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작품과 배우를 뽑는 아카데미 시상식 전날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최악의 작품 및 배우를 뽑는 골든라즈베리시상식(래지상)이 열린다. 웃자고 열리는 시상식의 성격이 강하지만, 의외로 래지상에 쏠리는 관심은 높은 편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취재하는 언론 대부분이 누가 래지상을 받았는지 촉각을 곤두세우며, 실제 상을 받는 배우가 당당하게(?) 상을 받으러 시상식 현장에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최악'과 '래지상'은 동급이라는 점이다.

만약 올해 국내 법률 분야 래지상을 뽑는다면 그 주인공은 누구일까?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과 도서정가제가 유력한 수상 후보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정부의 과도한 시장진입이 얼마나 엄청난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욱 가슴이 아픈 것은, 두가지 법 모두 그 취지는 정말 훌륭하다는 점에 있다. 유통구조 개선이라는 '의도'는 훌륭하나 방법에 있어 아마추어리즘이 뚝뚝 묻어나기 때문이다. 정부의 핵심에 포진해 정책을 결정하고 추진하는 분들이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꼭 이렇게 접근해야 했을까?

하지만 마냥 슬퍼할 필요는 없다. '높은 자리에 계신 분'들이 말하시길, 단통법은 점점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고 도서정가제도 조금씩 자리를 잡고 있지 않은가? 우리같은 우민(愚民)은 마냥 따르고 기다리며 인내할 수 밖에. 의도자체는 훌륭한 법이니 거기에 일말의 기대를 걸어도 좋다. 게다가 희소식도 있다. 단통법과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며 지금까지 예상하지 못했던 긍정적인 시장 활성화 효과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다. 기분나쁘게.

단통법, 그 훌륭한 시장 안착의 효과
단통법이 시행되며 호된 신고식을 치른 통신업계는 최근 몇 가지 화두를 발판으로 삼아 재기를 꿈꾸고 있다. 사물인터넷, 5G 등 통신사 입장에서는 불리하다고 여겨지는 다양한 시대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한편, 무엇보다 알뜰폰 시장이 급부상하고 있다는 점이 커다란 성과다.

실제로 지난해 248만명 수준이던 알뜰폰 가입자 숫자는 올해 연말이면 2배에 가까운 465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저렴한 요금제 출시에 우체국 알뜰폰 판매전략의 확대, 미디어로그를 필두로 통신3사 모두 알뜰폰 시장에 뛰어든 것이 결정적이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단통법이 화룡정점을 찍었다. 스마트폰 보조금 상한제의 여파로 전반적인 스마트폰 가격이 상승하자 많은 사람들이 알뜰폰으로 고개를 돌렸기 때문이다.

▲ 이미화 기자

알뜰폰 가입자 증가는 가계통신비 인하의 측면에서 고무적이다. 실제로 알뜰폰에 가입한 사람들의 가계통신비 인하요과 총량은 2012년 2958억 원, 2013년 5760억 원, 2014년 하반기 누적 기준으로 6004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많은 사람들이 알뜰폰에 가입할수록 국민 가계통신비는 조금씩 줄어들어 궁극적으로 가계경제 활성화에 커다란 도움이 될 전망이다. 단통법이 아주 장한 일을 해냈다.

가계통신비 인하는 박근혜 정부의 대선공약 중 하나기도 하다. 지키지 못하는 헛공약이 남발하는 시대, 그나마 단통법으로 가계통신비 인하라는 공약이라도 확실히 잡아간다는 점에서, '어쩌면 공약은 잘 지켜질 수 있다?'는 인식을 남겼다. 0%보다는 '어쩌면?'이라는 각인효과가 선명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현재 스마트폰 업계는 바닥을 치고 다시 활기에 차는 분위기다. 실제로 지난달 번호이동자는 10월 대비 47.5% 증가한 54만3044명으로 집계되어 단통법 시행 이전인 지난 9월 수준으로 돌아갔다. 따지고 보면 단통법이 시장에 안착하며 알뜰폰 부흥이라는 긍정적 파생효과를 촉발시키는 한편, 원래의 의도를 잡아간다고 해석될 여지도 있다.

