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회가 구글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검색과 기타 서비스를 분리하는 일명 ‘구글 쪼개기’에 돌입하자 미국이 발끈하고 나섰다. 비록 유럽의회 결의안에는 ‘구글’이 적시되어 있지 않지만, 이는 사실상 유럽 검색 시장의 90%를 장악한 구글을 견제하기 위함이다. 현재 유럽회의 양대 정파인 유럽국민당그룹(EPP)과 사회당그룹(PES) 모두 결의안에 찬성하고 있다는 점도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물론 유럽의회 결의안이 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확률은 낮으나, 이는 ‘대 구글용 압박 카드’로 쓰이기에 손색이 없다. 27일로 예정된 표결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26일(현지시각)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의 상원 재무위원회와 하원 의원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미국의 IT기업에 대한 (유럽의회의) 결의안은 자유로운 시장경쟁에 대한 EU(유럽연합)의 생각에 의심을 일으키게 한다”며 "구글 문제를 정치쟁점화하지 마라”고 경고했다. 사실상 미국 정부 차원의 압박이다.

▲ 출처=AP

하지만 미국의 ‘구글 감싸기’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복잡다변하고 변화무쌍한 냉엄한 국제정치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구글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을 두고 “미국 특유의 애국주의, 자국 중심주의가 발동되어 정부 차원에서 자국 기업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것”이라고 분석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번에 불거진 구글 논란은 애국주의와 같은 감정적인 문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오히려 차갑고 냉정한 게임의 법칙만 존재할 뿐이다. 이는 역으로 말해, 구글이 미국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냉정하게 버려졌을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렇다면 미국이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화합’까지 불사하며 구글을 위협하는 유럽의회를 비판한 진짜배경은 무엇일까?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구글은 강력한 IT 인프라를 보유한 자국기업이자 미국 패권주의의 훌륭한 파트너, 아니 선봉장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 국가안보국의 무차별 감시 프로그램을 폭로하고 해외로 망명한 에드워드 스노든은 같은 해 6월 텍사스주 오스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중문화 축제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의 인터랙티브 행사장에서 실시간 화상대화를 통해 처음으로 미국 국민들과 대화했다. 시민단체 미국시민자유연합(ACLU)의 크리스토퍼 소고이언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화상대화에서 스노든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역설하는 한편, “미국 국가안보국의 감시 프로그램에 가장 협력을 많이 했던 곳이 바로 구글”이라고 증언했다. 재미있는 대목은 스노든의 화상대화가 구글의 ‘구글 플러스’를 통해 진행됐다는 점이다. 덕분에 스노든은 자신의 위치를 숨기기 위해 암호 프로그램을 사용했고, 덕분에 화상대화는 몇 번이나 끊겼다. 폭로자가 자신의 폭로를 있게 만든 플랫폼을 활용한, 다소 서글픈 장면이었다.

사실 구글이 미국정부와 친밀한 사이라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구글은 국내의 다음카카오가 감청논란 이후 도입하기로 결정해 관심을 끌었던 투명성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으며, 해당 보고서에는 구글과 미국정부의 협조가 비교적 상세히 적혀있다. 미국정부는 구글에게 바티칸의 은밀한 정보를 비롯, 각 나라의 민감한 데이터와 유명인의 동향까지 요구하고 있으며 구글은 이를 대부분 받아주고 있다. 물론 자국민에 대한 정보도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이런 투명성 보고서를 당당하게 작성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다.

여기서 다시 유럽으로 돌아오면, 유럽연합 입장에서 구글은 상당히 성가신 존재다. 미국기업이면서도 미국 점유율은 66%에 불과한 구글이 유럽에서는 90%를 넘기고 있기 때문이다. 적대국은 아니지만 냉엄한 국제정치의 틀에서 유럽과 미국은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정부와 친밀한 구글이 유럽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당연히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사실 잊혀질 권리 논란부터 시작해 사생활 보호침해, 반(反)독점에 따른 유럽내부의 신경질적인 반응은 모두 여기서 비롯된다고 봐야 한다.

