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4일 국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했다. 분위기는 비교적 훈훈했다. 지금까지 정치적인 이유로 청문회장을 휘감던 '일부' 의원들의 신상털기 및 고성방가에 가까운 쓸데없는 호통이 사라지고, 후보자의 정책과 소신을 조명하는 무게있는 질의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청문회장에서는 경제민주화와 경제활성화의 간극이라는 다소 오래된,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질문과 대답이 오갔으며 그 외 다양한 경제적 모델에 대한 진지한 고찰까지 이어졌다.

특히 후보자가 "신규 순환출자금지 및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율 제도의 충실한 집행에 나설것이며, 금산분리를 강화하겠다"라고 언급한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지극히 당연한 말일 수 있겠으나, 그와 동시에 지극히 중요하고 합당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 대목인 금산분리 강화에 나서겠다는 후보자의 말은 다소 씁쓸한 여운을 남겼다.

핀테크 시대가 온다
핀테크(FinTech)라는 말이 있다. 파이낸셜(financial)과 기술(technique)의 합성어며, 최근 경제분야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다. 하지만 경제분야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고, 많은 매체에 그 이름이 오른다고 해당 개념이 당장 '대세'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핀테크는 이제 막 태동하는 단계다. 물론 해외는 구글월렛, 페이팔, 애플페이 등 다양한 실험이 반복되며 조금씩 외연을 확장하고 있으나 국내는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정도가 핀테크 열풍을 일으키려 노력하는 중이며, 다음카카오의 뱅크월렛카카오 등이 이제야 기지개를 켜는 상황이다.

▲ 출처=AP

IT강국인 우리가 왜?
소위 IT 강국이라고 불리는 대한민국이 어쩌다 핀테크 분야에서는 걸음마 수준이 되어 버렸을까? 일차적 원인은 정부에 있다. 사실 국내 통신사들은 꽤 오래전부터 핀테크에 가까운 결제기능을 자사의 서비스에 첨부시키고 싶어했다. 관련기술도 꽤 수준급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정부의 규제였다. 이제는 규제의 아이콘으로 여겨지는 액티브엑스의 존재와 지긋지긋한 공인인증서, 그리고 항상 지녀야 했던 보안카드라는 애물단지. 물론 금융에 있어 보안은 제일 중요한 가치임에 틀림없으나, 지금까지 대한민국 정부는 각종 규제를 남발하며 국내 핀테크 산업을 억눌러왔다.

하지만 정부의 규제만 지탄의 대상으로 삼기에는 사안이 너무 광범위하다. 다른이유도 존재한다. 먼저 금융계의 책임이다. IT기술이 발전하며 다양한 영역과 활발하게 연결되는 장면을 보면 하나같이 발견되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영역의 시너지 효과와 힘의 교차운동이다.

유통을 예로 들자면, 유통과 IT가 만나 드론과 같은 새로운 개념의 택배 서비스가 탄생하는 순간 최초 영감을 불어넣은 IT기술이 유통으로 향하고, 유통은 이를 적극적으로 차용해 IT기술을 알맞게 변형시키고 다듬는다. IT가 수단으로 작용하며 유통에 영향을 미치면, 유통은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영역에 맞게 이를 자유자재로 변형시킨다는 뜻이다. 드론이라는 기술이 택배를 만나 택배전용에 알맞는 기능을 선택적으로 차용하고, 이러한 선택적 차용으로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식이다.

영감을 준 IT나, 영감을 받은 유통이나 모두 시너지 효과를 누리며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다.

하지만 금융계는 보수적이다. 물론 실제적인 '돈'이 오가는 곳이기에 당연히 보수적이겠지만, 외국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보수적이다. 게다가 동기도 부족하다. 국내 금융계는 오랜기간 그들만의 리그에 머물며 자신들만의 세상을 창조해 왔다.

변화의 바람이 불어도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버티다 빠르게 진화된 기술이 부정적으로 사용된 사례와 만나면 개인정보유출과 같은 대형사고나 가끔씩 터트리는 식이다. 물론 모험을 두려워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모험이 어두컴컴한 절벽끝으로 밀어내는 느낌이라면, 이제는 횃불도 쥐어주고 나침반도 챙겨주며, 정교한 지도까지 쥐어주는 판국이지 않는가.

