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차 규제개혁 장관회의 모습. 출처= 청와대

산업경제는 물론 국내 전 분야에서 오랫동안 미래 먹거리와 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시급한 과제로 꼽아온 것이 ‘규제개혁’이다. 아울러 지난 ‘참여 정부’와 ‘노무현 정부’, ‘MB정권’을 거쳐 현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내세웠던 경제성장의 해법 역시 ‘규제개혁’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과거나 지금이나 별반 발전된 것이 없다. 오히려 업계에서는 갈수록 규제가 완화되기는커녕 강도는 높아지고 분야와 종류가 늘어만 간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공무원 수를 줄여 작은 정부를 지향한 참여 정부가 출범하던 지난 2003년, 7836건이었던 규제는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2006년 8083건으로 증가했다. 특히, 기업과 경제활동에 밀접한 7개 경제부처의 규제는 2003년 3392건에서 2006년 3467건으로 늘었다.

이 같은 규제는 MB정부 첫해인 2008년에는 5186건으로 또 다시 늘었고, 2009년에는 1만1050개로 늘어났다. 이후에도 규제는 해마다 늘어 2009년 1만1050건에서 2013년 말 1만3914건으로 증가했다. MB정부 임기 중에만 2864건의 규제가 늘었다.

규제의 증가세는 현 정부에 들어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월 업계 및 규제정보포털에 따르면 지난 3월 이후 5개월 사이에 23건의 규제가 새롭게 생겨났다. 박근혜 대통령 주재의 ‘규제개혁 장관회의’를 통해 끝장토론을 벌인 후 오히려 규제가 늘어난 것이다.

재계 및 정부 규제정보포털에 따르면 중앙부처의 등록규제는 지난 8월 14일 기준 1만5326건으로, 장관회의가 있었던 올해 3월 1만5303건에 비해 23건이 증가했다. 이는 세월호 참사 이후 ‘폐쇄회로TV 설치기준 및 안내판 설치’(국토교통부), ‘선박평형수 교육기관 지정’(해양수산부) 등 안전과 소비자 관련 규제가 늘어난 탓이다.

 

▲ 11월 24일 현재 상황. 출처= 규제정보포털

말만 ‘규제개혁 실제로는 더 늘어
등록규제 건수는 11월 24일 현재, 1만4987건으로 올해 1월 1만5282건 대비 295건, 0.9% 줄었다. 이날 현재 등록규제가 가장 많은 정부부처는 국토교통부로 2374건에 달한다.

그다음으로는 해양수산부 1494건, 보건복지부 1197건, 산업통상자원부 1104건, 금융위원회 1099건 등으로 나타났다. 가장 제재가 심하고 등록규제가 많을 것으로 생각됐던 환경부는 854건으로 집계됐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규제 총점제를 통해 완화, 폐기할 규제들을 추려나가고 있다”며 “오는 2017년까지 현 규제의 30%를 감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면, 가장 등록규제가 적은 부처는 국가인권위원회와 국민권익위원회로 각각 1건과 4건에 불과했다. 어찌 보면 규제가 적은 만큼 인권과 국민권익이 가장 홀대 받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전 부처가 올해 안에 기존 규제의 10%를 감축하는 목표를 추진 중이며 정부에서도 목표 달성을 위해 독려 중”이라며 “일각에서 양적으론 줄고 내용면에선 오히려 강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핵심 규제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양과 질 모두를 함께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중앙부처에 등록된 규제 1만6354건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4분기부터 올해 1분기 사이 늘거나 바뀐 규제는 247건으로 나타났다. 이 중 신설 규제가 136건, 강화 규제가 102건으로 96%를 차지했다. 폐지는 5건, 완화는 4건에 불과했다.

대통령 주재로 ‘끝장토론’까지 하는 등 규제개혁을 정부의 핵심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선 규제를 새로 만들거나 기존 규제를 강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특히, 신규 시장 참여를 억제하는 ‘진입 규제’와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투입 규제’ 등 경제 규제가 77건으로 전체의 약 3분의 1을 차지했다. 진입과 투입 규제가 신설되거나 강화되면 기업과 개인의 시장 참여와 투자는 줄어들게 마련이다.