특히 독일은 더 ‘짜증’이 나 있다. 가뜩이나 미국이 2011년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휴대전화를 도청한 사건이 터진 이후, 분야는 다르지만 독일 정치인의 눈에 구글은 사실상 ‘악마’나 다름없다. 게다가 10월 초 독일이 소유한 유럽최대 언론사 악셀 스프링어마저 구글의 영향력에 굴복해 사실상 백기투항을 한 이후 여론은 더욱 악화된 상황이다.

하지만 짜증을 넘어 더 심각한 문제는, 유럽은 구글에 대항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이번 유럽의회의 결의안도 압박용 카드일 뿐, 실질적인 효력에는 의문이 달린다. 막강한 IT분야의 강자를 정치적인 문제로 해결하려 드는 순간, 그에 따르는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럽은 유럽연합 결성 당시부터 불거진 거대 단일 경제권 내부의 격차, 언어적 이질성, 여전히 존재하는 각자의 규제 등으로 구글에 대항할 수 있는 거대 IT기업을 잉태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중순 한국, 유럽연합, 중국, 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을 대상으로 데이터 국지화 현상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둔화시킨다는 보고서가 등장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유럽국제정치경제연구소(ECIPE)가 펴낸 본 보고서에 따르면 ‘데이터를 내부에 수렴’하는 데이터 국지화 현상이 벌어질수록 GDP 증가율이 순식간에 반토막 날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유심히 봐야하는 대목은 보고서 대상국가의 면면이다. 한국, 유럽연합, 중국, 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 베트남은 비록 온도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 구글이 ‘제대로 진출하지 못한 나라이거나, 혹은 진출해도 미비한 나라’들 뿐이다. 결국 보고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구글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나라가 데이터 국지화, 즉 ‘구글과 같은 글로벌 기업과 데이터를 공유하지 않으면’ GDP 증가율이 추락한다.” 무서운 경고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우선 유럽국제정치경제연구소에 데이터 국지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구글이 후원한 정황이 포착되는 부분이다. 여기서 이미 보고서의 신뢰도는 하락한다. 게다가 데이터 국지화와 GDP 증가율의 상관관계는 말 그대로 연결고리가 없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둘 사이의 관련성을 증명하는 사례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무엇무엇을 하지 않으면 GDP 증가율이 하락한다’는 식의 결론은 미국의 거대 소프트웨어 사업자들이 주로 우려먹는 단골멘트다. 결국 유럽국제정치경제연구소의 보고서는 겁박용일 확률이 높다.

다만 유럽국제정치경제연구소 보고서 ‘해프닝’을 통해 한 가지 확인할 수 있는 단서는 있다. 구글은 데이터 국지화를 두려워한다는 점이며, 이는 결국 자신들이 ‘현지화 정책’을 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는 것이다. 물론 유럽시장에서 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하며 승승장구하고 있고, 이에 대항할 만한 뚜렷한 적수도 없는 상황이지만 구글은 ‘불안’해하고 있다. 그들이 검색 외 다양한 서비스에 방점을 찍고 동시다발적 사업에 진출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제 종합이다. 미국은 단순히 구글을 ‘우리 편’이라고 생각해 구글 쪼개기를 기도하는 유럽의회와 각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구글은 미국, 특히 미국정부의 훌륭한 파트너며 동시에 패권주의 선봉장이다. 만약 구글이 미국정부가 원하는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다만 구글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환경에서도 ‘구글제국’의 마지막 퍼즐 하나를 맞추지 못하고 있으며,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한 미국정부와의 밀월은 더욱 강해질 확률이 높다.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은 자신이 펴낸 ‘새로운 디지털 시대’를 통해 “새로운 디지털 시대에는 민감한 정보를 대량 수집해 폭로하고 순식간에 세계로 퍼뜨리는 능력이 점점 커진다"며 "줄리언 어산지와 에드워드 스노든 같은 사람들이 더 많이 등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글도 남겼다. “스노든이 문건을 폭로한 직후 시민들의 자유를 지켜준 전력이 별로 없었던 러시아로 임시 망명한 사실은 아이러니하기 짝이 없다.”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에릭 슈미트의 본심은 후자에 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