물론, 부수적으로는 단통법 시행으로 촉발된 아이폰6같은 '대란'의 발생으로 심야시간 택시를 타고 사람들이 이동했기에 택시업계에도 도움이 되었으며, 이를 취재한 언론은 콘텐츠를 확보했으니 남는 장사를 했다. 여기에 '폰팔이'로 비하되던 일부 판매점들이 문제로 부상한 가운데 단통법이 판매점 숫자를 적절하게 줄여주어 남의 고통을 희열로 받아들이는 일부 국민의 정신건강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단통법의 여파로 국산 프리미엄 스마트폰의 강력한 대항마로 저가의 중국산 스마트폰이 부상하며 알뜰폰에 이어 통신사에 정식 입점하기도 했으니,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선택권도 대폭 강화됐다.

▲ 모 온라인 서점 책 가격표. 카드할인이 선명히 적혀있다. 출처=스크린샷

도서정가제, 카드사업 부흥의 기수
제2의 단통법으로 불리던 도서정가제도 의외의 역할을 수행했다. 우선 도서정가제 직전 온오프라인 서점은 때 아닌 천고마비의 시즌을 맞아 대호황을 이루었다. 폭탄세일이 남발되며 온라인 서점 홈페이지가 마비되기도 했으니 말 다했다. 도서정가제의 취지 중 하나가 책을 상품이 아닌, 정당한 가격을 제공하고 구입하는 문화재원의 하나로 인식되는 것을 유도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다소 씁쓸하지만, 일단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건 패스하자. 중요한 것은, 도서정가제의 도입으로 전국민이 책을 사기위해 서점에 몰렸으니 국민의 지적수준 향상과 추후 폐지줍는 어르신의 일자리 창출에도 상당한 공헌을 했다는 점이다.

도서정가제 이후에도 긍정적인 파급효과는 많다. 우선 오프라인 서점의 활성화다. 도서정가제가 실시되면 할인율이 모두 같아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굳이 책을 인터넷으로 살 필요가 사라지며, 이에 힘입어 오프라인 서점이 반사이익을 얻었기 때문이다.

물론 갑작스러운 매출증대 효과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오프라인 서점이 이득을 얻은 것은 분명하다. 이런 분위기가 그대로 중소 서점에도 이어지길 바라는 것이 모두의 바램이지만, 일단 이것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패스.

그렇다고 온라인 서점이 괴멸적인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니다. 예스24에 따르면 11월 21일부터 24일까지 4일 간 판매권수와 매출을 비교하면 각각 전년 동기 –9.9%, -1.2% 하락했으며, 전월동기에 비해서는 –27.2%, -18.7% 떨어졌다. 다만 판매권수에 있어 전월동기가 더 많이 줄었으나 매출은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이 정도면 선방이다.

하지만 도서정가제의 가장 큰 공헌은 카드사업 활성화다. 가뜩이나 핀테크 시대를 맞아 새로운 변화의 기로에 선 카드사들이 실적은 좋아도 미래에 대한 걱정에 충만한 시점에서, 도서정가제는 카드사와의 협업으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도서정가제로 15% 이상의 할인율은 불가능하지만, 특정카드와의 제휴로 15% 이상의 할인율을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모 통신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온라인 서점의 경우 아예 노골적으로 제휴할인을 추진하고 있다.

결국 카드사와 통신사 등 '할인카드'라는 무기를 가진 곳이 적절하게 도서정가제 정국에 뛰어들어 점유율을 확대하는 한편, 외연확장에 나서고 있다는 해석이다. 물론 온라인 서점이 얻는 반사이익도 상당하다.

의도를 살려야
단통법과 도서정가제의 취지는 훌륭하다. 그리고 이 제도들이 시장에 서서히 안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마 정교한 '핸들링'과 적절한 대책만 마련되면 무리없이 긍정적인 효과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이들로 인해 현재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사실상 '블랙 코미디'에 가깝다. 꼭 이러한 과정을 거쳤어야만 했을까? 정부의 정책결정에 있어 인내심을 가지고 시장의 반응을 살핀 후, 논란을 걷어낼 자신이 있어야 시장에 개입할 명분이 생긴다는 것은 경제학의 기본이다. 하지만 이러한 법칙이 지켜지지 않았으며, 우리는 이로 인해 기괴한 나비효과의 중심에 섰다.

코미디는 개그콘서트로도 충분히 즐기고 있다. 올바른 정책의 수정과, 긍정적인 시장의 변화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