일부 부처가 국회 심의를 받지 않는 시행령과 규칙, 고시 등을 고치는 방식으로 과태료나 과징금을 새로 부과하거나 인상하는 등 임의로 벌칙을 강화한 경우도 30여건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현 정부가 내세운 규제 총량 제한방침이 무의미함을 보여주는 결과다. 실제로 지난 2008년의 규제 총량을 100으로 볼 때 2013년 규제지수는 183.07, 올해 3월 말의 규제지수는 184.58로 지속적으로 높아져만 가고 있다.

그 만큼 각종 산업관련 규제가 늘어난 것이다. 가장 높은 규제지수 상승률을 기록한 금융 및 보험관련 서비스업은 국제 경쟁력이 취약한 대표적인 낙후 업종으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규제개혁이야말로 내수 불황을 뚫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길”이라며 “획기적인 규제개혁으로 소비침체 국면을 탈피하고 일자리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 정부혁신 3개년 계획도. 출처= 청와대

규제개혁 통한 투자 활성화 등 모색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 원장은 지난 4월 ‘규제개혁 논의과제와 평가시스템 개선방안’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 “수도권 신공장 건설 제한, 과밀부담금 부과와 같은 19개의 투자억제 법률과 58개의 규제가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기업들의 국내 생산투자를 활성화 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규제의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의 투자를 위축 시키는 규제도 문제지만 관련 법률의 개정도 함께 추진돼야 그 효력이 반영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날 김현종 한경연 기업정책연구실장은 “조사를 통해 기업의 투자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정책 불확실성, 정부 청렴도, 친비즈니스 지수, 건설허가비용, 계약집행기간 등이 확인됐다”며 “규제가 많을수록 정부 부패지수가 증가한 점을 감안해 규제의 품질향상, 정책결정의 투명성, 객관성의 확보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각론적인 개선과제로 외국에 비해 절대적으로 높은 수준인 건설허가비용을 감소시키고, 계약집행력을 높이기 위해 소요절차수를 줄이는 등의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태윤 한양대 교수는 이 자리에서 △규제개수에 대한 관리를 시작으로 비용개념을 융합하는 규제 총량관리제의 도입 △신설규제 및 기존규제에 대해 3년마다 정기적 심사를 시행하는 규제일몰제 △규제 개정·폐지 국민청구제 도입과 더불어 피해에 대한 개별적 구제의 병행 등을 개선 방안으로 내놨다.

이혁우 배재대 교수는 현 규제개혁평가가 결과에 따른 개선 없이 내부 진단용으로 운용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평가대상과 평가주체가 동일한 규제개혁평가시스템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규제개혁위원회의 역할 강화와 분석·평가기관의 설치 및 부처별 평가결과의 공개를 전제로 능동적인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베노믹스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이종한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은 ‘성과중심적 규제관리시스템 개선방안’이란 발표를 통해 산업별 규제개혁 산출지표와 결과지표를 개발하고 성과중심의 규제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6월 열린 ‘규제개혁 지속을 위한 정부 3부의 역할과 과제’를 주제로 한 정책세미나에서는 과도한 행정규제가 범죄자를 과잉 양산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세미나에서 김일중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2000년대 후반 이후 행정규제 위반으로 인한 범죄자 수가 전체 범죄자의 60%를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역시 규제완화가 아닌 과도한 규제가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세월호 참사의 근본 원인이 당하는 쪽과 감독자들이 무수한 규제로 인해 유착하게 된 규제그물망에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일본의 아베노믹스를 반면교사로 삼아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규제개혁과 법인세 인하를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경연은 지난 23일 ‘아베노믹스 평가와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일본은 올해 3분기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1.6%(연율 기준)로 나타나는 등 지난 2분기(-7.3%)에 이어 연속으로 마이너스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한 것은 아베노믹스의 마지막 화살에 해당하는 신성장 정책이 가장 효과적인 처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시행조차 못한 결과라는 주장이다.

이 정책은 법인세를 낮춰 기업의 설비투자를 촉진시키고 규제개혁과 산업재흥, 국가전략특구를 설정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법인세의 경우 실효세율 기준으로 기존 35.64%에서 2015년부터 단계적으로 낮춰 20%대까지 떨어트린다는 계획이었다.

