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에 ‘하두리’를 검색해보면 결과를 바로 얻을 수 없다. ‘성인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하두리는 언제부턴가 음란물을 불러오는 검색어가 됐다. 시간이 흘러 추억의 대상이 변질된 것이다. 하두리는 한국 최초의 화상채팅 서비스다. 웹캠을 통해 동영상이나 사진을 촬영할 수 있게 해주는 프로그램 명칭이기도 하다.

하두리는 특히, 셀프카메라(셀카)를 찍을 때 많이 쓰였다. 서기 2000년이 막 넘었을 때 너도나도 하두리로 셀카를 찍던 시절이 있었다. 더 예쁘고 더 멋지게 나오려고 온갖 수를 썼다. 턱 바짝 당기고, 눈 동그랗게 뜨고, 모니터 화면에 하얀색 창을 띄워 조명으로 삼고, 이른바 얼짱 각도로 자기 모습을 담았다. 그래도 부족하면 포토샵을 연마에 디지털 성형을 시도했다. 이때 얼짱 문화도 태동했다.

그로부터 14년이 흐른 지금은 더 이상 하두리를 이용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다. 반면, 셀카는 지금도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다. 이제 셀카는 일상 습관이나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스마트 기기를 통해 어디서든 쉽게 셀카를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유한다. 셀카봉과 같은 도구가 인기를 끌고 있으며 스마트폰 카메라 성능은 계속 향상되고 있다. 어쩌면 셀카도 계속 진화하는 중이다.

셀카는 장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세계 최초의 셀카는 무엇일까? 최근 여러 언론이 105년 전 셀카라며 한 사진을 공개하고 나섰다. 네티즌은 셀카에 이렇게 오랜 역사가 있었냐며 새삼 놀라워했다. 그러나 이 셀카가 ‘최초의 셀카’는 아니다. 공식적으로 누가 정한 것은 아니지만 크게 두 작품이 셀카의 시초로 여겨진다.

하나는 스웨덴의 사진작가인 오스카 젤렌더의 셀카다. 1850년에 찍은 이 사진은 최근 경매에서 7만파운드(약 1억1794만원)에 낙찰된 바 있다. 한편, 미국의 사진작가 로버트 고넬료가 찍은 사진은 이보다 10여년 앞선 1839년에 찍은 것이다. 자기 집 뒷마당에서 촬영한 것으로 알려진 이 사진이 최초의 셀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지만, 현대적 의미의 셀카는 젤렌더의 것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셀카 앱으로 디지털 성형해볼까?

국내에서 셀카는 인터넷을 타고 발전했다. 사람들은 하두리를 이용해 셀카를 찍어 인터넷 커뮤니티에 등록하고 메신저를 통해 공유했다. 다모임, 버디버디, 세이클럽 등에서 셀카가 오간 것이다. 그렇게 얼짱으로 등극해 연예인으로 데뷔하는 사람까지 생겨났다.

이후 촘촘한 SNS 환경이 구축되자 셀카 문화는 더욱 탄력받게 됐다. 현재 인터넷에는 하루 평균 3억5000만장의 셀카가 올라오는 것으로 추산된다. 셀카를 찍어 SNS에 게재한 사진을 의미하는 영단어 셀피(Selfie)라는 단어의 사용량은 직전 해보다 1만7000% 증가했다. 셀카가 전 세계의 트렌드로 등극한 것이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소장은 “스마트폰 이전의 휴대전화에도 카메라 기능이 있었지만 셀카가 유행하고 확산된 배경은 SNS와의 결합이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네트워크에서 공유되기 시작하면서 차원이 다른 셀카 시대가 열리게 됐다”고 분석한 바 있다.

셀카의 인기가 이어지면서 이미지 보정 기술도 발전했다. 특히, 셀카 애플리케이션(앱)이 다수 등장했다. 애플은 앱스토어에 ‘셀카’ 섹션을 따로 만들었을 정도다. 뷰티 커뮤니티 ‘파우더룸 플러스’ 운영진은 올해 초 회원들을 대상으로 사진 앱 최강자를 가리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총 1431명이 참여했는데 여러 후보 중 ‘싸이메라’(21%)가 최고로 꼽혔다. 2위는 캔디카메라(20%), 3위는 포토원더(18%)가 차지했다.

이 앱들은 모두 다양한 보정 기능을 탑재했다. 필터 기능을 통해 사진을 느낌 있게 꾸며주며, 얼굴을 갸름하게 해주고, 눈 크기를 키울 수 있으며, 여드름도 없애준다. 더불어 몸매 보정까지 지원하는 추세다. 앱 개발자들은 더욱 자연스러운 보정 효과를 지원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폰으로 찰칵, 디카로 찰칵

휴대폰 카메라 기능도 셀카족을 만족 시키기 위해 진화하고 있다. 보통 셀카를 찍기 위해서는 후면카메라가 아니라 전면카메라가 사용된다. 휴대폰 제조사들이 전면카메라 성능에 신경을 쓰고 있는 이유다.

