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가 커지면 움직이기 힘든 것처럼 경제규모가 커질수록 고성장을 기대하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투자자금은 결국 숨어버리고 경제동력은 점점 식어간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산업과 새로운 투자처는 다시 생겨나기 마련이다. 이에 ‘그들만의 리그’, ‘비정규 시장’이라는 딱지를 떼고 새롭게 출범한 K-OTC가 목마른 투자자들이 원하는 대안투자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시장은 기대하고 있다.

저성장·저금리 시대가 이어지고 있다. 이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 사회는 노동력 감소 및 경제활동 하락 등을 야기할 것으로 예상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을 더욱 암울하게 만든다. 디플레이션(물가하락과 경기침체가 같이 나타나는 현상)에 대한 우려감도 높아지고 있어 적극적인 투자를 하기에는 수익대비 위험이 더 크다는 인식이 팽배한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투자자금들은 꼭꼭 숨어버린다. 기업들은 설비투자를 꺼리고 투자자들도 현금이 최고라고 생각하면서 자금을 움켜쥔 채 놓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은 여전히 투자처를 찾고 있었다.

지난 7월 현대증권은 ‘깊은 잠에서 깨어난 글로벌 IPO 시장’ 보고서를 통해 풍부한 글로벌 유동성을 바탕으로 글로벌 기업공개(IPO; Initial Public Offering) 시장의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올해 2분기 미국의 IPO 건수는 83건으로 지난 2000년 이후 분기별 최고치를 달성했다. 심지어 불황의 늪에서 좀처럼 벗어날 줄 모르는 유럽의 IPO 시장도 1억달러 규모 이상 IPO 건수 기준으로 2012년 15건, 99억달러 규모에서 지난해 46건, 270억달러로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에만 이미 65건, 346억달러의 자금을 조달했다.

또 하나의 IPO 이슈는 중국이다. 올해 1월부터 IPO를 재개해 50건이 넘는 IPO를 승인하기도 했지만, 한 달 만에 시장이 과열되고 투기자금이 유입되는 등 관련 규정의 허점이 드러나며 IPO를 재차 중단했다. 이어 지난 6월에 다시 IPO 시장을 여는 등 혼란을 빚었다. 이 때문에 중국 최대의 전자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는 지난 9월 뉴욕증시에 상장하며 핫이슈로 떠올랐다.

▲출처: 한국투자증권

윤정선 현대증권 연구원은 “저성장·저금리 시대를 맞이해 투자자들은 다양한 투자상품에 눈을 돌리고 있어 대안투자시장이 주목받고 있다”며 “이중 IPO 시장은 글로벌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에서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으며 인터넷, IT 기업들을 중심으로 상장 준비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투자처를 찾는 자금들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목격됐다. 지난달 5~6일 이틀 동안 올해 증시 기업공개 최대어로 꼽혔던 삼성SDS의 공모주 청약증거금은 15조5520억원을 기록했다. 경쟁률은 134.19대 1을 기록해 그 인기를 실감하게 할 뿐만 아니라 투자처를 찾지 못한 시중의 뭉칫돈이 대거 몰린 것으로 분석됐다.

 

K-OTC 왜 출범했나

K-OTC(Kofia Over-The-Counter Market, 금융투자협회 장외시장)의 전신은 프리보드(비상장주식 거래시스템)이다. 프리보드는 지난 2000년 3월 비상장주식 호가중개시스템으로 개설된 후 2005년부터 중소기업의 직접금융 활성화를 위해 운영됐다.

하지만 거래대상이 소수의 중소기업 위주로 한정돼 공신력과 그 역할이 크게 저하됐다. 이에 금융투자협회(금투협)는 비상장주식 거래의 편의성 제고는 물론,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해 모든 비상장주식을 투명하고 원활하게 거래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장으로써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프리보드 시장을 개편하고 K-OTC를 출범시켰다.

프리보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혔던 것은 우량상장법인의 경우 프리보드에 등록신청할 유인이 크지 않았다는 점이다. 프리보드에 등록된 주식이 아닌 경우, 개인 간의 직접거래로 유통되기 때문에 합리적인 가격 형성이 어렵고 결제리스크에 노출된다는 우려가 있었다. 정보를 아는 일부 소수만이 가격을 형성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으며, 거래를 원하는 투자자들은 직접 주식 소유주들을 찾아나서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즉, 프리보드 출범의 본래 취지를 잃어버린 것이다. 우량기업들은 시장에 들어오지 않고 거래소에서 퇴출된 기업들이 즐비하면서 신뢰를 잃었다.

이뿐만 아니라 일부 기업들의 ‘상장설’ 유언비어가 돌면서 이에 관심 있는 투자자들은 해당 주식을 매수하고 상장을 기다렸다. 하지만 ‘상장’이 현실화되기 보다는 ‘망부석’ 하나를 얻은 셈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2013년 7월, 중소기업 전용 주식시장인 코넥스 시장이 개설됨에 따라 프리보드의 위치는 더욱 애매모호해졌다. 금투협은 비상장주식 거래의 편의성, 효율성을 제고하고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고자 프리보드를 전면 개편한 것이다.

 

K-OTC, 투자기업 발굴로 투자기회 확대

금투협은 프리보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공신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비상장주식을 투명하게 거래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우선 제1부(K-OTC)와 2부(호가게시판)로 구분해 제1부에는 사업보고서를 제출하거나 협회가 정한 공시의무 등을 준수하는 비상장법인의 주식을 거래한다. 진입·퇴출 요건을 강화하고 비상장 중견·대기업 주식의 거래를 활성화해 공신력 제고를 가장 으뜸으로 한다.

제2부는 주식 유통에 필요한 최소한의 요건을 갖춘 모든 비상장법인의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만들었다. 원활한 주식거래를 위해 필요한 호가게시판을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며, 매수대행 증권사 간의 조율을 거쳐 증권사 중개를 통해 체결하는 방식이다. 그간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거래 상대방과 1:1로 직접협상했던 거래에서 벗어나 K-OTC 시장을 이용해 보다 편리하고 안전하게 거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출처: 금융투자협회

금투협 관계자는 “저성장·저금리 시대가 지속되면서 대안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장외거래의 안정성을 보다 강화해 투자자들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비상장 주식인 만큼 투자자들이 투자기업에 대해 막연한 기대보다는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좋다”고 권고했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주식시장 급등과 바이오주 상장이 이어졌던 2009년, 상장종목 수가 5개에 불과했던 2014년 상반기를 제외해도 공모 참여/상장일 매도전략은 성공확률 73%에 실현수익률 26%를 기록했다. 지난 2011년 이후 코스피증시가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IPO 시장은 상대적으로 높은 성공확률과 수익률을 보인 것이다.

또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코스닥 IPO 기업들은 신규상장 후 90거래일간 상장일 종가대비 약 10% 하락했으나 상장 후 30일 이후에는 평균적으로 주가가 반등해 공모가는 지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모가를 투자 준거점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기업이 상장하기 전, 공모가에 투자한다면 평균적으로 높은 성공확률과 수익률은 물론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금투협의 K-OTC 출범은 비상장주식에 대한 관심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K-OTC 시장은 지난 8월 25일 출범 이후, 일평균 거래대금이 10억원을 초과하는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장외주식시장으로 연착륙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에는 삼성SDS 상장 이후 거래가 침체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으나 삼성메디슨이 차기 상장업체로 주목을 받으며, 지난달 27일 K-OTC 시장의 총거래대금은 32억4323만원을 기록했다. 금투협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기업 발굴을 통해 장외주식 투자자들의 투자기회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