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 부사장 논란에 휘말린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과문을 발표하고 부사장직에서 사퇴했으나 청와대가 대한항공의 숙원사업인 경복궁 옆 관광호텔 설립을 취소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언론보도가 나왔으며, 대한항공 홍보영상에 비춰진 ‘봉지 땅콩’의 존재가 포착되는가 하면 땅콩항공이라는 조롱도 연이어 흘러나온다. 일각에서는 일련의 사태들이 정윤회 씨 논란을 덮기 위한 정부의 술수라는 황당한 음모론까지 흘러나오는 분위기다. 승부수로 사표까지 제출했으나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특히 다수의 네티즌들이 조현아 부사장의 행동을 지적하며 “대한항공이라는 사명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목에 이목이 쏠린다. 이러한 주장이 나오는 배경과, 비슷한 논란에 휘말린 다국적 기업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민족주의, 즉 내셔널리즘(nationalism)에 대한 고찰과 더불어 글로벌 IT기업의 미래행보도 윤곽이 드러난다.

조현아 부사장 논란에서 네티즌들이 “대한항공의 사명을 땅콩항공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지점은, 사실 강력한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한다. 월드컵이 벌어지면 전 국민이 “대한민국”을 외치는 것처럼, 외세의 침략과 어려운 산업화 과정을 겪어온 우리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지독한 순혈주의와 연결된 극단적 사고를 내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양날의 칼이지만, 여기에 대한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사안을 ‘영리활동’에 좁혀보자.

지금은 과거의 영광이지만, 한때 815 콜라가 민족주의 마케팅을 타고 시장 점유율을 크게 늘렸던 것은 새삼 놀라운 일도 아니다. 어설픈 접근방식은 반작용을 부르지만, 영리활동과 민족주의가 절묘하게, 정확히 말하자면 티 안나게 만날 수 만 있다면 이는 기업 입장에서 소위 ‘잭팟’이라고 볼 수있다.

여기서 가구공룡 이케아를 되돌아 보자.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 및 괴상한 임금체계, 일본해 표기 지도로 논란의 중심에 섰으나 해외에서는 약간 다른 이유로 논란의 중심에 서는 곳이 바로 이케아다. 그것도 유럽 및 미국에서는 아주 치를 떠는 사안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바로 ‘나치’다.

2011년 8월 25일 영국의 BBC는 이케아의 창업주 잉바르 캄프라드가 젊은시절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에도 스웨덴 나치단체에 몸을 담고 새로운 단원을 모집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폭로했다. 스웨덴 사회주의자동맹(SUU)라는 극우 파시스트 단체의 단원 모집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는 구체적인 증언도 나왔다. 캄프라드는 17세에 이케아를 창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BBC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그는 이케아를 창업할 당시부터 나치주의자였던 셈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일반적인 기업활동에 있어 이케아는 논란의 중심에 섰다. 1989년 10월, 100년 전통의 회계법인이 만나 탄생한 세계적인 국제 회계법인인 언스트앤영 보고서에 따르면 이케아는 1960년과 1980년 사이 동독 정치범에게 강제노동을 시키고 제3세계 아동을 착취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 스웨덴의 높은 세금을 내기 싫어 본사를 네덜란드로 옮기고 분산된 관련 재단들이 지주회사 역할을 맡는 등 조세회피를 하고 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그런 이유로 나치의 점령에 반발하며 총칼을 들었던 스웨덴 국민 중 일부는 지금도 이케아에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다시 민족주의와 영리활동으로 돌아와 보면, 왜 여기서 이케아를 이야기하고 있는지 윤곽을 잡을 수 있다. 이케아만큼 스웨덴의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기업이 없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케아만큼 자국의 이미지를 상품에 절묘하게 이식하는 기업'도 드물다. 자국에는 민족주의를, 외국에는 동유럽에 대한 환상을 일으키는 정신적 작용이 가능한 일석이조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케아는 매장 외부를 파란색과 노란색으로 칠하며, 로고는 반드시 노란색으로 강조한다. 파란색과 노란색은 스웨덴 국기의 색이다. 실제로 스웨덴 국기는 파란색 바탕에 노란색 십자가가 그려져 있다. 외관을 파란색, 로고를 노란색으로 그린 이케아 매장 스타일과 동일하다. 18일 오픈예정인 광명점도 마찬가지다

▲ 오픈예정인 이케아 광명점. 사진=허은선 기자

대한항공 사명 이야기를 하자면, 결국 이케아와 비슷한 논란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케아의 창업주가 나치논란에 빠졌을 때 민족주의를 강조한 이케아에 대한 반발이 극에 달했던 만큼, ‘대한’이라는 상호와 ‘태극마크’를 쓰는 대한항공의 부사장이 잘못을 저지르자 가해지는 비판도 몇 배나 증폭되어 버렸다.(물론 가해지는 비판이 모두 '대한'이라는 이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이는 받아야 할 비판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민족주의를 대표해 ‘버린’ 대한항공의 숙명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정확히는 감당해야 하는 무게다. ‘브랜드’가 주는 장점과 단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명을 바꿔라!”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창피하다!”는 전제가 숨어있다.

이러한 문제는 IT업계에서도 숙명으로 받아들여진다. 기술의 발전으로 강력한 글로벌 환경이 조성되고 있지만 민족주의를 기반에 둔 시장의 반응은 때에 따라 요동을 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소송도 비슷하다. 소송 정국에서 삼성전자가 유리해지면 국민들은 “그래도 삼성전자가...”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상황에서 민족주의를 벗어난 행동도 많아졌다는 점이다. 이제는 “차라리 애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물론 이도 민족주의다. 우리편이라 생각하고, 우리의 것이라고 생각한 기업이 승승장구하면 더욱 박수를 치고 싶지만, 만약 우리편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가차없이 등을 돌려 버리는 행위. 이 역시 우리의 관점에서 기업을 판단한다는 점에서 영리활동의 민족주의 2.0 버전으로 부를 수 있다.

국가의 경계가 사라지고 글로벌화를 빠르게 촉진시키는 IT기업 입장에서, 민족주의는 더욱 세심하게 다뤄져야 한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유리구슬 던지기 놀이다. 민족주의라는 양날의 칼을 쥐고 경계를 넘어야 하는 IT기업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