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타트업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 당연히 일부의 문제겠지만, 몇몇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정부의 지원금만 받고 흉내만 내다가 사라지거나, 스타트업 창업을 일종의 스펙으로 삼아 대기업에 입사하는 도구로 활용한다는 이야기다. 업계를 돌며 이야기를 들어보니 의외로 꽤 오래된 ‘소문’이었다. 당당하게 세상에 출사표를 던진 멋진 스타트업이 절대다수인 상황이지만, 물을 흐리는 기회주의자들도 여럿 보이는 세상이다.

스타트업은 신생기업을 의미하지만, 특정 국가나 생태계의 경제 활성화를 평가하는 척도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는 오롯이 스타트업이 속한 경제의 건전함을 의미하기 마련이다. 도전과 혁신을 무기로 기존경제에 통렬한 충격을 가해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길을 개척하는 스타트업의 존재는,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스타트업이다”는 애플의 일갈을 새삼스럽게 깨우치게 만든다.

중국, 스타트업의 정신이 꿈틀거리다

글로벌 스타트업의 요람은 미국의 실리콘밸리다. 우리에게 ‘실패는 좋다. 끝없이 기회를 준다’는 독특한 패러다임으로 유명한 실리콘밸리는 미국을 넘어 세계를 아우르는 역동적인 스타트업의 고향인 셈이다.

하지만 현재 중국의 분위기는 미국의 실리콘밸리, 아니 그 이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8일 파이낸셜타임즈는 ‘중국 기업가 정신의 굴기’라는 보도를 통해 현지의 활발한 스타트업 열기를 집중 보도했다. 대표적인 곳은 중국 최고의 이공계열 명문대학 칭화대학교의 X-랩이다. 구글의 프로젝트X를 연상시키는 끝없는 사유의 수평선과 마주한 X-랩은 현재 중국 스타트업의 요람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한 상태다. X-랩이 출범한 1년 반동안 약 400개의 스타트업이 탄생했으며, 300곳은 여전히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고, 30개는 대규모 기초 투자금까지 유치한 상태다. 여기에 비즈니스 자체를 강조하는 센터가 여럿 설립되며 현지 스타트업 열기는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물론 칭화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과 다양한 캠퍼스 지원 프로그램도 중국 스타트업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중국 최대 전자상가인 선전도 글로벌 벤처의 다크호스로 부상하는 중이다. 텐센트와 화웨이라는 독보적인 기업들이 자리한 선전은 이미 거대한 축을 중심으로 나름의 생태계를 완벽하게 구축하고 있다. 대규모 소프트웨어 인력이 쏠리고 있으며, 최근에는 벤처캐피탈 자금까지 유입되며 날개를 달았다. 선전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선전의 인구 1000명당 사업체 수는 73.9개로 중국 내 1위다. 속도감있는 아이템 선정과 기발한 창조본능이 선전의 벤처바람을 세계로 풀어내는 중이다.

재미있는 대목은, 선전의 글로벌 벤처‘붐’이 카피로 대표되는 모조품 정신에서 시작했다는 점이다. 경쟁자 입장에서는 기분나쁜 일이며, 법적인 조치를 수반하는 범죄행위지만 최소한 선전에서는 무풍지대다. 실제로 선전에서는 아이템 구상 및 실질적 제품 개발을 일사천리에 끝내고, 비슷한 제품을 카피해 전혀 다른 아이디어를 새롭게 구축하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일종의 화이트 해커문화와 비슷하다.

결론적으로, 중국은 그 어느 때보다 스타트업 열풍에 매료되어 있다는 뜻이다. 문화대혁명 이후 처음으로 대륙 전체가 화로 위 주전자처럼 들끓는 분위기다. 게다가 더 무서운 것은, 이미 성장한 글로벌 기업들이 상생의 생태계 전략으로 스타트업을 적극 지원하는 뉘앙스를 풍긴다는 점이다. 샤오미는 자신들의 성공을 담은 마케팅 책을 시장에 풀었고, 알리바바의 마윈은 ‘하늘아래 어디에서나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지원정책을 펴고 있다.

 

실종된 동력, 스타트업 열풍

우리나라는 닷컴열풍이라는 성장통을 지나 모바일 시대를 관통하며 기업가 정신이 실종되어 버렸다. 소위 도전과 혁신이 사라지고 철밥통을 찾는 시대가 열렸다는 뜻이다. 이견의 차이는 있으나, 50년 경제개발의 중심에서 세계를 상대로 벌였던 승부사적 기질은 완전히 실종되어 버렸다. 보신주의와 안전주의, 소극적인 삶의 형태는 우리를 울타리속에 가둬버렸다.

당장 날것의 데이터로 증명된다. 1세대 벤처‘붐’ 이후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오는 벤처기업은 손에 꼽을 지경이며, 그나마 대기업 문턱에서 주저앉은 기업이 대부분이다. 스타트업이라는 미명으로 탄생한 기업이 진짜 스타트업으로 분류되는 것이 10%에 머문다는 점에서, 이미 우리의 기업가 정신은 실종됐다고 보는 것이 정답이다. 참고로 한국무역협회가 1일 발표한 '대학생 창업 추이'에 따르면 대학생 창업자는 지난해 7월 말 현재 407명에 달했다. 이는 전체 졸업생 약 56만 명 대비해 0.0007% 수준이다. 아예 창업을 생각하지 않은 대학생은 92%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마저도 생계형 창업이 대부분이다. 그런 이유로, 도전과 혁신의 의미로 설립되는 스타트업의 비율은 미비하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중국은 대학생의 창업 비율이 2008년 1%대에서 2012년 2%대로 높아졌다.

 

아프니까 청춘은 아니다. 다만..

물론 건정한 스타트업 부재의 책임을 오로지 젊은 세대에만 물을 수 없다. 국내 글로벌 기업들은 창업 생태계를 지원하기는커녕 이를 말살시켜 약탈하는데 혈안이며, 정부의 지원도 최근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주먹구구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사업보국’이나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안되면 되게 하라’ 정신만 무조건 강요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경제 활성화 측면에서, 현 정부가 강조하는 창조경제의 중요한 요소임은 분명하다. 반드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막대한 창업비용 및 절차의 문제 등 소소한 유리천장을 가려내고 진짜 스타트업을 위한 긍정적 환경구축이 절실해지는 순간이다. 우리가 중국에 뒤지는 것은 기술이 아니다. 기업가 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