특히, 중국의 제조사가 전면카메라 기능을 향상 시키기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중국의 많은 소비자가 셀카 기능을 휴대폰 선택의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130만 화소나 200만 화소의 전면카메라가 일반적이었지만, 현재 800만 화소를 탑재한 휴대폰까지 나온 상황이다. 이는 샤오미 MI4, 화웨이 어센드 P7 등에 탑재됐다. 오포(OPPO)는 후면 카메라를 앞뒤로 회전시킬 수 있는 셀카에 최적화된 스마트폰을 내놓기도 했다.

반면, 삼성전자의 프리미엄 스마트폰 갤럭시 노트4는 전면카메라가 370만 화소다. 10여명이 단체로 셀카를 찍을 수 있도록 ‘와이드 셀피’ 기능을 지원하는 등 셀카 기능에도 신경 썼지만, 최신 중국 스마트폰에 비교해 ‘370만 화소’라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 출처=오포

현재 삼성전자는 내년 출시할 스마트폰에 800만 화소의 전면카메라를 적용하려고 검토 중이다. 이르면 내년 3월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공개할 것으로 보이는 갤럭시S6부터 적용될 수도 있다. 출시가 임박한 삼성전자의 새 중저가폰 라인업 갤럭시A 시리즈에는 500만 화소의 전면카메라가 탑재된다.

분명한 것은 스마트폰의 셀카 기능이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뷰티 기능이 기본으로 탑재되고 있으며, 팔을 힘껏 뻗지 않아도 넓은 화면을 포착할 수 있도록 광각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아울러 소니의 경우 엑스페리아Z3 감광속도(ISO) 감도를 최대 1만2800까지 설정할 수 있도록 만들어 어두운 환경에서도 수준 높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게 했다.

디지털카메라(디카) 업계도 셀카족을 붙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존 카메라로 셀카를 찍을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불편하다. 대부분 디카가 스마트폰보다 무겁고 액정으로 본인의 모습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디카도 변신하고 있다. 회전식 디스플레이를 탑재하고, 뷰티 기능을 지원하고, 본체 크기를 줄이고 있다. 모두 셀카족을 의식한 변화다.

국내 출시된 카시오의 디지털카메라 TR시리즈는 대표적인 ‘셀카 디카’다. 이 카메라는 360도 회전이 가능한 접이식 프레임과 270도 회전이 되는 LCD를 탑재했다. 12단계로 조절이 가능한 메이크업 모드에 미백효과가 있어 생기 넘치는 표정과 얼굴빛을 연출할 수 있으며, 초광각렌즈로 단체 셀카도 쉽게 촬영할 수 있다. 이 모델은 수년 동안 중국, 대만, 일본 등지에서 ‘셀카족’의 선택을 받고 있다.

 

궁극의 셀카를 찾아서

타임은 최근 ‘2014 최고 발명품’ 25가지를 발표했다. 그 목록에 친숙한 이름 ‘셀카봉’이 올랐다. 올해 셀카봉 열풍은 뜨거웠다. 흔히 셀카봉이라고 부르는 모노포드는 스마트폰에 장착해 셀프카메라를 찍을 수 있는 기구다. 일반적인 셀카봉은 타이머를 이용해 셀카를 찍지만 블루투스 셀카봉은 손잡이에 달린 스위치로 카메라를 작동할 수 있다. 오승환 경성대 사진학과 교수는 “셀카봉은 신체의 확장이다”라고 말했다.

셀카봉은 1983년 일본인 우에다 히로시와 미마 유지로가 처음 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4년 일본에서 기술을 공개했고 1985년 미국에서만 특허를 등록했다. 특허권을 주장할 수 있는 기간(20년)이 끝나 이제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특허청에 따르면 셀카봉과 관련해 국내 특허가 처음 출원된 것은 2011년이다. 이후 매년 출원 건수가 1~2건에 불과했지만 올해 들어서는 8건으로 늘어났다.

지난 여름휴가 기간인 7~8월 소셜커머스업체 쿠팡에서 팔린 셀카봉은 2만5000여개였다. 전년 동기 대비 무려 58배 증가한 수치다. 외국인 관광 전문 업체인 코스모진여행사가 지난 10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 가을 단풍 구경 시 가장 이색적으로 느껴진 것은 무엇인가요?’라고 물으니 48%가 ‘셀카봉 열풍‘이라 답했다.

