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의 후계구도가 빠르게 자리 잡히는 분위기다. 26일 삼성그룹은 석유화학부문 계열사인 삼성종합화학 및 삼성토탈, 방위산업부문 계열사 삼성테크윈 및 삼성탈레스를 한화그룹에 매각하는 '메가 딜'을 통해 삼성그룹 ‘3.0 업데이트’를 추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메가 딜’을 두고 한화그룹이 먼저 움직였다는 것을 정설로 여긴다. 한화가 먼저 삼성에 제안을 하고 삼성이 석유 및 화학사업까지 추가로 제시하며 판을 키웠다는 분석이다. 한화는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라원 영업실장 주도로 태양광 사업을 염두에 둔 상황에서 첨단 방산전자 시스템 업체인 삼성탈레스 인수 제안을 했으며, 여기에 삼성은 삼성탈레스 지분 50%를 가진 삼성테크윈까지 인수할 것을 제안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은 화학계열 사업을 전부 인수하라는 승부수를 던졌다는 후문이다. 삼성테크윈은 삼성탈레스 지분 50%, 삼성종합화학 지분 22.56%를 가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삼성과 한화는 글로벌 석유화학 업계가 얼어붙으며 한때 매각협상에 차질을 빚기도 했으나, 한화 김 실장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전면에 나서 결국 ‘메가 딜’을 성사키셨다. 한화그룹은 26일 “한화가 삼성전자 삼성물산 등이 보유한 삼성테크윈 지분 전량(32.4%)을 8400억 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정식으로 체결했다”며 “한화케미칼과 한화에너지가 공동으로 삼성종합화학 지분 57.6%(자사주 제외)를 1조600억 원에 인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명확해진 후계구도

26일 메가 딜로 인해 삼성가의 후계구도는 더욱 명확해졌다. 이번에 매각되는 삼성그룹 계열사 4곳 모두 오너 일가 지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다소 어정쩡하던 지분이 일제히 처리되며 후계구도는 더욱 확실해 졌다는 평가다. 특히 화학분야의 경우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삼성종합화학 4.95%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이 사장이 화학분야를 승계받는 것 아니냐’는 출처를 알기 어려운 소문까지 돌았던 점을 고려하면, 26일 메가 딜은 후계구도 재편의 불확실성을 완전히 걷었다는 분석이다.

삼성은 이번 메가 딜로 확보한 자금을 바이오 헬스 등 신성장 동력사업에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지난 12일부터 유럽시장을 점검했으며 27일 일본출장을 떠났다. 해외시장 분석 및 경영구상을 위한 행보다.

업계에서는 한화 김동관 실장과 함께 26일 메가 딜을 주도한 이재용 부회장이 전자 및 금융, 건설 등 그룹의 주력을 맡으며 이부진 사장은 호텔 및 리조트, 유통을 맡고 이서현 제일모직 패션사업부문 사자이 패션과 미디어 산업을 맡을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이 국민연금의 주식매수청구권 발동으로 제동이 걸린 상황에서 삼성물산 및 삼성중공업 등 삼성의 건설분야는 승계구도가 불투명하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번 메가 딜이 한화그룹 후계구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한화그룹이 삼성 4개 계열사을 인수한 중요한 주체 중 하나가 바로 한화에너지며, 한화에너지는 한화S&C가 100% 지분을 가지고 있다.

한화S&C는 김승연 회장의 삼남이 지분을 골고루 나눠가지고 있다. 장남 김동관 영업실장 지분 50%, 차남 김동원 한화그룹 디지털팀장 25%, 삼남 김동선 한화건설 매니저 25% 순서다. 이를 바탕으로 한화가 몸집을 불린 한화S&C를 인수하는 형식으로 품으면 삼형제의 그룹 지배력은 강력해진다. 참고로 삼형제는 자신들이 보유한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주식회사 한화' 지분을 모두 합쳐도 10%를 넘기지 못했다.

특히 김동관 실장은 상당한 수혜를 받을 전망이다. 우선 한화S&C의 지분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으며(50%), 26일 메가 딜을 통해 그룹 지배권을 위한 몸집 불리기도 성공했다. 태양광 사업에 올인했으나 다소 부진한 성적을 거두며 주춤했던 광폭행보가 다시 외연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는 평가다.

중심에는 삼성전자가 있다

26일 메가 딜을 주도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그룹의 후계구도 전면에 등장하는 분위기다. 수익성 및 기타 정치적인 사안까지 고려한 이 부회장의 결단이 있었기에 ‘딜’이 가능했다는 것이 중론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삼성의 핵심 중 하나인 삼성전자의 미묘한 동향이 화제다.

삼성의 연말 사장단 인사를 두고 업계에서는 중폭수준의 변화를 조심스럽게 예상하고 있다. 한화에 매각하기로 결정된 4개 계열사 사장단(사장단은 3명)이 빠지는 데다 오너 일가 및 미래전략실 소속을 고려하면 그 숫자가 크게 줄어들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IM, DS, CE 삼각체제가 CE의 IM분야 포함 가능성을 비롯해 양대체제로 갈 확률이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재용 부회장 승진 가능성이 삼성전자의 구조적인 변화와 별개로 현재 ‘희박’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가능성은 열려있다. 물론 이러한 내용을 삼성이 공식적으로 확인한 바는 없다.

삼성전자의 자사주 매입도 큰 그림에서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최근 삼성전자는 보통주 165만주와 우선주 25만주를 내년 2월 26일까지 장내에서 매수하기로 결정했다. 삼성전자가 자사주 매입에 돌입한 것은 2007년 이후 처음이다. 표면적으로 증권가에서는 이번 결정이 내년 발표예정인 주주친화 정책 차원의 연장선상으로 보고있다. 상장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하면 유통량이 줄어 주식가치가 상승하기 때문이다. 자사주 매입이 끝나면 삼성전자의 자사주 중 보통주 지분은 11.1%에서 12.2%로 올라가고 우선주 보유 지분은 13.0%에서 14.1%로 상승한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자사주 매입을 지주회사 전환을 노린 지배구조 전환과 연결시키는 전망도 고개를 들고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가 자사주 매입을 통해 모은 주식을 오너 일가의 새로운 지주회사로 이전하는 것도 신빙성있는 시나리오 중 하나다. 이는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 강화는 물론, 엄청난 액수에 달하는 오너 일가의 상속세를 위한 자금마련에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최근 엄청난 관심을 모았던 삼성SDS와 제일모직의 상장에 따른 파급효과와 비슷한 동기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변수도 있다. 삼성전자는 2000년 이후 10번의 자사주 매입을 시도했으나 여기서 5번만 주가가 올라 50%의 성공률을 보였으며, 2000년 4월에는 매입 기간 주가가 무려 28.7%나 하락했던 전례도 있기 때문이다. 일단 제일모직이 얼마나 많은 삼성전자 지분을 확보하느냐에 관심이 쏠리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26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은 “삼성전자가 자사주를 더 매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