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디젤잠수함 '코치노함'

미 해군의 첩보수집 전문가 해리스 오스틴은 북아일랜드 런던 델리 주에 있는 영국 해군기지로 들어가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고철 덩어리 같은 잠수함을 본 순간 한숨을 쉬었다. “이게 ‘코치노’함(USS Cochino· SS-345)인가? 이런 고철 덩어리를 타고 정보 수집을 하라니! 깡통보다 더 심하군.”

오스틴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 해군의 통신을 감청해 암호를 해독하던 미 해군 보안대 소속이었다. 그는 특수임무 수행을 위해 미 해군 참모총장으로부터 직접 명령을 받고 미국에서 영국까지 날아왔다. 유럽주재 미 해군사령부에서 간단한 브리핑을 받은 그는 ‘도깨비’(Spook)라고 불리는 최신 스파이의 한 사람이었다. ‘도깨비’는 소련 연방 고위급 인사들의 특급 비밀을 감청하거나 도청하는 일을 주로 했으며, 수많은 공중파 중 정보가치가 높은 전파를 분류할 수 있는 특별훈련을 받았다. 오스틴은 원래 순양함에 근무하고 있었으나 좀 더 어렵고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고 싶어 잠수함 승조원으로 근무 장소를 바꾸었다.

코치노함의 함장은 베니테즈 중령이었다. 그는 32살에 불과했지만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군함의 수차례 폭뢰공격에도 살아남은, 전투 경험이 풍부한 장교였다. 그가 1949년 6월 말부터 스파이 임무를 수행하는 잠수함 함장임무를 수행하게 된 것이다.

코치노함은 전쟁 중에 터득한 경험을 토대로 잠수함의 성능을 몇 가지 개선했으며 개선된 장비에 대해 해상 시운전을 하려고 준비하던 시기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잠수함은 주로 수상 항해를 하다가 적함을 공격하거나 적으로부터 공격을 피할 때만 잠항을 했고 현재와 같이 깊은 심도의 잠항은 불가능해 얕은 심도에서만 작전했다. 이에 따라 코치노함은 장기간 물속에서 오래 견딜 수 있도록 스노클 마스트를 장착했으며, 스노클 시 엔진 폐기물을 물 밑으로 배출하도록 장치를 개선했으나 해상 시운전은 물론 승조원들이 장비를 잘 다룰 수 있도록 하는 숙달훈련은 미처 하지 못한 상태였다.

빨강 머리 오스틴이 작전명령을 함장에게 건네줬다. 젊은 함장은 매우 조심스럽게 작전명령을 읽어 내려갔다. 베니테즈 함장은 당연히 장비 시운전을 하고 승조원 숙달 훈련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스틴이 준 작전명령서를 보면 이를 허락할 여유가 없었다. 그것은 여태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첩보수집 작전이었다. 그것도 소련 북해함대가 주둔해 있는 혹한의 바렌츠 해에서 이뤄지는 것이었다.

베니테즈 함장과 승조원들은 주로 태평양에서 일본군과 마주치고 탐색해 공격하고 회피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평시이지만 우군의 지원이 전혀 없는 가운데 새로운 적 소련의 영해 근처에서 비밀 정보를 감청하는 위험한 임무를 지시받았다. 베니테즈 함장은 잠수함에 첩보수집 임무를 부여하는 데 대해 가치를 떨어뜨리는 작전으로 평가 절하하면서도 지시받은 스파이 임무를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전장이 달라져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게 된 것이다.

이제 미국은 일본이 아닌 전혀 새로운 적과 마주쳐야 했다. 미국인들은 한때 그들의 원자탄으로 피폭된 일본인들을 얼굴 없는 괴물로 여겼고 승리감에 도취했지만 이제는 동맹국에서 적국으로 변해버린 소련이 핵폭탄을 제조할 수 있다는 데 대해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소련이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는 데 대해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데 모두가 동의하고 있었다. 중국 공산주의자는 중국 본토에서 장개석을 몰아냈고 체코슬로바키아 공산주의자들은 정권을 탈취했다. 소련은 베를린 장벽을 설치하고 윈스턴 처칠은 동유럽에 철의 장막 시대가 시작됐다고 선언했다.

당시 소련의 잠수함은 대부분 구식의 소형 연안방어용이었다. 그러나 2차 대전 후 소련은 영국·미국과 함께 그때까지 가장 앞선 기술인 소나와 스노클을 탑재한 독일의 U-보트를 전리품으로 나눠 가질 수 있었다. 소련은 이러한 기술을 바탕으로 성능이 뛰어난 잠수함을 만들 수 있었으므로 미국의 모든 지휘관은 성능이 향상된 소련 잠수함과 조우했을 때 대응할 수 있도록 훈련하고 숙달해야 했다.

다행히 미국은 수중에서 소련보다 한 수 빠른 행보를 준비 중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무명의 잠수함 출신 기관 장교인 리코버는 2차 대전 후 다시 불붙기 시작한 수중전에서 스노클을 하지 않고도 장기간 수중 항해가 가능한 원자력 잠수함을 개발 중이었다. ‘케오작전(Operation Kayo)’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새로운 계획은 코치노함과 같은 모든 디젤 잠수함이 다가올 미래 전에서는 종전처럼 스노클을 하다가 적에게 발각될 염려가 전혀 없는 잠수함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한편 미국의 고위 정보장교들은 원자력 잠수함 건조보다는 독일의 V-1 로켓, 함상 발진 무인 소형 비행기 그리고 최초의 초음속 V-2 로켓을 장착할 수 있는 독일 잠수함의 기술을 전수받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연합국에 공포의 대상이었던 독일 기술력은 순항 미사일, 탄도 미사일, 자체 추진 로켓엔진 부착 폭탄을 개발하는 데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이러한 기술을 모방해서 미국은 이미 원시적이긴 하지만 최초로 잠수함 발사 가능한 미사일 실험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소련은 이미 보병용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었고 육상과 무르만스크 해역의 잠수함에서 미사일 발사시험을 진행 중이라는 첩보가 접수됐다. 이 모든 것은 추측에 불과했으나 이러한 정보는 2차 세계대전 중 소련과 함께 일했던 영국 해군 정보부로부터 약간씩 흘러나오고 있어 다소 신빙성이 있었다. 또한 미국 알래스카와 영국에 있는 통신감청 기지에서는 소련 해군함정과 육상기지 간 교신 내용을 수집하고 있었다.

미국 잠수함의 바렌츠해 투입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뤄진 것이다. 사진은 초창기 첩보수집 작전에 투입된 디젤 잠수함 코치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