지난달에는 정부 차원에서 셀카봉을 단속할 것이라고 발표해 네티즌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블루투스가 제대로 인증되지 않은 중국산 제품들이 국내로 대량 반입되어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미인증 셀카봉이 주변기기에 장애를 주거나 기기 자체의 오작동·성능저하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아직 블루투스 셀카봉이 어떤 문제를 초래하는지 검증도 안 된 상황에서 전자파 인증에 드는 수백만원의 비용을 영세 판매·수입업자에게 부담시켜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한 외신은 우리 정부의 단속 방침을 별난 뉴스 코너에서 소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셀카의 진화는 계속됐다. 최근에는 드론이 ‘궁극의 셀카 장비’로 주목받았다. 날아다니는 무인기인 드론은 통상 카메라를 탑재하는 데 이를 이용해 셀카를 촬영하는 것이다. 아이디어 소셜펀딩 사이트 킥스타터에 올라온 ‘자노’, 인텔의 지원을 받고 개발 중인 ‘닉시’ 등은 아예 ‘셀카드론’을 표방한 제품이다. 드론이 상용화돼 셀카에 응용된다면 셀카보다 더 극적인 ‘신체의 확장’이 이뤄지게 될 것이다.

얼마 전에는 심지어 3D 프린터로 셀카를 찍는 기술이 공개돼 화제를 모았다. 영국의 유통전문 기업 라이먼(Ryman)이 디자인한 세계 최초 ‘셀카 3D 프린팅 디바이스’가 그 주인공이다. 라이먼이 소개한 셀카 3D 프린팅 서비스의 원리는 다음과 같다. 먼저 사용자가 스스로 스마트폰과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휴대용 적외선 스캔장치를 이용해 원하는 포즈를 취한 뒤, ‘셀카’를 촬영한다.

이 셀카 정보를 ‘3D 프린팅 디바이스’ 프로그램으로 보내면, 자체적으로 고객의 머리부터 어깨까지 이르는 정보를 분석한 뒤 적절한 형태로 변환해 다시 3D 입체 형상으로 만들어낸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3D 프린팅 완성까지 총 10시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셀카에 대한 욕구가 증가하면서 셀카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셀카 문화는 진화하고 있다. <라이프 트렌드 2015>를 쓴 트렌드 분석가 김용섭은 “누구나 자신을 남에게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 과시하고자 하는 욕구, 남에게 주목받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 셀카는 그런 욕구를 채워줄 방법 가운데 하나다”라고 분석했다. 셀카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와 맞닿아 있다. 그러므로 셀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셀카 이모저모>

◇오바마 셀카 사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다름 아닌 셀카 때문에 파문을 일으켰다. 지난 2013년 넬슨 만델라 추도식에서 그는 옆자리에 있던 헬레 토르닝 슈미트 덴마크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함께 활짝 웃으며 셀카를 찍었다.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다지만 어떻게 이런 자리에서 웃으며 셀카를 찍을 수 있느냐는 지적이 많았다.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셀카

여기는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브리지. 누군가 자살을 시도하고 있으며 구조대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젊은 여성은 이를 배경으로 기념 셀카를 찍었다. 그리고 근처에서 지켜보던 한 사진기자는 이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사진기자가 찍은 사진은 뉴욕포스트 1면에 실렸지만, 사진 속 주인공은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셀카’를 찍었다는 비난을 피할 도리가 없었다.

◇극한의 셀카

SNS에서 ‘극한의 셀카’가 인기다. 이는 절벽이나 고층 빌딩 등 아찔한 상황에서 셀카를 찍는 것이다. 때로는 전투기 조종석이나 스카이다이빙을 하며 찍은 셀카가 SNS로 공유된다. 지난 2013년에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우주비행사 마이크 홉킨스(Mike Hopkins)가 국제 우주정거장을 수리하는 우주유영 도중 셀카를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리고 그는 ‘셀카 종결자’ 자리에 등극했다.

◇셀카 사망사고

셀카를 찍다 사망한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 6월 미국의 한 여성은 고속도로에서 운전 도중 셀카를 찍다가 트럭을 들이받는 사고로 숨졌다. 7월에 멕시코에서는 한 남성이 장전된 줄도 모르고 권총 방아쇠를 당기는 셀카를 찍다가 사망했다. 8월에는 폴란드 부부가 포르투갈을 여행하며 벼랑 끝에서 셀카를 찍다가 두 자녀를 두고 추락사했다. 또 러시아의 한 소녀는 철교 위에서 셀카를 찍으려다 감전사했다.

◇셀카는 정신질환

셀카를 많이 찍는 것은 일종의 정신질환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는 장난스러운 연구가 아니다. 미국정신의학협회(APA)는 최근 시카고에서 열린 연례 회의에서 이 내용을 공식 발표했다. 앞으로는 셀카 때문에 병원 갈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