그래도 금융계는 보수적이며 기술이라는, 핀테크라는 시대적 흐름을 거부하고 있다. 한 걸음을 떼려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심지어 금융계를 출입한다는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IT기자들은 핀테크에 관심이 많으나, 금융 기자들은 상대적으로 IT기자만큼 핀테크를 모른다. 아니, 제대로 알려하지 않는다. 편견이길 바란다.

'대핀테크 시대'의 제물이 될 생각인가
대한민국이 핀테크를 두고 우왕좌왕하는 사이, 외국의 핀테크 시장은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근거리 무선통신을 기반으로 하는 애플페이는 동맹군을 늘려가며 생태계 확장에 나서고 있으며, 중국의 알리페이와 합작을 시사하며 세계정복을 노리고 있다. 전통의 강자 페이팔은 이베이와 결별수순을 밟으며 또 한번 동력을 다지고 있으며, 구글의 구글월렛도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마윈 회장이 이끄는 알리바바의 알리페이는 타오바오의 틀을 벗어나 8억 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무시무시한 공룡으로 변신했다. 심지어 온라인 머니마켓펀드까지 만들어 단순한 결제를 뛰어넘은 진정한 핀테크의 패러다임을 창조하고 있다. 지금 알리바바의 온라인 머니마켓펀드는 세계 4위로 등극하기에 이르렀다.

▲ 출처=텐센트

텐센트도 마찬가지다. 막강한 인프라를 보유한 모바일 메신저 위챗을 선봉장으로 삼은 텐센트는 '텐페이'를 통해 무섭게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텐센트는 중국에 최초의 민영은행인 위뱅크를 설립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중이다.

최근 중국 경제계의 삼마(三馬)로 불리는 알리바바의 마윈(馬雲) 회장과 텐센트를 세운 마화텅(馬化騰) 회장, 그리고 중국 2위 보험업체 핑안보험의 회장 마밍저(馬明哲)가 세 번째 도원결의를 다졌다는 소식이다. 이들은 공동으로 인터넷 보험회사 종안온라인재산보험을 세우고 중국 최대 영화제작사인 화이슝디(華誼兄弟)에 공동투자한 이후, 세 번째 도원결의를 통해 선전증권거래소의 창업판에 상장된 화이슝디의 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일단 업계에서는 세 번째 도원결의 배경에 콘텐츠 사업을 강화하고자 하는 각자의 의도가 얽혀있다고 보지만, 크게 보면 이는 IT기업과 보험, 즉 금융업계의 '콜라보레이션'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알리바바와 텐센트 입장에서 콘텐츠 강화 및 해외진출 무기를 가다듬는 분위기에서 도원결의를 했지만, 특히 알리바바의 경우 중국 최대 동영상 포털사이트 요우쿠-투더우 지분 16.5%를 인수한데 이어 6월에는 홍콩 미디어그룹인 차이나비전을 8억400만달러에 인수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중국판 넷플릭스를 꿈꾸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이지만, 큰 그림은 결국 '결합과 시너지'라는 뜻이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는, 중국의 핀테크 기업들이 속속 국내시장에 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다음카카오, CJ게임즈 및 다수의 IT기업에 지분을 투자한 텐센트의 경우 최근 하나은행과 본격적으로 업무협약을 맺고 국내시장 진출을 타진하고 있으며 알리페이도 국내 400개 쇼핑몰과 업무협약을 맺은 상태다.

여기에 페이팔도 최근 국내시장 진출을 천명하며 사태를 예의주시 하는 상황이다. 엄연히 케이페이라는 플랫폼이 있으나 KG모빌리언스, KG이니시스는 알리페이, 페이팔 등 외국 기업들과 협력해 모바일 결제 시장에 진출했으며 중소형 PG사로 각광받는 갤럭시아컴즈도 텐센트와 협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천문학적인 자본을 움직이며 '팜테크'에 관심을 둘 정도로 미래성장동력을 챙기는 이들이 막강한 핀테크 인프라로 국내시장을 공략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핀테크 시장에 막 출사표를 던진 다음카카오와 같은 후발주자들은 순식간에 고사위기로 몰릴 것이다. 네이버가 준비한다던 새로운 결제 시스템은 구경도 하지 못할 것이며, 국내 핀테크 업계에서 그나마 주목을 받고 있는 비바리퍼블리카와 한국NFC도 속절없이 쓸려갈 확률이 높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