 

▲ 출처= 규제정보포털

감세 통한 경기활성화가 효과적
앞서 두 개의 화살로 큰 성과를 보지 못한 일본 정부가 성장 위주의 전략을 펼쳐 기업과 개인의 경제활동을 활성화 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조경엽 한경연 공공정책연구실장은 “초기 아베노믹스 정책이 재정과 통화 정책에 편향돼 경제에 모르핀 주사만 놓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며 “경기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과감한 구조개혁을 통한 체질 개선과 기업의 투자를 유도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보다 실질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아베노믹스가 디플레이션과 엔고 현상을 탈피하고자 쏜 첫 번째 화살은 ‘무제한 양적완화 정책’이다. 보고서는 이에 대해 장기적인 효과에는 여전히 의문이라고 밝혔다.

소비세 인상으로 물가가 높아지면서 실질국민소득과 실질임금이 정체하거나 오히려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일본의 실질임금 상승률은 지난해 2분기 0%, 올해 2분기 마이너스 1.8%를 기록하는 등 물가상승이 임금상승 효과를 압도하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두 번째 화살인 ‘재정지출 확대 정책’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공공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관련 산업의 생산 및 고용유발 효과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 정책이다.

보고서는 기대와 달리 공공사업의 경기부양 효과가 낮아 재정적자만 확대 시킬 가능성이 높다며, 소비세 인상으로 소비와 생산이 둔화돼 국가채무가 급속히 증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조 공공정책연구실장은 “재정지출은 단기적인 부양효과만 나타나므로 감세를 통한 경기활성화 정책이 보다 효과적이고 지속성이 높다”고 밝혔다.

 

▲ 제1차 규제개혁 장관회의 모습. 출처= 청와대

목표는 10% 감축, 남은 시간은 1개월뿐
업계와 정부에 따르면 다음 달 중순쯤 ‘제3차 규제개혁 장관회의’가 열릴 전망이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발표 후 대통령 주재의 ‘규제개혁 끝장토론’을 통해 규제개혁에 드라이브를 걸었다면, 지난 9월 ‘2차 회의’는 중간점검, 이번 ‘3차 회의’는 총결산의 성향을 띤다.

3차 회의에선 올해 목표로 추진한 규제개혁 작업을 총정리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는 올해 부처 목표인 규제 10% 감축과 규제 신문고 처리 현황, 규제 총량제 등에 대한 평가와 점검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근혜 정부의 등록규제 수는 11월 24일 현재 1만4987건이다. 지난 1월 1만5282건, 4월 1만5173건, 7월 1만5138건 등으로 매월 줄고 있다. 하지만 전체 감축분은 올해 1월 대비 295건, 0.9% 줄었다.

2014년을 1개월여 남겨둔 현 시점에서 남은 목표량인 9.1%를 한 번에 줄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5일 국무회의 자리에서 “규제감축 일몰제와 국민신문고 등 규제개혁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암 덩어리 핵심 규제는 요지부동”이라며 “투자와 일자리, 기술발전을 가로막는 규제는 한꺼번에 처리하겠다”고 강조했다.

부처가 그 존재 이유를 명확하게 소명하지 못하면 일괄해서 폐지하는 ‘규제 길로틴(단두대)’을 확대해서 규제혁명을 이룰 것이라는 말도 던졌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전 부처의 규제 감축 목표 10%를 이뤄내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대통령이 ‘규제 길로틴’을 천명하는 등 개혁 의지가 강한 만큼 연내 목표달성도 기대된다”며 “등록규제에 대한 완화 작업보다 신규규제 등록이 더 빠른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그는 “미국과 영국 등도 규제완화를 위해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 붙고 있지만 갈 길이 요원하기만 한 실정”이라며 “어떤 한 사안에 대해 누구는 규제를, 누구는 폐지를 주장하는 현실에서 규제와 완화, 폐지는 ‘뫼비우스의 띠’ 같다”고 덧붙였다.

국무조정실에 따르면 24일 현재까지 규제개혁 신문고에 접수된 규제개선 건의 총 건수는 1만6490건이다. 이중 8746건에 대한 답변이 이뤄졌다. 제2차 규제개혁 장관회의 이후 접수된 규제개선 건의 건수는 4726개로, 하루 평균 58건이 올라오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정부가 추진 중인 규제개혁을 위한 방향은 옳다”며 “다만 실천이 문제”라고 밝혔다.

그는 “현 시점에서는 대통령의 ‘규제 길로틴’이 명확하게 이뤄지길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과거 정부들이 이루지 못한 막중한 과제를 현 정부에서는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각국 정부와 경제산업계는 현 경기불황을 이겨내고 향후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규제를 위한 규제를 폐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한 목소리로 말한다. 하지만 다양한 의견과 이권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과연 ‘솔로몬’의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