회에선 대중이 신 권력이며 그들의 아이디어가 세상을 움직인다.

http://www.rockpapershotgun.com/2012/07/17/power-to-the-people-the-trouble-with-crowd-sourcing/

권력의 속성이 변했다

정보화 사회가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발달하면서 권력의 속성에도 변화가 왔다. 하버드 리뷰 12월호에 게재된 ‘신 권력 이해하기(Understanding “New power”)’란 칼럼에선 비즈니스 모델에서 구(舊) 권력과 신(新) 권력의 속성을 잘 대비시켜 설명해 주고 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구 권력은 자본이 집약된 권위 있는 조직으로 전문성이나 특수성으로 무장하고 독점권을 장악하며 장기간 동안 충성고객으로만 제휴한 요새와 같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 의미로 봐선 토플러가 주장한 권력의 세 가지 요소를 모두 가진 전형적인 권력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신 권력은 자발적으로 구성된 비공식적인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자원을 공유하고 지혜를 공유하는 투명한 힘이라고 설명한다. 대중이 스스로 일을 처리하고 문화를 만들어가는 단기적이고 조건부적인 제휴형태라 대중이 참여하지 않으면 신 권력은 깡통권력이 된다.

신 권력의 바탕은 ‘지식이나 정보가 유통되는 네트워크’다. 매일 쏟아지는 정보가 대중에게 성역 없이 전파된다. 소셜네트워크에 누출된 정보는 마치 문 틈새로 가스가 스며들 듯이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간다. 한번 누출된 정보는 급속히 확산되기 때문에 차단이 불가능하다. 이런 네트워크 속에서 자발적 참여로 형성된 신 권력은 마치 전류같이 흘러다니며 아이디어를 공유한다. 그래서 신 권력은 대중에서 나온다고 설명한다. 힘이란 대중의 생각들이 모여서 만들어지고 대중의 판단이 의사결정권과 같은 위력을 갖는다. 특히, 대중의 의사가 한꺼번에 분출할 때 강력한 힘을 갖는다. 이번 재벌가 땅콩봉지 사건만 하더라도 대중이 재벌가의 사죄 수준을 정하고 직책 박탈 여부를 은연중에 결정했다. 대중의 압력이 힘을 갖는 이유는 대중이 힘을 합쳐 의사결정을 하면 그대로 집행되기 때문이다.

대중의 잠재력이 높아지면 대중은 단지 생각만으로는 욕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생각의 영역을 뛰어넘어 행동으로 표출하게 된다. 그런 사례가 바로 트위터 정보로 소통하며 무바라크 대통령을 몰아낸 이집트의 무혈 혁명이다. 또 지난 가을에 홍콩의 젊은이들이 파이어챗으로 소통하면서 민주주의적인 절차에 의해 총독을 뽑기 위해 홍콩 시내 중심가를 점령하고, 시민 불복종 시위를 벌인 것도 전형적인 신 권력 운동이다. 신 권력은 구 권력이 정해준 질서와 가치를 소화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참여하여 새로운 가치를 생산해내는 창조자가 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신 권력이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는 투명하고 공정한 자아실현이라고 본다.

구 권력과 신 권력이 타협할 수 있는 길

이제 구 권력은 신 권력인 대중과의 타협점을 찾아내야만 할 상황이다. 그렇지 않으면 구 권력과 신 권력이 힘겨루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구 권력과 신 권력의 타협점은 ‘공감’이란 새로운 소통 요소라고 생각된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언론을 통해 대중과 셀카를 찍는 등 권위를 내려놓는 몸짓을 자주 보여준다. 실제로 그는 권위를 벗어던진 착한 대통령으로 인식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어렵고 힘든 이웃과 종교가 함께한다는 대중적 이미지를 구축해 놓았다. 이젠 정치인과 성직자가 높은 연단에서 군림하지 않고 계단 밑의 시민 속에 파묻혀 함께 동등한 위치에서 셀카를 찍으면서 대중의 공감을 얻으려고 노력한다. 대중의 생각을 이끌어 내고 대중의 생각에서 출발한 소박한 정치가 필요하다. 종교도 위에서 구원을 내려주는 종교가 아니고 개인의 문제를 상담하는 깨알 같은 정성이 필요한 시대다. 기업의 소유주도 마찬가지다. 권위를 벗어 던지고 직원들의 아이디어와 꿈을 실현시키는 비즈니스를 만들어 본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기업의 장은 말단 직원들과 셀카를 찍으면서 마음을 공유하는 몸짓이 필요하다.

신 권력은 초연결 네트워크 시대에서 비즈니스의 근간을 이루는 창의적 요소다. 모든 조직이나 기관이 과거의 획일화된 질서로 경제활동을 일으키려는 건 시대적인 착오라고 생각한다. 이젠 상품을 대량으로 생산해 가격경쟁력을 높여서 시장을 지배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신 권력층 소비자는 소셜네트워크에 떠도는 기사에 댓글을 달듯이 상품에 자신만의 표식을 달기를 원한다. 자신의 표식이 생산과정에 참여하는 행위일 수도 있고 자신이 선호하는 맞춤 디자인일 수도 있다. 어떤 형태로든지 자신의 아이디어가 삽입된 상품을 선호한다. 상품의 수명은 짧아졌고 소비자의 마음은 변덕스럽다. 소유 가치보다는 활용 가치나 경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상품에 관심이 높다.

모든 구 권력은 끊임없이 신 권력의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수첩에 적힌 메모로 방어망을 구축하려다간 큰코다칠 수가 있다. 신 권력의 힘은 평소에는 흐물거려도 한꺼번에 분출되게 되면 후쿠시마 쓰나미로 덮칠 수 있다. 이미 우리 사회는 초연결 사회 속에 있다. 달리 표현하면 신 권력 중심 사회다. 이런 저력이 긍정적인 비즈니스 창조의 힘으로 결집될 수도 있고 부정적인 사회혁명의 힘이 될 수도 있다. 아무쪼록 긍정적인 비즈니스 혁신의 기반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모든 구 권력들은 자신을 재편하고 대중과 공감대를 넓혀 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